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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lly, the sound of music

아직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by JULIE K

다시 1시간을 달려서 미라벨 정원으로 돌아왔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잘츠부르크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시끌벅적했던 오전과 달리 관광객들이 많이 빠져나간 뒤라 제법 한산한 모습이었다.



본격적인 여행은
지금부터


아까는 건너지 못했던 다리를 한가로이 건너본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에 있는 좁다란 골목 따라 아기자기하게 밀집된 상점들이 귀여웠다.


철제로 만든 독특한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획일화되어있지 않은 저마다 개성 넘치는 간판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해가 아직 저 높은 하늘 위에 걸려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상점들은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


유럽은 일요일이면 대체로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스위스 여행당시 하루 머물렀던 루체른 도착한 날이 하필 일요일이라 문을 연 상점들과 식당들이 없어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주말, 공휴일을 포함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우리의 사정과 다른 이들의 여유로움이 참으로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얼마 걷지 않아 말이 물을 마시 '페어데슈베메(Pferdesschwemme)'를 볼 수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을 병풍으로 가운데에 있는 말 동상과 다양한 포즈의 말 벽화가 인상적이다.


발길을 돌려서 이번엔 '모차르트 광장(Mozartplatz)' 쪽으로 걸었다. 가는 길에 '레지던스 광장(Residenzplatz)'을 먼저 만났다.


16세기에 지어진 광장 한가운데 있는 바로크 시대의 분수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살짝 흐려진 하늘 덕분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바로 뒤에는 장난감이 커진 것처럼 보이는 '잘츠부르크 대성당(Salzburg Cathedral)'이 우직하게 서있었다. 그 옆에 있는 돔광장에서는 연극공연이 한창이었다.


옛날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무대에서 열연하고 있었다. 빼곡히 자리한 관중들의 표정이 매우 유쾌하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구경하고 싶었으나 구를 막아놔서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모차르트 광장으로 넘어가서 벌써 세 번째로 영접하는 또 다른 모차르트 동상을 만났다. 광장 한가운데 우뚝 선 거대한 동상이 경이롭다.


건물들이 크고 웅장하지만 관광지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크게 힘들이지 않고 다닐 수 있었고, 분명 관광객들은 많은데 혼잡하지는 않았다. 외곽지역인 장크트길겐에 다녀오고도 해가 지지 않은 덕분에 계획표에 있던 관광지들을 다 둘러볼 수 있었다.


운 좋게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며 마침내 나만의 '사운드 오브 뮤직'이 완성되었다.



유럽의 여름밤


마지막 여행지인 '호엔잘츠부르크 성(Festung Hohensalzburg)'으로 는 길이 재밌다.


길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진지하게 대형 체스를 두고 있었다. 광장 뒤쪽에서는 커다란 스크린을 세우고 행사 준비에 한창이, 맥주를 마실 수 있는 Bar도 설치하고 있었다. 늘 중요한 파티가 있는지 멋진 턱시도와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여름에 진심인 이들은 오늘도 낮인듯한 밤을 멋지게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좁은 골목을 따라서 조금 올라가니 성으로 올라가는 푸니쿨라가 보였다. 람도 없고 늦은 시간이라 입장이 가능한지 몰라서 주저하고 있을 때, 마침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10시까지 운행한다고 살짝 귀띔해 줬다.


얼굴에 화색이 돈 나는 세상 단순하게 바로 티켓을 끊고 푸니쿨라에 올라탔다. 아직은 해가 떨어지지 않았으니 남은 시간 동안 충분히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푸니쿨라에서 내려서 나온 뒤 본능적으로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었다. 멋진 경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한 레스토랑이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다.


해가 질랑 말랑 아슬아슬하게 하늘에 걸려있다. 그 빛은 고스란히 마을을 비추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풍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조금 전 다녀왔던 광장에 대성당이 장난감 블록처럼 꽂아져 있었다. 성당과 건물들 역시 규칙적인 하나의 패턴으로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이번엔 계단을 따라 성으로 올라가 봤다.


성 안의 규모는 굉장히 넓었다. 대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성곽으로 둘러싸인 내부는 생각보다 안락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한 때 이탈리아 죄수들과 나치 전범들을 수용하는 감옥으로도 사용되었다는데 삭막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드문드문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 의지하며 채플도 둘러보며 구서구석 돌아다녔다. 높은 곳에 위치한 만큼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오늘 하루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다시 성 밖으로 나왔다.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 레스토랑이 내려다 보였다. 저무는 태양이 마지막으로 강렬히 쏟아내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아직 오늘이 끝나지 않았다고, 어서 오라며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살면서 한 번쯤은 누구에게나 대범해지는 순간이 온다.


평소라면 절대 가보지 못할 고급 레스토랑에 홀린 듯이 들어가 버린 나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얀색 유니폼을 입은 웨이터에게 이끌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자리에 앉아 기념사진을 기고 있었다.


바로 이렇게...

특정 스타일을 참고하지 않고 일러스트로 재해석한 사진


내게 이런 날이 오다니!


용기 내어 기회를 얻은 나는 앉은자리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독식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시원하고 맛있는 맥주와 슈니첼을 먹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다시 마을로 내려왔을 땐 해가 거의 저물어가고 스름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아까 지나왔던 대형 스크린에서는 한 편의 오페라가 상영되고 있었다. 분위기에 이끌려서 잠시 자리에 앉아 감상해 본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길고 길었던 오늘을 토닥여주는 소리였다.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배우의 표정과 발성에서 진심이 묻어난다. 잠시동안의 위로를 받고 슬쩍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한층 차가워진 바람이 불어왔다. 광장을 빠져나와 강 쪽으로 걸어갔다. 맑은 공기를 듬뿍 마셔본다. 오늘의 피로가 정화되는 기분이다. 하늘엔 반짝이는 달님이 이제 곧 시작될 짙은 어둠을 위해 초롱초롱 빛을 내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 마을로 향하던 그때 러닝을 하며 지나가던 사람이 사진을 찍어달라며 말을 걸어왔다.


풍경이 잘 나올만한 시간대는 아니었지만 양쪽 강을 경으로 서로 번갈아가면서 사진을 찍어줬다. 성스레 찍어 준 사진이 만족스러운지 남자는 유쾌하게 인사를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져 갔다.


잠시 한산했던 거리를 지나서 사람들의 바쁜 걸음을 따라가다 보니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게 됐다. 디서 왔는지 이제 막 불이 켜진 밤거리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 틈에 섞여서 걷다 보니 알 수 없는 해방감이 차올랐다. 이 밤의 공기, 온도,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소리, 가게마다 뿜어져 나오는 조명... 아주 오랜만에 걷는 밤의 거리에서 고단했던 하루를 마치고 퇴근하는 기분을 맛봤다.


모든 짐을 훌훌 벗어던지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던 나의 퇴근길... 24시간 풀가동 되는 시스템의 육아세계에 갇혀 살며 잊고 지내던 나의 퇴근 시간이 되살아났다.


진정한 밤이 찾아오기까지 알차게 보냈던 오늘의 여행을 마치고 이만 퇴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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