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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Feb 27. 2024

싫어하는 것을 해 볼 용기

찜질방이 이런 곳이었어

유난히 길고 긴 방학이었다. 개학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들과 함께 한 것이 많지 않았다.


방학을 하 매일같이 밖으로 돌며 알찬 시간을 보내던 우리였다.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아들과 함께 할 시간이 없었다.


쉬는 날을 앞두고 뭐라도 함께 하기 위해 어디를 갈지 찾아봤다.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었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 한량처럼 방학 내내 뒹굴거리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어디라도 찾아내야만 다. 


실내에서 다양한 스포츠 체험 수 있는 곳에 가자고 했다. 하지만 아들에겐 관심밖이다. 여전히 움직이는 게 귀찮은 녀석이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눈에 띈 것이 있었다.


'찜질스파'


갈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갖고 있던 포인트로 결제되는 것을 확인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공짜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철저한 기회주의자인 나는 아이들에게 찜질방에 갈 것을 제안했다. 녀석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활동적인 곳에 가서 에너지를 방출하게 하려던 계획은 무너, 일단 가보기로 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찜질방을 싫어한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고, 더운 환경을 좋아하지 않는다. 20대 때 친구들과 호기심에 찜질방에 갔었다. 마가 있는 곳들을 구경하며 적당한 온도의 방에서 찜질을 하는데 숨이 갑갑해지기 시작했다. 얼굴이 쉽게 빨개지는 체질이라서 젊은 시절엔 더욱이 그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 뒤로 찜질방에 대한 기억은 더 이상 없다.


그런 내가 굳이 나서서 제 발로 찾아고 있는 중이다. 생각할수록 어이없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일생에서 몇 안 되는 큰 결심을 한 것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아도 삶을 편안하게 살기에 충분한 나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살다 보면 하기 싫은 일을 꼭 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생길 것이다. 그럴 때마다 피하거나 포기할  없다.


직접 부딪혀도 보고 실패도 해보는 것이 성장하는 데 있어 꼭 필요다.  일을 마주하는 마음가짐과 자세 역시 중요다.


내가  본보기가  한다. 그러고 보니 찜질방은 요 녀석들도 처음이구나.. 엄마의 영향으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다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불편하고 하기 싫은 이지만 용기를 냈다.



마는 잔뜩 설레서 가는 내내 쫑알쫑알 댄. 긴장하고 있는 나와 상반된 모습이다.


아이들에게 이번 방학동안 한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 물어보니 딱히 한 게 어서 모르겠다고 했다.


뭐? 한 게 없다고? 충격이다!!


"그나마 가장 최근에 갔던 만화방이요."


엄마의 성화에 마지못해 아들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래! 없는 시간 짬 내서 녀석들과 놀아주겠다고 바로 어제 만화카페에 갔었지. 책은 안 읽고 보드게임만 하고 나왔만..


지난겨울을 되새겨본다. 음.. 역시나 나의 일상은 매일이 운동과 일 뿐이었다. 간간이 떠오르는 일들을 아이들과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다.


강원도 1박 여행, 경복궁나들이, 뮤지컬관람, 미술관, 영화관, 공원산책, 만화카페..


나열해 보니 그래도 꽤 많은 곳에 갔었다. 그런데 기억을 못 하다니! 서운함이 밀려다. 러거나 말거나 둘이서 또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려다. 괜히 나오자고 했나.. 운전대를 꺾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 차오른다.


후~~~~~~~~


심호흡을 하고 다시 운전에 집중해 본다. 평일이라 차가 막히지 않아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점점 긴장감이 올라다.



낯선 환경을 불편해하는 성격이지만, 녀석들이 어렸을 때는 겁도 없이 다양한 곳에 데리고 다녔었다. 작은 꼬마 녀석들이 알게 모르게 의지가 됐다.


지금도 녀석들에게 나의 불안한 마음을 의지하는 중이다. 이런 내 을 아는지 모르는지 설렘 가득한 아이들은 앞장서서 걸어다.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키오스크로 자연스레 걸어가고 있는데, 옆에 있던 직원분이 도와주겠다며 친절한 목소리로 불렀다. 예약한 문자를 확인받고 락커키를 받았다.


앗! 아들은 남자니까 혼자 들어가야 하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혼자 들여보내는 것이 걱정되는 나와 달리, 녀석은 시크하게 수건과 찜질복을 챙겨 들고 당당히 들어다.


환복을 하고 긴 통로를 지나서 만난 세상은 정말 새로웠다. 사람들이 전부 똑같은 옷을 입고 유유히 걸어 다다. 이곳의 온도가 다르게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후끈후끈 거리는 것이 내가 찜질방에 오긴 왔구나 싶었다.


배가 고픈 아이들과 늦은 점심을 하기 위해 제일 먼저 식당을 찾았다. 메뉴를 천천히 살펴봤지만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근데, 찜질방엔 왜 가는 거예요?"


출발하기 전에 아들이 물었었다.


"뭐 하긴.. 먹으러 가는 거지~ 하루 종일 놀고먹고 쉬는 곳이야."

도통  찜질방에 왜 가는지 모르겠지만 대답은 해야 하기에 대충 둘러댔던 게 생각났다.


긴 시간동안 할 게 없으면 뭐라도 계속 먹여야 하니까 일단 식사는 2인분만 시켜서 나눠 먹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뒤라 내부는 한적했다.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식당에 오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도시적이다. 하늘과 맞닿은 건물이 짝인다. 잠시 숨고를 새도 없이 바로 진동벨이 울렸다.


음식이 나오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맛있게 먹기 시작다. 여전히 밖에서 먹는 음식이 더 맛있는 녀석들이다.

