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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Feb 05. 2024

그래, 주인공은 바로 너야!

예비 중2

어디론가 향하는 차 안,

아이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역시나 대화의 상당 부분은 실없는 농담 따먹기다.


브런치작가에 선정돼서 이제부터 엄마의 필명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아이들에게 했다.


집에서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아줌마가 아닌, 비록 정식은 아니지만 '작가'라는 타이틀이 정말 소중했. 아이들 앞에서도 왠지 모르게 내 어깨가 쫙 펴지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 좋게 녀석들과 대화하던 중 아들 어이없는 에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


"엄마가 다음 글로 쓸 주제가 떠올랐어. 주인공은 바로 너야. 어때? 제목은 중2 탐구생활! 아, 아직 1학년이니까 예비 중2 탐구생활로 하자. 꽤 그럴싸하지 않니? 너에 대해 모든 걸 써보는 거야!"


라고 즉흥적으로 떠오른걸 툭 던져버렸다.


요즘따라 꼬박꼬박 말대답하는 것이 상당히 얄미운 구석이 있어서 농담 삼아 얘기를 꺼냈다. 만류하며 조용히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녀석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은근슬쩍 기대하는 눈치인 거 같기도 하고..


여행기 쓸 목적이었는데 엉겁결에 새로운 소재가 생겨버렸다. 육아하면서 겪었던 일들과 감정들을 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여름 아들이 무심코 던진 첫마디가 떠올랐다.


"저 내년이면 중2예요."


이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 제법 생생하게 떠올랐다. 시간이 흘렀지만 잊고 있었던 에피소드들이 하나 둘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 뒤로 대략 몇 가지 주제를 잡고 글을 써서 올리기 시작했다.


아들은 이미 브런치어플을 깔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올라오는 글을 읽고 있었다. 본인에 관한 글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첫 글을 올리자마자 녀석에게 물었다.


"어때? 엄마가 올린 글 봤어?"


"음.. 괜찮았어. 그냥 10대 애들이 좋아할 것 같은 내용이에요."


이거 뭐지? 재밌다는 거야, 유치하다는 거야? 그냥 내용이 심플하단 건가? 녀석의 애매모호한 칭찬이 거슬렸.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물어봤다.


"음.. 근데 나를 왜 이렇게 착하게 써놨어.. 좀 더 못되게 써도 될 것 같아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실 그랬다. 사춘기 아들에 관한 글을 쓴다고 포부를 밝혔는데.. 이렇다 할 특출 난 에피소드가 없었다. 들과 머리끄덩이를 잡고 대판 싸운 것도 아니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대든 적도 없었다.


녀석이 했던 반항이라고는 고작 질문을 하입을 꾹 닫고 한참 동안 대답을 안 한다던가 말을 하더라도 짜증 섞인 말투 하는 정도였다.

반항기가 가장 물올랐을 때


어디 가자! 했을 때, 싫어요!라고 자신 있게 의사를 밝히기 시작했고, 그저 녀석의 순딩순딩 했던 취미와 관심사들이 하드코어로 바뀐 것뿐이다.


우연한 기회에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는데 녀석이 뜬금없이 무섭고 잔인한 이야기가 읽고 싶다며, 피 흘리는 장면이 나와도 상관없다고 얘기했다.


아.. 녀석의 취향이 확실하게 바뀌었다. 공포영화를 싫어했는데 어느 순간 그런 종류의 영화를 보고 싶어 했다. 귀신이 나오면 좋겠다면서..


살짝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셜록홈스를 추천해 줬다. 엄마도 중학교 다닐 무렵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좋아했다는 말과 함께..


본인의 생각을 공유해 줬다는 것이 고마다.

너의 소중한 첫 추리 소설책



그래! 조금 더 진지하게 과거를 떠올려 보자! 센 거 한방이 나오겠지..


어느 날 낯선 사람이 방 안에서 하숙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린아이에서 불쑥 커버린 남자사람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화도 냈었다. 나 혼자 열받아서 씩씩대던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녀석의 행적들을 기억하려 할수록 예쁜 말과 행동들을 했던 머나 과거의 일들만 떠올랐다.


당시엔 꽤나 심각했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생생했던 감정이 무뎌면서 행복했던 기억만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 함함하다고 한다.' 하지 않은가!


녀석의 작은 변화들을 마주할 때마다 당황해서 크게 확대해석 했을 뿐, 지나고 보니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녀석의 행동은 무것도 아니었다.



