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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Feb 12. 2024

배움의 속도

느림의 미학

아이들은 저마다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 시기와 기간, 또 그 방법이 다양하다.


유난히 배움에 있어서 신중한 꼬마는 남들과 다른 속도를 갖고 산다. 둘째들은 뭐든지 빨리 배운다는 편견을 깨 녀석이다.


어린 시절 말을 못 하는 녀석이 늘 걱정이었던 나는, 어느 날 어린이집 선생님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지나가는 말로 고민을 털어놨다.


유난히 꼬마를 예뻐하신 선생님께서는,


"친구들이랑 선생님들이 하는 말은 다 알아들어요. 특히 친구들을 유심히 잘 관찰하는 편이에요. 아마 말을 하지 않더라도 지켜보며 어떻게 말하는지 스스로 익히고 있는 중일 거예요. 신중하고 완벽한 성향을 갖고 있는 아이들은 언젠가 한 번에 능력을 쏟아내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라며 안심시켜 주셨다.


언어치료를 알아볼 생각까지 하던 터라 선생님의 진심 어린 조언은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은 원래 말을 했던 아이처럼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녀석은 말을 못 해서가 아니라 안 하고 있다가 준비되었다 싶은 순간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완벽한 문장으로 정확한 표현들을 사용하면서 말이다.


생각해 보니 처음 걷기 시작한 순간에도 그랬던 것 같다.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오후, 여느 때와 똑같이 커다란 칠판 앞에서 자석놀이를 하고 있던 녀석은 갑자기 뒤를 돌더니 원래 걸을 줄 아는 아이처럼 정확하게 5걸음을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놀라워서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걷기부터 뛰기까지


한글을 배울  때도 그랬다. 글자를 모르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녀석은 걱정거리 하나 없이 마냥 행복한 마음으로 학교에 가방만 메고 왔다 갔다 했다.


조바심이 날 법도 했지만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에 학교에서 배워 오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글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학습이 되었다. ㄱ,ㄴ,ㄷ 도 모르던 아이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책도 곧 잘 읽어 나갔다.


유난히 빠른 아이와 느린 아이를 키우면서 답답하기도 하고 힘들었지만 비교하지 않고 각자 갖고 있는 능력을 봐주려 노력했다.


몇 번 시도했다가 안 되는 것은 재촉하지 않고 아이의 속도에 맞춰서 기다려주었다.



물에 대한 공포가 있던 첫째 아이는 어린 시절 수영 한번 들어가서 놀기까지 30분이란 시간이 소요됐다. 발부터 가슴팍까지 천천히 물 적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 심장은 소중하잖아요."

당시 녀석이 남긴 명언이다. 그러고 보니 모래사장에서 맨발로 뛰어놀기까지 유난히 오랜 세월이 걸린 녀석이다. 발에 닿는 모래의 느낌을 굉장히 싫어했었다.


그 모습이 하도 답답해서 초등학교 입학하자마자 친구들과 함께 수영강습을 등록했는데, 녀석이 처음 수업 가는 차 안에서 모든 걸 체념한 듯 눈물을 보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가는 길 내내 걱정되고 신경 쓰였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이기에 일단 도전해 보기로 했다. 해보고 정말로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그만두면 된다.


떨리는 마음으로 엄마들과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수영복으로 환복하고 나온 녀석이 뛰어오더니 그 자리에서 풀장으로 첨벙! 하고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저 아이가 내 아이가 맞는지!


수심이 얕은 풀이긴 했지만 아이들에게 허리까지 오는 높이였다. 내가 아는 녀석은 분명 계단을 붙잡고 천천히 들어가며 온몸에 물을 묻혀야 하는데..


첨벙! 이라니? 풍덩! 이라니?!

결국 이렇게 잘 놀 거


뒤통수를 맞은 듯 배신감이 들었지만 걱정과 달리 자신감 넘치게 수영을 배우기 시작해서 누구보다 완벽한 자세로 모든 영법을 마스터 한 녀석이다.



