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유학생에서 스타트업 대표까지]
2019년 12월, 드디어 대학교 졸업을 했다. 3년 동안 아슬아슬하게 버텨왔던 상해 유학생활을 마무리하고, 이제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때였다.
24살 갓 졸업한 대학생의 머릿속에는 장밋빛 미래가 그려졌다. 상해라는 도시에서 멋진 회사에 들어가 내 커리어를 쌓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기대와 다르게 찾아왔다.
졸업 직후, 내가 꿈꾸던 첫 발걸음은 상해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2020년 1월, 세상을 멈추게 만든 코로나가 찾아왔다.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멈췄다. 그 당시 나는 치안도 좋고 살기도 편한 한인타운에 거주했다. 그러나 당시 한인 마트의 야채코너에 야채가 동이 나는 모습을 보며 이번 사태가 진짜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도시 곳곳이 봉쇄된다는 소식들이 들리니 사람들의 얼굴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나는 더 이상 상해에 머무를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무런 정리도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나는 겁먹은 채로 상해 집을 버리고 한국으로, 진짜 말 그대로 도망을 갔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상해에 있었다. 한달 정도는 갓 졸업하고 취업도 못한 현실을 회피하며 한국에서 아픈 나의 강아지를 돌보는 데에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마음을 다잡고 다시 상해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 나는 늘 마음속 한 구석에는 태극마크가 붙은(공공기관) 상해의 한국 관련 기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그 곳의 공고가 급하게 뜬 것이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단 일주일. 그 안에 이력서를 작성하고 면접준비까지 마쳐야 한다. 비자도 새로 받아야만 했는데, 이젠 아무런 소속이 없는 관광비자로만 받을 수 있었다. 모르겠다 부랴부랴 이력서를 쓰고 합격 불합격의 결과도 모른채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비행기에 앉자마자 기적처럼 받은 연락은 '서류 합격' 이라는 메일이었다.
면접은 상해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 이었다. 현장에 가보니 다양한 커리어를 가진 사람들이 면접장에 나 말고도 세분이 더 있었다. 내가 제일 경력도 없는 새파랗게 어린 신입이었다. 당시엔 내가 제일 부족하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이제와서 생각하면 경력직 사이에서 너무나 대견하다고 토닥여주고 싶은데, 그 때의 나는 왠지 움츠러들고 숨기 바빴다.
그런 마음때문인걸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것만 보고 무작정 상해로 다시 돌아왔는데.. 그러나 여기서 좌절하면 안됐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집 월세도 내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플랜을 다시 세웠다. 어차피 나는 지금 상해에 왔으니 정규직으로 취업을 하지 못한다면 인턴 경험이라도 살려 프로필에 쓸 단 '한 줄' 이라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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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우연히 작은 마케팅 회사를 알게되었다. 작성한 이력서를 들고 사장님을 찾아갔다. 첫 장에 적힌 내 학교 이름을 본 사장님은 대뜸 한 마디를 내뱉으셨다. “너는 출신부터 글렀네.”
사장님은 내 이력을 탐탁지 않아하며 한참을 바라보셨다. 그리곤 이런 말을 덧붙였다. “차라리 네가 잠깐 했던 왕홍 PD 경력이나 마케팅 대회 수상 이력을 살리는 게 낫겠다. 너는 그냥 그런 일이나 하는 게 어울릴 것 같아.” 그리고 나에게 신생 채널 운영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하셨다.
제안받은 포지션은 PD였다. 기획, 촬영, 편집, 제작, 번역, 업로드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콘텐츠는 인터뷰 형식이었고, 리포터는 따로 있었다. 하지만 사장님은 내 이력을 다시 훑어보며 말했다. “너는 메인이 될 수 없는 사람이야.”
그리고 사장님은 내가 받을 수 있는 월급이 3,000위안, 한국돈으로 약 55만 원 정도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 월급은 월세도 내지 못하는 금액이었다.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리포터로 메인이 되지 않아도, PD로 일할 수 있는 능력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회사에 지원한 이유는 추후 취업에 활용할 마케팅 회사 경험을 쌓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사장님은 나를 깎아내리며 회사에 채용해줄 수 없다고 했고, 계속해서 신생 채널을 진행해보라는 제안을 주셨다.
지금 당장 현실적으로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메인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굴욕감, 그리고 그 굴욕을 삼키며 '그래, 일단 생각해볼까'라고 고민한 내가 너무나도 싫었다.
몇 날 며칠을 엎드려 울기만 했다. 내가 정말 55만 원짜리 사람인가? 내 가치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인가? 계속해서 고민했다. 한국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만 해도 월 180만 원은 받을 텐데, 수많은 노력을 쏟아부으며 유학까지 와서 결국 내가 벌 수 있는 돈이 55만 원이라니.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건 나 자신에게도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떨리는 손을 붙잡고, 마음을 다잡아 사장님을 찾아갔다. 그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기 위해서였다.
거절의 말을 내뱉기까지 수없이 망설였다. ‘현실적으로 돈이 필요하다’, ‘일단 경력을 쌓는 게 우선이다’라는 핑계들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나의 가치를 스스로 저평가하지 않기 위해 이 선택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 순간이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단순히 돈이나 경력만을 위해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법, 스스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거절의 말을 하며 내 안의 두려움과 불안이 온몸을 휘감았지만, 이상하게도 거절을 하고 난 뒤에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내 가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결국, 나를 지키는 선택은 단순히 거절의 용기를 넘어 내 가치를 다시 찾는 첫걸음이 되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앞으로 내가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나 자신을 믿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