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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멜 마키아또 디카페인, 두유

이미지 세탁

by JULIE K
제 이미지 세탁이 시급합니다.
너무 버릇이 없는데


일하고 있는데 아들에게서 뜬금없는 카톡이 날아왔다. 응?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아......


하고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브런치에 올린 글을 읽고 녀석이 한 말이었다. 딱히 나쁜 이미지를 씌운 것은 아닌데 녀석이 버릇이 없었다고 느낀 모양이다.


장난 삼아 아들에게 답장했다.


이미지 쇄신을 위한 거라면 이 어미를 위해 따뜻한 카라멜 마키아또 디카페인 두유를 사다 줄 수 있겠니?
네?
ㅋㅋㅋㅋㅋㅋㅋㅋ
됐다.


난감해하는 녀석의 표정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슬며시 번졌다. 한참 뒤에 큰 결심을 한 듯 녀석에게서 다시 카톡이 왔다.


어디서 사나요.
그 따뜻한 카라멜 마키아또 디카페인 두유를
엄마가 좋아하는 별다방에 가면 있단다.
근데 그거 들고 버스 못 탈 텐데
하지만 그거 한잔 사서 캐리어에 담아서 흘리지 않게 고이 집으로 가져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농담했어 집에 오기나 해ㅋㅋㅋ


장난과 진심을 섞어가며 별생각 없이 카톡을 이어갔다. 귀찮은 거 싫어하는 녀석이 설마 사 오겠어?라는 마음이 컸다.


스타벅스 사 드릴게요.


잉? 진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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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모나~~~~ 아들이 사 오는 커피 마셔 볼 수 있는 거야?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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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사진도 이쁘게 찍어줘~


아들이 진짜로 커피를 사 오겠다고 했다. 피를 들고 버스를 탈 수 없을 텐데.. 걸어오려나? 마침 일이 끝나서 지금 가면 시간을 얼추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 끝나고 집에 있는 딸아이와 설마 하는 마음으로 차를 끌고 마중 나갔다.


커피숍 바로 앞에서 신호대기에 걸려있는데 녀석이 차를 발견하고 급히 뛰어왔다. 한 손에는 따뜻한 커피가 들려 있었다.


온몸을 덮고 있던 패딩 자락을 휘날리며 쏜살같이 달려온 녀석은 재빠르게 차에 올라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느리게 재생되는 필름처럼 기억에 생생하 남았다.


"정말이네! 고마워~~ 잘 마실게!"


어느새 단단하게 커버린 녀석의 손에 들려 있던 커피를 받아 들었다. 기분이 묘하다. 어른들도 복잡한 주문은 하기 힘들어하는데 요 녀석이 카운터 앞에 가서 저 길고 긴 옵션들을 얘기했을 걸 생각하니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뭉클해졌다.


"그런데 이거 사이즈 이름이 왜 이렇게 어려워? 사이즈를 묻는데 몰라서 그냥 작은 거 달라고 했어. 톨? 그란데? 대체 이름을 왜 그렇게 지은 거야?"



커피를 사 온 녀석이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기분이 한층 좋아진 나는 아이들이 한 달 내내 사달라고 조른 햄버거를 사주기로 했다. 지난여름방학 동안 주 1~2회씩 사 먹고 그 뒤로 건강을 생각해서 자제하고 있던 참이었다.


커피만 마셔도 배부른 나는 아이들이 게 눈 감추듯 햄버거를 먹는 모습을 바라봤다. 오늘따라 커피가 유난히 달고 맛있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따뜻한 겨울 저녁이다. 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빨리 나와서 얼른 씻어~~~~~~어?!"


후... 행복은 잠시 내 곁에 와서 머물다가 다시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현실 속 육아전쟁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기분 좋게 외출하고 돌아온 날만큼은 빨리빨리 움직여주면 좋으련만... 여전히 녀석의 몸은 무겁고 동생과의 전쟁은 다시 시작되었다.


육아는 평생 끝나지 않을 인생 최대의 과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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