너의 아재취향, 돼지국밥 원샷



공깃밥까지 추가해서 먹는 녀석을 보니 벌써 다 컸구나 싶다. 물론 주문하러 가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식당 안이 더워서 얼굴이 빨개졌다. 자리를 정리하고 얼굴을 진정시킬 겸 족욕탕으로 나가본다.


야외에 있어 찬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좋았다. 사람들이 없으니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었다. 따뜻한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자니 추위가 사라졌다. 고작 발만 담갔을 뿐인데 왜 안 춥지? 한겨울에 사람들이 노천탕을 즐기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녀석들도 밖에 나오니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늘도 우리도 맑음


아이들과 사진 찍으면서 한바탕 웃다 보니 어느새 긴장감은 사라졌다. 다시 제 온도를 찾은 얼굴도 편안해졌다. 기세를 몰아서 하나씩 제대로 구경하기로 했다.


가장 낮은 온도의 편백나무방부터 들어가 봤다.


음~ 역시 아직까지는 별다른 게 없었다. 조금 앉아 있다가 그다음 방으로 이동했다. 온도가 올라갔지만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 했다. 세 번째로 들어간 방부터는 내부 공기가 달랐다. 진정한 더위가 시작된 것이다. 구석진 곳에 조심스레 자리를 잡았다.


이상하다. 분명 숨이 막히고 힘들어야 하는데 내 집에 온 마냥 했다. 적당히 따뜻한 공기가 포근하다. 조금 더 있고 싶었는데 다른 곳이 궁금한 녀석들을 부지런히 쫓아다녀야 다.


방에서 나오자마자 아들이 처음 들어갔을  숨 쉬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요 녀석도 나만큼이나 더위를 잘 탄다. 조금만 더워져도 힘들다고 하는 녀석 앞에서 그동안 아무렇지 않은 척 더위를 참아냈었다.


지금도 처음이라 그런 거라며 두 번째는 괜찮을 거라고 쿨하게 위로하며 른 곳을 기웃거려 본다.



놀이방에서 에어하키도 하고 처음으로 아이들과 인생 네 컷도 찍었다. 꼭 먹어야 하는 맥반석 계란에 식혜도 먹고 안마의자도 체험해 봤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경험이었다. 어딜 가도 스스로 안마의자에 앉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바로 손목에 차고 있는 '요상한 팔찌' 때문 일어났다.


카드로 결제를 하면 바로 영수증이 나오고 사용내역이 문자로 날아온다. 돈이 나가는 것이 보이니까 절제를 하지만, 여기서는 팔찌만 찍으면 뭐든 할 수 있다. 가격 따위도 확인하지 않게 된다. 한마디로 만능 팔찌다.


엄마가 신이 나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팔찌를 찍어대는 게 부러웠던 꼬마는 본인 락커의 팔찌를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이걸 가져가서 인생 네 컷도 찍고, 뽑기를 하려는 속셈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절대 뺏길 수 없다. 입장할 때 아이의 락커키는 분실위험이 있으니 부모가 보관해 달라는 당부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네 팔찌 절대 지켜!


딸과 팔찌 쟁탈전을 벌이는 사이, 드러눕는 것이 최고로 좋은 청소년은 원하는 대로 릴랙스룸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중학생 이상만 입장가능한 곳인데 혼자 들어가기 뻘쭘했는지 쉽게 문을 열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었다. 별 수 없이 함께 들어가서 녀석이 원하는 구석자리로 안내해 주고 나왔는데,


'뭐 눌러야 돼요? 티브이 안 나오는데, 신호 없음으로 나와요.'라고 카톡이 왔다.


자리를 옮기라고 답을 하고 꼬맹이와 다시 찜질방 안을 한 바퀴 돌며 제대로 찜질체험을 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자리 옮기는 것이 귀찮아서 그냥 한숨 자고 나왔다고 한다. 석진 자리가 제일 좋다면서..


역시나 한결같이 움직이지 않는구나.

이렇게 좋은 곳이었다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약 4시간 정도가 훌쩍 지나 있었다. 딱히 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시간을 보내게 되었을까..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라 많이 뚝딱거릴 줄 알았는데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니 어느새 이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찜질방 안에서도 곧잘 있었다. 공간만 보이면 아무 데서나 드러눕고 내 집처럼 편안하게 들락거리니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릴랙스룸에서 나온 아들도 더운 방에서 잘 버텨냈다. 가만히 있으니까 견딜만하다고 했다. 어쩌면 정적으로 바뀐 녀석에게 잘 맞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책 한 권만 쥐어주면 완벽하리라..


"엄마, 여기 있으니까 피부가 좋아진 거 같아."


여기저기 종종거리며 다니기 바빴던 꼬마가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내 얼굴도 더 이상 빨갛지 않네? 정말 신비로운 곳이다.


하나씩 차곡차곡 녀석들과 추억을 만들고 나니 이 또한 해냈다는 성취감이 생겼다.


지나고 보니 슨 일이든 결심하기까지가 제일 힘든 것 같다. 막상 부딪혀보면 아무것도 아닌 게 많은데 왜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든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 늘 얘기했는데 정작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밀린 숙제를 끝낸 것처럼 마음이 후련하다. 완하진 않지만, 완하게 이곳을 싫어하지는 않게 되었다.


엄마의 결심으로 새로운 곳을 경험한 아이들은 오늘 있었던 일들을 아빠에게 자랑하기 바쁘다. 녀석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뿌듯다.


가분하게 하루를 정리하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이제 하루빨리 개학해서 모두가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만 남았다.


어서 들 학교에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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