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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진 한 장 만으로

Hallstatt, Austria

by JULIE K

오래전부터 염원하던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날이 왔다.


매일 컴퓨터 전원을 켜면 배경화면으로 등장하는 사진, 세상의 모든 평화만 가득할 것 같은 비현실 적으로 아름다운 마을, 구상에 존재하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바로 그곳!!


나는 오늘 '할슈타트(Hallstatt)'로 떠난다.



상쾌한 아침은커녕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현실은 나의 설렘을 와장창 깨뜨렸다. 미국에서 온 덩치 큰 친구들이 좁은 방안을 부산 떨며 활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는지 침대 사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외출준비에 한창이라 2층 침대 위에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들만의 세상이 한창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쥐 죽은 듯이 꼼짝을 않고 누워서 기다려봤지만 아까운 내 시간만 허비하는 셈이 되자 슬금슬금 일어나 세면도구를 챙겨서 공용샤워장으로 향했다.


샤워장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발목까지 차오르는 거품 가득한 물바다에 깜짝 놀랐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바닥에는 온갖 오물들이 흥건했다.


후다닥 들어가서 씻고 나올까 잠시 고민했지만 차마 발을 들일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 문을 열자 이번엔 짐가방들이 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옆에서 헤어드라이어를 돌리고 있는 친구의 자리엔 역시나 머리카락과 하얀 먼지가 잔뜩 떨어져 있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들 쓰레기를 피해서 겨우 자리로 돌아오는 데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간 수많은 유스호스텔을 다녔지만 이토록 시끄럽고 무례하며 지저분한 곳은 처음이다.



꿈과 이상이
현실로 되는 순간


좁은 세면대에서 고양이 세수만 겨우 하고 시간에 맞춰서 부지런히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뜻하지 않게 장크트길겐에 다녀오면서 미 익숙해다고 모든 것이 일사천리다.


버스를 타고 어제 봤던 풍경들을 스쳐 지나갔다. 이제야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해맑은 경치들이 모든 불편한 감정들을 시원하게 날려주었다.


약 1시간 30분가량 달리는 동안 창밖 경치에 푹 빠져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중간 경유지인 '바트이슐'에서 내렸다. 542번 버스를 타고 다시 출발한 지 30분도 안 돼서 길 옆에 정차하고 있던 543번 버스를 발견했다.


버스가 멈추자 모든 승객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나 역시 반사적으로 일어나 543번 버스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로만 듣던 터미널을 통과하고 나니 탁 트인 마을이 나타났다.


이제 여기서 내리기만 하면 되는데...


눈에 띄는 이정표도 없고 안내방송도 나오지 않아서 제대로 맞게 찾아온 건지 다들 긴가민가 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때 가장 앞에 타고 있던 사람이 용기 있게 일어나서 버스기사 아저씨께 목적지를 확인했다. 분에 모든 승객들이 하차할 수 있었다.


휴~~~~!!



버스에서 내린 뒤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새하얗고 우아한 백조 무리였다. 투명한 호수 위를 가르며 유람선이 다가오 있었는데도 아랑곳 않고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백조가 참으로 고왔다.


평화로운 모습을 라보며 본격적으로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시 길을 나섰다.


꿈에 그리던 사진 속으로 조심스레 들어가 본다.


두근두근 심장이 떨려왔다. 기분 좋은 설렘이 가득 차올랐다.


드넓게 펼쳐진 반짝이는 푸른 호수주위를 둘러싼 알프스 기슭아래에 그림 같은 집들이 쏙쏙 자리하고 있었다.


뾰족한 지붕이 인상적인 집들을 올려다보며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기념품가게에도 시선을 주며 온전히 마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창가에 놓인 알록달록한 꽃들이 한들한들 춤을 춘다.


창문을 열면 향긋한 꽃내음을 맡으며 아름다운 경치를 매일 같이 감상할 수 있겠지? 이곳에 살면 근심걱정 없이 남은 여생을 잔잔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여긴 미세먼지도 없을 테고... 그런데 비나 눈이 많이 오면 산 위에 있는 집들은 안전할까?


비탈진 산기슭에 아슬아슬하게 자리한 집들을 올려다보며 나의 쓸데없는 공상들이 무수히 증식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버스에서 함께 내렸던 사람들은 이미 한참을 앞서가고 있었다. 고요해진 거리를 걷다 보니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소소한 것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길가에 세워둔 자전거도 왠지 의미 있어 보이고 건물 사이로 보이는 호수마저 반가웠다. 독특한 모양의 간판에도 눈길이 가며 파스텔 톤의 건물 외벽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의 중심인 '마르크트 광장(Central Square Marktplatz)'이 나왔다. 광장을 에워싸고 있는 색색의 집들이 한 폭의 풍경화를 완성했다.


광장에는 여러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하나의 경치로만 여겼던 나는 눈여겨보지 않고 바로 지나쳤다. 안타깝게도 혼자 여행하면서 커피 한잔 할 만큼 마음에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사실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이 따가워서 머릿속은 온통 빨리 이곳을 둘러보고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발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어느새 좁은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집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니 또 다른 분위기가 연출됐다. 골목 사이사이로 보이는 경치가 일품이다. 하지만...


높은 곳에 올라오니 햇살은 더욱더 강렬하게 내리 꽂혔다. 조금만 더 가면 소금광산이 나올 것 같은데 혼자서 광산을 체험할 만한 용기는 없었다.


목적지가 사라진 길을 터벅터벅 걷던 바로 그때, 배 한 척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분주히 배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손에 짐가방이 들려있는 것으로 보아 할슈타트 기차역에서 넘어온 것이 분명하다.


빠르게 선착장으로 달려갔다.


안내표에는 바트이슐을 지나 아트낭까지 가는 경로가 적혀있었다. 경유지로 지나쳐왔던 바트이슐에서 버스를 타면 숙소로 돌아갈 수 있다.


찾았다!


뙤약볕을 맞으며 왔던 길을 다시 걸어가지 않아도 이 마을을 탈출할 방법을 찾은 것이다. 전망대고 뭐고 더위에 지친 나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 없이 배표를 끊었다.


마침 바로 출발하는 배가 있었다.


지체 없이 배에 올라탔다.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출발을 알렸다. 시원한 바람에 깃발이 펄럭인다. 청량함이 가득한 공기가 더위를 속 시원하게 날려주었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늘 아침의 나는 배를 타게 되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충동적이었지만 무모하지는 않았다. 가장 짜릿한 이 순간, 탁 트인 경치가 즐거움을 더해준다.


생기를 되찾은 나는 점점 멀어져 가는 마을을 바라봤다. 림 속 풍경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가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오직 사진 한 장 만으로 먼 길 달려온 할슈타트서 남긴 추억은 여름날의 뜨거운 태양처럼 강렬하게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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