문득 예전에 친구들과 나눴던 얘기가 생각났다.


"아직 방문 안 닫았지?"


"어? 응.. 그..렇지?"


"그럼 아직 사춘기가 시작된 게 아니야. 진짜 사춘기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안에서 뭘 하는지 간섭조차 못하게 해. 이 일로 서운하다고 얘기하니까 옆에 있던 엄마가 뭐라 했는지 알아?"


"아니, 뭐라고 했는데?"


"어휴.. 거기는 아직 집 안 나갔잖아!"


그렇구나.. 아직 진정한 사춘기의 세계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구나. 심란했던 그때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다행히도 녀석의 방문은 아직까진 활짝 열려있다. 요즘 들어 부쩍 방문을 닫는 일이 늘어나긴 했지만 말이다.


녀석의 굵직했던 목소리도 조금 얇아고, 울긋불긋 피어올랐던 여드름도 들어가기 시작했다. 앞뒤 가리지 않던 표현 방식도 조금씩 다듬어져가고 있는 요즘다.


사춘기는 끝났구나! 심하고 있었는데, 단순히 첫 번째 터널을 무사히 지나온 것뿐인가?


그러고 보니 중학교 2학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구나.. 진정한 중2 모습일기대반 걱정반이다.



얼마 전 아들에게 최근 올라온 글들에 관해 물어봤다.


초심을 잃었다고 했다.


갑자기 종교얘기가 왜 나오냐고 했다. 사춘기아들에 관해서 쓴다고 해놓고 뜬금없이 아멘을 외치냐고..


가기 싫다고 펄쩍 뛰던 아이가 어떻게 템플스테이에 가서 적응하고 성장했는지 과정은 하나도 없다며 진심을 다해 열변을 토했다.


스토리에 집중하지 않은 것 같다며 혹평을 쏟아냈다.


좋아요 수도 적지 않냐며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해서 그런 거란다. 한참을 잔소리 아닌 잔소리로 신랄하게 비판하더니 하는 말,


"이제 좀 속이 시원하네!!"


그 말을 듣고 혼자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지금 주인공이 네가 아니라서 이러는 거지? 아멘에 밀려서 속상했구나?"


생각해 보면 녀석의 활약이 크게 두드러진 게 없었다. 가기 싫어했지만 설득하는 게 크게 힘들지도 않았다.


말로만 가기 싫다며 시렁거릴 뿐 막상 가서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와 대화도 잘하고 밥도 잘 먹고 프로그램을 착실하게 잘 수행했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다만 이런 프로그램을 이들과 함께 해서 좋았기에 소개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길게 쓸 내용이라고는 정말로 '아멘' 밖에 없었고, 한 번 얘기도 쓰고 싶었다.


템플스테이가 어렵게만 느껴졌었는데, 그 안에서 가장 크게 변하고 뭔가를 깨달은 사람이 바로 나라고..



때론 그 표현이 거칠지만 진심 어린 녀석의 피드백은 나의 마음을 울렸다.


아들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녀석과 부쩍 가까워진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내가 쓴 글을 읽고 난 뒤부터 대화할 거리가 늘어났다.  모르게 녀석의 행동과 말투가 좀 더 부드럽게 변한 느낌도 들었다.


여전히 툴툴 대지만 무언가 부탁했을 때 움직이기 시작했고, 엄마의 말을 아주 조금은 귀담아 주기도 했다.


비록 썰렁한 아재개그와 말도 안 되는 라임개그로 엄마를 놀력 먹기도 하지만 녀석의 표현방식이 바뀐 것뿐이라 생각된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생각을 함께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대화하면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아직도 서로의 생각이 다를 땐 부딪히기도 한다. 하지만 녀석을 이해하고 존중해 주려는 노력도 끊임없이 해 볼 생각이다.


다만 한 가지, 작은 녀석 걸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 지나가는 말로,

"기분이 오락가락하고,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하고, 만사가 귀찮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라며 당차게 얘기했다.


한고비 넘기니 더 센 녀석이 기다리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의 성장과정은 또 어떨지 벌써부터 고민이 많다. 이미 겪어 온 길이지만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인 녀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려운 순간들이 불쑥불쑥 생겨나기 시작했다.


두 아이들의 성장통을 함께 할 올해가 가장 힘든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새롭게 만들어 갈 녀석들과의 이야기 열심히 수집해 야겠다.


나는.. 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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