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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부모는 필요해

10대 청소년의 패기

by JULIE K

"엄마..."


좀처럼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 아들이 저렇게 말하면 괜히 긴장 된다. 이번엔 또 무슨 부탁을 하려고 저럴까.


"엄마, 공항 갈 때 애들이랑 택시 타고 가면 어때?"


짧고 굵게 한마디 던진 녀석의 얼굴을 슬쩍 올려다봤다. 색함을 감추려는 표정 속에서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히 웃고 있는 기색이 보였다.


대답을 기다리는 아들은 지금 누구보다 긴장해 있다.


"뭐? 공항 가는데 택시를 탄다고? 보호자도 없이?"


"엄마, 근데 아까 있잖아..."


"아, 쫌! 조용히 좀 하라고. 내가 엄마랑 얘기하고 있잖아!"


녀석은 눈치 없이 대화에 끼어든 딸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화가 끊겼다.


이후로 녀석은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아마 반쯤은 허락을 받은 거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싸움과 암묵적인 화해가 반복되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던 무렵이었다.


아들의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에 잔뜩 화를 지만, 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사춘기 아들과는 맞서지 않는 게 좋다 해서 꾹꾹 참고 넘온 일들이 쌓여 있던 터였다.


그런데 내 뒤통수에 대고 뭐라 뭐라 투덜대며 문을 쾅 닫는 행동에, 마침내 참고 있던 분노의 화산이 터지고 말았다.


아무리 두려울 것 없는 10대라 해도 사리분별 못하고 부모를 무시하는 행동은 분명 잘못이다. 그간의 서운했던 감정들까지 한꺼번에 쏟아내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여전히 내 말을 제대로 듣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녀석을 오냐오냐 받아 줄 상황은 아니었다.



아침에 등교하는 차 안엔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침묵을 깨기 위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택시 타고 공항 간다는 거야? 집이 다 흩어져 있는데 어떻게 하려고. 어디서 모여서 출발하는데?"


제주도로 떠나는 졸업여행이 코앞인데도 우리는 여전히 공항까지 어떻게 갈지를 두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택시를 먼저 잡아서 타고 가면서 애들을 한 명씩 태우려고. 돈은 엔빵 하기로 했어."


공항 집결 시간은 오전 6시. 히는 시간이 아니라 해도 일찍 출발해야 한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아이들끼리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건 영 달갑지 않았다. 더군다나 혼자 먼저 택시를 겠다는 건 더욱 그랬다.


"친구들은 엄마한테 허락받았대?"


아이들 부모들도 모두 동의한 건지 궁금했다.


"그건 나도 모르지."


"왜 몰라? 엄마들이 다 허락해야지 가는 거 아니야? 다른 엄마들도 애들 택시 타라고 했는지 궁금해서 그래."


"아, 학교에서 애들이랑 엄마 얘기 안 한다고. 그냥 그런 얘기 안 한다고. 엄마한테 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알아."


"그럼 아직 말 안 했다는 거야? 너도 엄마 허락 같은 건 애초에 상관도 없었던 거네? 맘대로 갈 거였으면 왜 나한테 물어본 거야? 처음부터 엄마가 공항까지 데려다준다고 했잖아. 굳이 택시를 타고 가야 할 이유가 있어?"


"나도 안 해본 게 많잖아. 그런 걸 해보고 싶어서 그래."


"그건 커서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굳이 지금 해야 하는 건 아니야."


"......"


"너 맘대로 해! 어차피 내 의견은 중요하지도 않았잖아. 아직 민증도 안 나온 중딩이 새벽에 택시를 타는 게 말이 돼?"


"어차피 몇 달 뒤면 고등학생이야. 이제 중학생이 아니라고."


"그래서 지금 네가 졸업했어? 아직 중학교 소속이잖아.

MIDDLE SCHOOL STUDENT!!

엄마가 뭘 걱정하는지 정말 몰라서 그래? 아, 몰라. 알아서 해. 대신 나한테 택시비 달라고 하지 마!"


얘기를 하면 할수록 목소리가 점점 격해졌다. 차에서 내리는 녀석을 끝내 바라보지 못했다.



집결 시간에 맞추려면 적어도 새벽 4시 반에는 출발해야 한다. 이른 새벽에 준비해서 움직여야 하기에 내가 데려다주겠다고 이미 말해둔 상태였다. 물론 친구들과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혼자 택시를 타 본 적도 없는 녀석이 그것도 동트기 전 새벽에 택시를 타겠다는 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중요한 일을 친구들의 부모와 상의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더 아이러니했다.


품 안에 자식이 어느 날 갑자기 뛰쳐나가려 한다.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간다. 세상이 뭔지도 모를 아장아장 걷는 아가였을 때나, 머리 좀 컸다고 세상이 만만해 보이는 10대인 지금이나, 뭐든지 다 해보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


후...


단전에서부터 깊은 빡침이 치밀어 오른다. 내가 너무 세상을 등지고 살아온 걸까? 다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걸 나만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닌지, 잠시 한걸음 물러서서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답은 여전히 같았다.


사정이 있어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에게는 필요하면 제라도 달려갈 부모가 있지 않은가. 다소 극성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걱정되는 마음만은 감출 수 없었다.


아직은 녀석을 물가에 내놓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냥 엄마차 타고 갈게."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녀석이 슬그머니 다가와 무심히 한마디 던지고는 방으로 쏙 들어갔다. 그 말 한마디에 그동안의 감정이 모조리 사라졌다.


고집부리지 않고 부모의 뜻을 따준 아들이 고마웠다.


결국 녀석은 엄마, 아빠와 함께 차 안에서 아침을 먹으며 편안하게 공항으로 향했고, 신나는 졸업여행도 알차게 잘 다녀왔다.


녀석이 제주도에 있는 동안, 우리 가족의 단톡방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수시로 연락하라는 엄마의 미션을 열심히 수행한 덕분에 새 글과 사진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그리고 물을 한 아름 들고 돌아온 아들은 (요즘 유행하는 독감에 우리 가족 중 제일 먼저 걸려) 시간 맞춰 배식되는 식사와 간식을 받아먹으며 행복한 '감금생활' 중 있다.


그러니까...

아직은 우리가 필요한 기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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