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는 무얼 할까?
"저는 티켓을 끊은 적이 없는데?"
"저는 티켓을 반품하겠습니다."
'노동 열차'라는 말에 아이들이 하나같이 내뱉은 말이다.
기나 긴 설 연휴가 다가왔다.
명절이라... 어린 시절 내가 겪었던 명절은 말 그대로 민족 대이동의 날이었다. 물론 지금도 가족을 만나기 위해 여전히 사람들은 고향을 찾지만 당시에는 전국이 떠들썩할 정도의 대규모 이동이었다.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도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꽉 막혀서 명절연휴에는 항상 이른 새벽에 출발해야 했다. 휴게소 한 번 들릴 때마다 시간이 늘어난다고 아침은 늘 차 안에서 해결하며 하루종일 고생고생 해서 달려간 시골은 깊은 산골에 있어 외지와 완벽히 차단된 곳이었다.
마치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것처럼 고요한 마을 어귀를 따라 들어가면 가장 안쪽에 할머니댁이 있었다.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와 햇볕이 잘 드는 마당, 주인 잃은 외양간이 항상 집 앞을 지키고 있었다.
돌담 안쪽에 있는 작은 헛간에서는 할머니께서 종종 가마솥에 감주를 한가득 끓이곤 하셨다. 달짝지근한 감주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넓은 대청마루 끝자락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시고 갓을 쓰신 할아버지가 걸터앉아서 먼 길 찾아오는 자식들을 지긋이 바라보고 계셨다.
수돗가에는 손으로 직접 펌프질을 해야만 물을 퍼올려서 쓸 수 있는 펌프가 있었고, 그 뒤로 울창하게 줄지어 있던 옥수수나무에서는 항상 탱글탱글 알알이 박혀있는 잘 익은 옥수수를 언제든지 수확해서 쪄먹을 수 있었다.
끼익 소리 나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면 커다란 가마솥 두 개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부엌이 있었다. 작은 창으로 연결된 방이 옆에 붙어 있는데 그곳이 안방이다.
구들장이 뜨끈뜨끈한 방 안에서 가족들이 빙 둘러앉아 식사를 했었다. 상은 늘 두 개가 펴지고 안쪽에서는 남자들이, 문쪽에서는 여자들이 앉아서 밥을 먹는다. 대청마루로 연결되는 바로 옆에는 작은방이 있고 그 끝에는 가마솥 한 개를 얹을 수 있는 화구가 있었다.
추석 때면 식구들이 모여 앉아서 송편을 빚는데 그곳에서 솔잎을 넣고 쪄낸 콩이 가득 들어있는 송편은 심심하면서 어린 내가 먹기에는 맛이 없었다.
아주 먼 옛날 삶의 방식대로 마지막까지 살고 있던, 내가 기억하는 깊은 산골 시골집의 풍경이다.
평화로운 시골마을에는 큰집, 작은집 등 친척분들의 집들이 띄엄띄엄 있었고, 각지에서 살던 가족들이 부모님을 뵈러 오면 사람들의 온기로 인해 조용하던 마을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놀거리가 딱히 없었던 터라 친척들과 논밭을 뛰어다니며 노는 것이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른들은 음식 준비로 바쁘고 어린이들은 먹기 바쁘다.
명절날이 되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차례를 지냈고 설날이면 어르신께 세배를 드리고 부모님을 따라서 집집마다 세배원정을 떠나야 했다. 가는 곳마다 항상 음식을 내어 주신 덕분에 위장은 잠시라도 쉴 틈이 없었다.
나의 어린 시절의 명절은 늘 음식과 사람들로 북적거렸었다.
안타깝게도 어른이 되고부터는 사람들이 점점 떠나가고 멀어지면서 예전과 같은 온기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주인을 잃은 집들이 없어지기도 하면서 시골마을은 점점 더 쓸쓸해져 갔다.
