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구석이 있는 자의 여유
곤히 자고 있는 아들을 보고 있으면 그저 부럽기만 하다.
저 아이는 알까? 나도 너와 같은 마음이란 것을.
밤이 길어져 슬픈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칠흑 같은 어둠 속, 고요를 깨우는 건 어김없이 휴대폰 알람이다.
가볍고 경쾌한 소리와 달리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이다. 무거운 물미역처럼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몸을 억지로 쭉 뻗어 깨워본다.
오늘도 여전히 아들은 단잠에 빠져있다. 문을 두드리며 조심스레 깨운다.
"일어날 시간이야!"
내가 깨우는 소리에 미동도 않는 녀석은 여전히 일어날 생각이 없다. 결국 아들 깨우기를 포기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나와 별로 친하지 않은 이 공간에서 아침마다 시간을 보내는 건 여전히 달갑지 않다.
그래도 뭐라도 먹여서 보내야 하기에 사부작 거리기 시작했다.
오늘의 메뉴는 샌드위치.
호밀빵에 치즈, 계란 프라이, 루꼴라와 싱싱한 토마토까지 준비해 모처럼 브런치느낌으로 차려본다. 빠르게 손을 놀려 최대한 근사한 샌드위치를 완성했다.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녀석은 여전히 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눈은 살짝 뜬 듯하지만 정신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녀석에게 마지막 경고를 던진다.
"지금 안 일어나면, 나 들어가서 잘 거야."
설령 지금 당장 일어난다 해도 이미 지각이다. 대중교통으론 절대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다. 결국 또 내가 데려가야 한다.
정말이지, 오늘 만큼은 기분 좋게 나가고 싶다.
무거운 눈꺼풀을 꿈벅이며 눈을 먼저 뜬 녀석은 한동안 부동의 자세로 천장만 바라본다. 몇 번씩 왔다 갔다 해도 꿈쩍을 않던 아이가, 10분 만에 마침내 몸을 일으킨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처럼 아주 천천히.
단번에 일어날 생각은 없는지, 이번엔 앉은 자세로 멍하니 한 곳만 응시하며 가만히 있다.
방문 밖으로 나오기까지 정확히 15분. 그동안 내 속은 몇 번이고 뒤집혔고, 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만 점점 타들어 간다.
겨우 걸음을 뗀 녀석은 어기적어기적 다가오더니 준비해 둔 샌드위치를 세상 느린 속도로 집어 들었다.
그 여유로운 모습이란, 반대 손에 따뜻한 코코아 한 잔 쥐어주고 식탁에 영자신문만 깔아주면, 집이 아니라 브런치 카페 인증샷처럼 보일 판이다.
아! 모닝팝이라도 틀어줘야 하나?
시간은 쓸데없이 정직하게 흐르고 있는데 녀석은 시계를 한 번도 보지 않는다. 음식을 꼭꼭 씹으며 오늘도 대쪽같이 아침식사 중에 있다.
쟤 뭐야... 지금 나만 급한 거야? 학교 안 갈 거냐고?!
발만 동동 구르며 속이 타들어가는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는 녀석은 이제야 식사를 마치고 씻으러 들어갔다.
출발 3분 후, 이미 나갔을 시간에도 아들은 스킨에 에센스까지 찹찹 두드리며 피부관리도 잊지 않고 챙긴다.
늦었다며 허둥지둥 옷을 챙기는 장면은 예전 가족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체육복을 집어드는 모습에 결국 속이 터진 나는 먼저 차에 시동을 걸러 나갔다.
출발 시간은 1분, 3분, 7분... 점점 늦어져, 원래 출발 시간보다 무려 15분이나 지체됐다.
아들 등교시키는 아침시간에 온전히 쏟아부은 지 어느새 3년, 이제 졸업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두 달 정도뿐이다.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에 눌려 점점 지쳐간다.
그동안 최선을 다 해 해 왔던 일이 이제는 하기조차 싫다. 마치 말년 병장이 된 기분이랄까? 물론 책임감 하나로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겠지만, 스트레스로 얼룩진 아침은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
나도 속 편하게 늦잠을 자고 여유롭게 커피와 샌드위치를 즐기고 싶다. 하지만 녀석이 내년에 고등학생이 되면 이보다 더 바빠지겠지?
벌써부터 고생길이 보이는 2026년은 제발!
아주 아주 천천히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