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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왔구나!

쌈닭

by JULIE K

녀석의 표정이 어둡다. 얼굴 근육의 미세한 떨림도 느껴지지 않는다. 온몸의 세포들이 신경질적으로 변한 것이 전해진다.


이제 중학교 3학년. 벌써 졸업반이다. 어렵고 힘든 것은 이미 다 지나왔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관문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쎄.. 하다.


언젠가 녀석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만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이라니? 대체 날 평소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서운했다. 별생각 없이 툭 던진 말 같아서 더욱더 속상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시간이 지나고 괜찮아졌다.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화를 낸다 한들 뭐가 달라질까...


그래도 중간중간 웃어주는 것에 고마웠다. 말도 안 되는 농담에 안도했다. 어디 가자고 하면 잘 따라 나서 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렇게 모든 게 끝인 줄 알았다.



아들이 낮은 목소리로 딸을 불렀다.


"너 이거 왜 내 방에 버렸어?"


젤리 봉지를 내밀며 말했다.


"내가 안 했는데?"


"거짓말하지 마!"


순간 밖에서 천둥이 친 줄 알았다. 늦은 밤 녀석의 목소리가 온 집안을 쩌렁쩌렁 울려댔다. 이성을 잃은 녀석이 동생에게 따지다가 아주 찰지게 튀어나온 욕이 내 귀에 박혔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내가 나서야 하는데 그럴 기운이 없었다.


낮에 학원에서 아이들이 "선생님, 다 했어요~!"라고 수시로 불러대는 호출벨 소리에 하루 종일 스트레스받아 심장이 한번 덜커덩거렸기 때문이다.


얼굴엔 미소를 띠고 목소리는 나긋나긋 하지만, 속에서는 천불이 나고 있었다.


컨디션이 왔다 갔다 하는 요즘이기에 한 문제만 풀고 봐달라고 부르는 아이들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거슬렸다.


이것은 휴식이 필요하다고 몸이 보내는 신호가 분명하다.


교복을 입은 채로 꿀맛 같은 낮잠을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서 불호령을 내는 아들을 감당할 깜냥이 되지 못했다. 조용히 남편을 내보냈다.


마지못해 거실로 나간 남편이 중재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아빠가 말하는데도 여전히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되려 목소리를 더 키우고 핏대를 세우며 따져대기 시작했다.


"젤리를 먹고 왜 내 방에다가 버리냐고! 내 방이 쓰레기통이야?"


"그런 적 없다고 몇 번을 말해?"


"가만, 이거 날짜가 2005년 3월 까지라고 되어 있는데? 오늘 먹은 거 맞아?"


눈썰미 좋은 남편은 봉지에서 유통기한 날짜를 발견했다.


동생이 먹은 것이 아니란 것이 밝혀졌음에도 녀석의 화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자고 일어났는데 책상 밑에 봉지가 눈에 띄었다며 이건 분명 동생이 먹고 버린 것이라 확신에 가득 차있었다.


"너 요즘 왜 이렇게 쌈닭이 됐어? 사가 극단적이잖아. 지금도 확실한 증거도 없이 무작정 동생한테 화내고 있잖아? 억울하지 않겠어? 바로 동생에게 사과해."


남편의 말에 그제야 조금은 이성을 찾았는지 녀석은 퉁명스럽게 "미안해." 한 마디를 던졌다.


끝났다.


하지만 모두의 마음에는 상처가 남았다.



바르고 고운 말 사용하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듣는 사람의 기분을 고려해서 말하기


요즘 초등학생들이 국어시간에 배우는 것들이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가르치고 배우게 한다.


요 녀석도 분명 지난 과거 어느 시점에 배웠을 것이다.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상황을 정리해 보고 상대에게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살펴보고 듣는 사람을 생각하며 고운 말로 말해야 한다는 것을...


그런데... 이게 현실에서도 가능한가?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딸에게 간식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며 아들 것도 슬며시 한 개 더 사놓았다는 것을 녀석은 알까?


프레임을 씌운 채 상대를 바라보는 것은 상당히 어리석고 위험한 생각이다.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품던 성품을 다시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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