결혼을 하고 명절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바뀌었다. 교회를 다니시는 시어머니 덕분에 차례와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면서 명절은 가족이 모여서 밥 한 끼 먹는 자리가 되었다.
아이들이 겪은 명절은 나의 어린 시절과는 사뭇 다르다. 태어나서 한 번도 차례를 지내지 않았고 핵가족이 확산되던 시대를 거쳐 온 다음 세대의 녀석들에게는 친척이란 부재가 컸다.
더 이상 명절 분위기가 나지 않아 무료해하던 나는 무심코 아이들에게 한마디 던졌다.
"우리 오늘 노동 열차에 탑승해 볼까? 점심은 너희가 좋아하는 거로 먹고 힘을 내서 오후에 열심히 일을 해보자. 재밌겠지?"
"아~~ 뭔지 알 거 같은데... 공부해야 돼요?"
엄마가 말한 노동이 공부일 거라고 생각한 꼬마가 투덜대자 아들 녀석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 뜻이 아니잖아. 노동은 몸을 쓰는 거라고."
"아~! 알겠다. 만두 빚으라는 거 아니야?"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의 내 뜻을 단번에 간파해 버렸다. 한 번에 맞춰버리니 재미가 없었다.
"저는 티켓을 끊은 적이 없는데?"
다급하게 반존댓말로 아들 녀석이 외쳤다. 옆에서 듣던 꼬마도 한마디 거들었다.
"저는 티켓을 반품하겠습니다."
"음... 지금 만두 재료를 사러 마트에 가는 건데... 너희는 노동 열차에 이미 탑승한 거야. 점심은 맛있는 거 먹고 열심히 만두를 빚어보자. 오늘 하루종일 만들고 찌고... 열차는 쉼 없이 달릴 거야~~!!"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마트에 가서 필요한 재료들을 사고 점심을 든든히 먹었다. 집에 오자마자 남편과 함께 재료를 손질하고 만두 빚을 준비를 단단히 마쳤다.
아들은 이런 걸 왜 하냐며 투덜대면서도 앉아서 가장 예쁘고 곱게 만두를 빚었다. 마치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집중해서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빚어냈다.
한편 내심 손으로 만들기를 할 수 있다고 기대하던 꼬마는 자신만의 독특한 모양의 만두를 창의적으로 빚어냈다. 만두소가 적게 들어갔다고 혹은 끝이 제대로 붙지 않았다고 핀잔을 주며 아빠가 인정해주지 않자 토라져서 중간에 열차에서 하차해 버렸지만 꼬마도 큰 쟁반에 다양한 모양의 창작품을 한가득 만들어냈다. 녀석은 첫 번째 만두가 쪄서 나오자 제일 먼저 나와서 맛을 봤다. 맛있다면서 와그작와그작 잘도 먹는다.
만두를 빚으면서 열심히 쪄서 내오면 한쪽에서는 부지런히 먹어서 없애버리고 있었다. 직접 빚은 만두라서 그런지 다들 먹성 좋게 잘 먹어 주었다.
비록 모양은 투박하고 저마다 개성대로 제각각이지만 모두가 모여서 힘을 합치니 150개를 순식간에 빚어낼 수 있었다. 무엇 하나 남거나 버리는 것 없이 만두소와 만두피가 딱 맞아떨어져서 마지막까지 만들고 나니 뿌듯했다.
우리의 저녁메뉴는 자연스레 만두가 되었다. 자기 전까지 주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만두를 찾아서 먹는 녀석들 덕분에 순식간에 절반이 사라져서 허무하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일을 벌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같이 모여 함께하면서 명절다운 분위기도 낼 수 있었다. 언젠가 아이들이 커서 어린 시절을 돌아봤을 때 한 번이라도 오늘을 기억해 준다면 만두열차는 성공한 것이리라...
우리의 노동 열차는 다음엔 또 어떤 주제를 싣고 달릴까 궁금해졌다. 그런데 과연... 출발할 수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