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부모님을 만나자 제안했다.
어안이 벙벙했던 그녀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진심이야?
모스크바로 오기 전 이미 마음먹고 있었다.
용기를 내는데 시간이 필요했을 뿐...
어차피 거쳐야 할 과정이다.
그녀의 부모님은 흔쾌히 만남을 수락하셨다.
처음이다.
여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는 건 처음 겪는 일이다.
떨린다.
그녀의 어머니를 위해 꽃을 골랐다.
아버님께는 술을 선물해 드리기로 했다.
모스크바에 위치한 아시안 마트를 찾았다.
일품 진로가 있다.
한국 술을 선물해 드릴 수 있게 됐다.
가격은 한국보다 비싸다.
얼굴이 어려 보이는데 신분증을 보여주세요.
30대 중반에 가까운 나에게 신분증이라니...
기분이 좋아 웃음이 났다.
이 나이에 신분증 검사는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직원 반응이 매섭다.
신분증을 보여달라는데 왜 웃냐고 따진다.
그녀가 나서 이유를 설명했다.
러시아인들은 쉽게 웃지 않는다.
한국이라면 웃고 넘어갈 일인데 러시아는 다르다.
본인 역할에 충실한 직원 입장에서는 내가 비웃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러시아... 참 쉽지 않은 나라다.
다음날 야키토리라는 일식점을 찾았다.
그녀의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로 가득한 곳이다.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는데 몸이 살짝 떨린다.
곧 그녀의 부모님이 들어섰다.
2m에 가까운 그녀의 아버님.
어머님은 170cm.
키가 큰 그녀... 다 이유가 있었다.
아버님과 악수를 하는데 내손이 마치 아이 같다.
나도 한국에서는 한 덩치하고 손도 큰 편인데...
아버님에 비하면 고사리 손에 불과하다.
큰 체구에서 쩌렁 울리는 아버님의 목소리.
혼자 마이크를 쓰시는 듯하다.
식사와 술을 주문했다.
한국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모스크바는 어떤지 물어오신다.
우리들의 사진을 하나씩 보여드리니 웃음을 지으신다.
그리고 용기를 냈다.
사탕발림 하나 없이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다.
지금 우리의 상황, 앞으로 함께 할 미래에 대해 설명했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듣기만 하신다.
내가 영어로 설명하면 그녀가 러시아어로 통역한다.
진지한 이야기를 영어로 하려니 쉽지 않다.
너희가 어떤 결정을 하던 지지 할게. 걱정하지 마.
두 분은 우리의 미래를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나이 차이가 많아 걱정이었다.
국적, 인종, 언어, 문화가 달라 고민이었다.
그럼에도 아무 걱정 말라며 우리에게 힘을 주셨다.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바이크를 즐기시는 아버님 사진.
롤러브레이드를 연습하시는 어머님 영상.
서로의 취미를 공유하며 더 가까워졌다.
두 분과 나는 열 살 남짓 차이가 난다.
젊으신 만큼 활동적인 취미를 즐기신다.
식사를 마친 후 아버님이 나를 꼭 안아주셨다.
아버님의 가슴팍에 얼굴을 대고 안겼다.
다 커서 이렇게 안기기는 또 처음이다.
부모님을 먼저 배웅해 드리고 다시 테이블에 앉았다.
그녀와 활짝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셨다.
이제 한고비 넘겼다.
다음은 내 가족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