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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Mar 29. 2024

촐랑거리는 너는 봄

초4 이야기

"엄마, 근데 예비 중2 이야기를 썼으니까 이제 예비 초4 이야기 써야 하는 거 아니야? 나도 사춘긴데.."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녀석의 말에 온몸이 꿀렁댔다. 도대체 사춘기의 뜻을 명확하게 알고 하는 말인 건지.. 철없이 말할 수 있는 너는 아직 어리구나.


사춘기가 오기 전까지 녀석의 엉뚱함을 많이 담아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기대하던 전시가 시작되었다. 미리 구매해 두었던 얼리버드 티켓을 사용할 때가 되었다.


북유럽을 여행할 당시 갔었던 미술관이 인상 깊었었다.  느꼈던 감을 기억하며 다시금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아들에게,

"다음 달에 스웨덴으로 갈 거야!" 하고 장난쳤다.


눈이 동그래진 녀석은, "갑자기요?" 라며 놀란 눈치다.


언제 갔다가 언제 오냐는 말에, 일요일에 갔다가 일요일에 올 거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반신반의 한 녀석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스웨덴 국립미술관 컬렉션 전'을 찾았다. 그토록 기대하던 전시니 만큼 꼭 한가로운 시간대에 가서 여유롭게 관람하고 싶었다.


오픈런이 정답이다.


아침 일찍부터 부랴부랴 준비하고 나섰다. 가는 길의 하늘은 맑음이다. 스웨덴에서 무엇을 했었더라.. 그러고 보니 국립미술관은 덴마크에서 방문했었지! 


나라는 다르지만 같은 북유럽 감성이니까.. 하며 그 당시의 추억을 되새기며 미술관으로 향했다.

덴마크 국립미술관


이른 시간의 미술관은 한가롭고 좋다. 하지만 우리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들은 일찍 와서 줄을 서고 있었다. 그래도 10팀 안에는 드는구나. 남편이 줄을 서고 있는 동안 녀석들은 호기심에 여기저기 구경 다닌다. 난치며 싸우는 것 역시 여전하다. 창피함은 나의 몫..


아직도 엉덩이가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이들이다.

티켓이 이렇게 예쁠 일?


예약번호로 티켓을 교환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입장했다.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작품은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그림에 관해 지하지만,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 옛날 덴마크 국립미술관에서 이탈리아 풍경 그림을 보고 반해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던 것이 생각났다. 역시나 이탈리아 풍경화가 한 점 있었다.


그리운 베네치아!


북유럽 감성에 흠뻑 빠져서 그림에 집중하는 동안 부지런한 꼬마는 또다시 그림들을 휙휙 스쳐 지나갔다. 반면 유심히 그림을 보던 아들은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좀처럼 사진을 찍지 않는 녀석인데.. 그 모습을 메라에 담아 본다.

네가 반한 그림은 채석장의 풍경화


꼬마가 그림을 빠르게 스켄하 발견한 글자가 있었다.


'칼 라르손'


작가의 이름이다. 이름이 신기하다며 운율을 붙여가며 부르고 다녔다. 그 모습이 귀여웠던지 집에 와서 남편이 딸에게 물었다.


"아까 네가 부르고 다녔던 작가의 이름이 뭐였지?"


"몰라!"


"그림을 장난으로만 보니까 기억을 못 하는 거야."


"아니야! 내 눈을 아끼려고 그런 거야. 그림을 싫어하니까!"라고 돌아온 대답.


하..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얼리버드로 티켓 구매해 놓은 게 더 있는데.. 저렇게까지 싫다고 할 줄은 몰랐네..




봄이 왔다. 하늘의 플러팅이 시작됐다.

맑고 푸른 하늘에 홀린 우린 창덕궁으로 향했다.


뜬금없지만 남편이 먼저 어디에 가자고 말하는 일은 드물다. 얼마 전 '놀면 뭐 하니?'라는 프로그램에서 창덕궁을 소개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과 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주말 오후의 거리는 활기차고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생기 넘친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 두 뺨을 보드랍게 스쳐 지나가 짙은 봄내음을 남겼다.


여유롭게 이곳을 관광하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각국의 언어가 들려오자 나의 에너지는 다시 솟아났다. 마치 다른 나라로 여행 온 기분이 들었다.


서울 여행 온 거 같지 않냐는 말에 중2 녀석은 말꼬리를 붙들고 또다시 말장난을 시작했다. 녀석의 세계관은 단순한 듯 복잡하다. 장난을 받아쳐주면서도 어디까지가 장난이고 어디부터 진심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산책하면서 천천히 궁안을 걸어 본다. 눈에 띄는 것들을 보면서 남편이 아이들에게 문제를 냈다.


"처마 밑에 있는 그물이 왜 있는지 아니?"


"제비가 집 짓지 말라고!"


0.1초 만에 아들이 답했다. 


아니! 너는 도대체 이런 걸 어떻게 아는 거니? 던지는 질문마다 대답을 하는 녀석, 볼수록 신기다.

너는 봄


모처럼 봄나들이 기분이 좋아진 꼬마는 아빠 선글라스를 뺏어서 쓰고는 나비처럼 나풀나풀 뛰어다닌다.


그래, 아직까지 뛰어다닐 수 있는 너는 사춘기가 아니.


하늘하늘 뛰어다니는 꼬마의 옷차림이 파란 하늘과 선명하게 대조되어 청량감이 느껴졌다.  모습 부지런히 사진으로 담아 본다.


촐랑대는 너는 봄이구나!


우리의 봄나들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봄이 짧은 것처럼, 갑자기 더워진 날씨로 녀석의 흥겨움도 짧게 끝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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