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놀이
탁! 토독! 툭! 탁!
딸아이의 방에서 아까부터 계속 물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대체 뭐지? 조심스레 다가가서 녀석의 방안을 들여다본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꼬마는 방바닥에 주저앉아서 세상 진지하게 공기놀이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전학 가기 전까지 다니던 학교는 역사가 깊었다. 교실 한가운데 난로가 있었고 이른 아침 주번이 일찍 등교하면 땔감을 받아 오는 것부터 하루가 시작된다.
오래된 교실바닥은 나무로 되어 있어 매일같이 왁스칠로 닦아내야 했다. 손걸레로 왁스질을 하다가 손톱밑에 가시가 박힌 경험을 한 번씩 해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나무바닥에서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공기놀이를 하곤 했었다. 운이 나빠서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히면 쓰라리고 아프지만 노는 것이 더 재밌을 나이였다.
준비물은 오직 5알의 공깃돌만 있으면 되고 장소불문하고 놀 수 있으니 친구들과 함께 하기에 이만한 놀잇감이 없었다.
물론 공기놀이 말고도 할 수 있는 놀이는 무궁무진했다. 딱지치기, 구슬치기, 팽이 돌리기 등 흔히 레트로 게임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당시 제일 핫한 놀이였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코 고무줄놀이가 아닐까 싶다. 여유가 넘치는 점심시간이면 밥을 빨리 먹고 운동장으로 나가서 고무줄놀이를 했었다. 줄을 넘고 넘어 뱅글뱅글 돌다 보면 몸이 가벼워지면서 금세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유산소 운동이었다.
새로 전학 간 학교는 신축 건물이라서 교실바닥은 시멘트로 되어 있었다. 강철 콘크리트 바닥에서도 공기놀이는 빼놓을 수 없었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 노트에 기록을 적어가며 쉬는 시간마다 열정적으로 공기놀이를 했던 나는 자칭 '공기의 신'이었다.
그런 내게 딸아이가 양손에 꼭 쥔 공깃돌을 펼쳐 보이며 다가와서 말했다.
"게임에 참가하시겠습니까?"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오징어게임은 어른들은 물론이고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것 같다. 꼭 드라마를 보지 않더라도 각종 굿즈들이 만들어져서 판매되고 있으니 아이들이 모를 수가 없다.
으휴...
강아지 마냥 내 뒤꽁무니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연신 게임에 참여하라는 딸아이를 더 이상 못 본 체할 수 없었다.
녀석은 5년, 나는 100년을 걸고 게임을 시작했다.
어? 이상하다... 오랜만에 공깃돌을 잡았는데 내 신경세포는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5년, 10년, 15년... 계속해서 공깃돌을 잡아내고 있었다.
녀석은 아직도 1알을 넘기지 못하고 있는데 홀로 80년까지 독주하자 의욕을 잃은 듯 보였다. 봐줄 법도 한데 철없는 엄마는 모처럼 신이 나서 폭주 중이다.
"아... 왜 이렇게 잘해???"
꼬마는 공깃돌을 갖고 신나게 노는 엄마를 빤히 바라만 봤다. 녀석은 그 뒤로도 공깃돌을 갖고 다니면서 아빠, 오빠에게 대결을 신청했다.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주세요."
그렇게 우리 가족은 새로운 게임에 푹 빠져버렸다.
오랜만에 공기놀이에 재미를 붙인 우리 가족은 이번 설 연휴 때도 공기를 들고 친정을 방문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연례행사인 윷놀이를 하고 번외 경기로 공기놀이를 했다.
놀라운 것은 아버지의 공기실력이었다.
천천히 느리지만 높게 던져 올린 공깃돌을 바닥에 있는 돌을 잡는 동시에 제대로 받아냈다. 독특했던 것은 네 알을 할 때였다. 보통은 한알을 먼저 던지고 네 알을 내려놓는 방식으로 하는데 아버지는 다섯 알을 바닥에 던지고 한알을 주워서 던져 올리고 나머지 네 알을 잡으셨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게임방식에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소싯적에 공기놀이 좀 했었다며 멋쩍게 웃으시던 아버지는 숨은 공기실력을 보여주셨다.
여전히 공기놀이에 푹 빠져있는 딸아이는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공기를 한다고 했다. 매일같이 집에 오면 그날의 점수를 공유하는 녀석이다. 꼬마의 실력이 점점 늘고 있다.
아무래도 전완근에 힘을 길러야 할 때인 것 같다.
지독하게도 게임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도전항목이 생겨버렸다. 유행을 타지 않는 건강한 놀이, 이번 주말에도 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