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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중

by 일용직 큐레이터

평일에 노가다를 뛰고

주말에 투잡 할 거리를 찾았다.


스타벅스 물류센터.

하루 9.8만 원

기름값을 제외하면 9만 원 정도다.


부산에서 일당 9만 원 받는 게 쉽지 않다.

물류센터라 각오를 했다.

당연히 무거운 걸 나르고 힘든 일을 시키겠지.


일을 가릴 처지가 아니다.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정도다.


스타벅스 물류센터는 규모가 꽤 컸다.

상온, 저온, 이커머스로 나뉘는데

이커머스에 배정받았다.


편의점 피킹 알바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 정도 난이도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만 괜찮으면 된다.


알바로 온 사람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직원을 따라 작업 현장으로 향했다.



첫날 배정받은 일은 택배상자 쌓기다.

상하차의 악몽이 떠올랐다.

컨베이어 라인을 따라 몰려드는 상자를 보니 겁부터 났다.


내 임무는 상자를 파레트를 쌓는 일이다.

50대 직원 두 분과 일했다.


10시까지 일해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9시부터 18시까지 일하는 줄 알았는데

22시까지 일해야 한단다.

13시간 동안 택배 상자를 쌓아야 한다.


알겠다고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루 해보고 힘들면 다른 일을 찾으면 된다.


스타벅스 상자는 4~5가지로 규격화되어 있다.

커피, 텀블러, 굿즈 등 다양한 상품이 담겨 있다.


생각보다 너무 가볍다.

상하차 때 들었던 무게와 확연히 다르다.

할만한데? 아니, 너무 쉽다.


박스 사이즈별로 구분해 파레트에 쌓는다.

쌓는 방법이 달라 몇 번 실수 했지만

직원분이 친절히 알려주신다.


편의점 물류센터 피킹 알바보다 훨씬 쉽다.

피킹 알바 난이도가 10점 만점에 8이라면

스타벅스 물류센터는 5도 안된다.


9시부터 22시까지 같은 작업만 반복했다.

상자가 몰리기도 했지만

직원분이 보조 해주셔서 어려울 게 없었다.


중간중간 쉴 수 있어 다리, 허리도 덜 아프다.

게다가 점심, 저녁도 준다.

주말에 일해서 그런지 한솥 도시락이 나왔다.

커피도 공짜다.


그날 13시간 일하고

다음날 14.9만 원을 입금받았다.

꿀알바다.

또 하고 싶다.


공고가 올라오면 계속 지원했다.

요일을 가리지 않고 시간만 맞으면 지원했다.

불규칙하게 공고가 올라오기에

빨리 지원해야 합격률이 높다.


두 번째로 부여받은 업무는 택배 포장이다.

택배 쌓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날그날 인원에 따라 업무가 달라진다.


박스에 상품을 넣고

포장재로 고정시킨다.

상자를 닫고 테이프를 바른 후

송장을 붙인 후

파레트에 쌓는다.


각 업무마다 1명씩 배정된다.

상품 넣는 사람은 상품만 넣어 옆으로 보낸다.

포장재 담당

테이프 담당

송장 담당이 다 따로 있다.


인원이 적으면 상품+포장재 넣기 업무가 추가된다.

쉬워도 너무 쉽다.


송장이 나와야 택배를 포장하는데

송장이 늦어지면 앉아서 쉰다.



세 번째로 맡은 업무는 박스정리다.

그날그날 할당량이 다른데

업무량에 비해 인원이 많으면 잡일을 시킨다.


물류센터를 돌아다니며 나뒹구는 박스를 정리한다.

다들 눈치껏 앉아 쉬며 핸드폰을 한다.

어떤 날은 2~3시간 일하고 5~6시간을 쉰 적도 있다.


갑자기 일이 몰리면 컨베이어 라인에 투입된다.

테이프를 바르고 송장을 붙인다.

포장재를 만들어 각 라인에 옮겨준다.



가장 좋은 건 인격적으로 대우해 준다.

직원, 알바 할것없이 욕설을 하거나 나무라는 이 가 없다.

일이 쉬우니 뒤처지는 사람도 없다.


정직원, 비정규직, 알바가 잘 어우러진다.

큰 소리가 나지 않는다.


몇 살 위인 남자 알바를 만났다.

일거리가 없어 둘이서 박스를 접었다.

돈 벌기 힘들면 공장을 가란다.


사실 공장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기술도 없고 경험도 없는데 될까 싶었다.

그분은 공장에서 오래 일했다고 했다.


몇몇 공장을 추천해 주셨다.

알바 어플을 켜 공장일을 찾았다.


자동차 부품공장, 야간, 12.7만 원.


무작정 지원했다.

바로 연락이 온다.

동래역에서 셔틀을 타고 출근하란다.


새로운 알바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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