반면 겁이 없어 수영은 빨리 배울 것 같았던 꼬마는 예상과 달리 몇 개월을 속을 였다. 역시나 친구와 함께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즐겁게 잘 배워 나갔다.


문제는 시작한 지 3주 만에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깊은 물로 옮기고부터 시작되었다.


겨우 킥판과 동동 벨트에 의지한 채 앞으로 나아가는 단계인데 본인의 키보다 깊은 수심에 공포가 생긴 것이다.


앞으로 쉽게 가지 못하고 자꾸 벽을 찾는 녀석이 안쓰러웠다.


진도를 빠르게 배워나가는 친구들과 달리 홀로 고군분투하던 녀석은 결국 다시 낮은 풀로 가게 되었. 하지만 완전 초보가 아니어서 낮은 풀이라고 해봤자 가슴까지 잠기는 깊은 풀이었다.


역시나 적응을 하지 못하고 제자리만 맴돌았. 그러던 어느 날 바뀐 선생님의 지도방식이 아이에게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수영을 그만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꼬마가 다니는 학교에는 생존수영 시간이 있다. 일주일에 세 번씩 특정 기간 동안 생존수영을 배운다.


수영을 배워서 자유롭게 그 시간을 즐긴 큰 녀석과 달리 요 녀석은 분명 아무것도 하지 못 한채 시간만 때우다가 오게 될 것이다.


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나와 같은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 때 학교에서 제주도로 야영을 가게 되었는데, 프로그램 중에 바다수영이 있었다.


교관들 키에 가슴까지 오는 깊이까지 수영해서 반환점을 돌아서 와야 했다. 수영을 할 줄은 몰랐으나 물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기에 천천히 걸어서 들어갔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이 사고라고 했던가!


높은 파도가 치자 순간적으로 수심이 깊어지면서 물에 빠지고 만 것이다. 다행히 바로 구조되어 물 밖으로 나왔지만 그 뒤로 수영은 나에게 다른 세상의 것이 되었다.


아이들은 나와 달리 물로부터 자유로웠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나중에 커서 친구들과 놀러 가서도 가만히 지켜보기보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한 것이다.


기왕 시작한 거 물에 뜨기라도 해줬으면 하는 심정으로 다른 수영장을 알아봤었다.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기다려주고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유아풀장에서 하는 소그룹 수업으로 새로 등록해 줬다.


다행히 수업 전에 상담전화가 걸려와서 선생님께 아이 상태에 관해 미리 언질을 줄 수 있었다.


화통한 성격의 선생님께서는 물에 대한 공포를 이기는 것은 쉽지 않다며 천천히 아이를 기다려 주셨다.


아이의 팔을 인형팔 돌리 듯이 붙잡고 억지로 수영을 하게 한 이전 선생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과 친밀감을 형성하며 즐겁게 수영을 배우던 딸아이는 어느 날 아무런 도움 없이 맨몸으로 자유형에 성공했다.


감동적이었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물놀이가 즐거워요


힘들었지만 잘 이겨내 준 아이가 기특하고 대견했다. 이듬해 녀석은 생존수영을 즐길 수 있는 실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토끼와 거북은 지금까지도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이야기다. 책이나 문제집 등 어딜 가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나는 이 이야기가 참 좋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여전히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꼬마는 분명 배움에 있어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어느 날 보면 정상 부근까지 올라가 있다. 요즘 들어 암산하는 실력을 볼 때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으니 말이다. 녀석은 분명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남들과 조금 더 잘한다고 자만할 필요는 없다.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먹으면 그 정도 차이는 금세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이들의 능력이.


모두가 같은 시기에 배운 것을 다 잘한다면 세상은 재미없지 않을까?


각자 가지고 태어난 능력이 다 다르기 때문에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이끌어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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