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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Mar 26. 2024

딸과 둘이 호캉스

어색한 사이

꼬마가 느닷없이 내게 오더니,

"나도 오빠처럼 싱가포르 갈래. 엄마랑, 두울~이!"

라고 얘기했다.


큰 아이랑 싱가포르 여행을 다녀온 것이 내심 부러웠던 모양이다. 다음 날 등원 준비를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며 녀석이 어제 한 말이 생각나서 다시 물어봤다.


"엄마랑 어디 가자고 했지?"


"소주! 소! 주!!!"

(소주 = 호주)


역시나 녀석은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다.


그래, 어디가 됐든 엄마랑 여행 가자고 얘기해 준 게 중요하지..

캐리어 위에서 곤히 잠든 너



몇 년이 지나서 우연한 기회에 딸과 호캉스를 떠나게 되었다. 비록 서울에 있는 호텔이지만 처음으로 둘이 함께 하는 여행이라 설레었다.


"엄마랑 둘이 와서 좋아?"라고 물으니,


"아니, 엄마랑 있으니까 어색해!"라는 녀석!

인생 첫 호캉스


나도 너랑 있으니까 어색하거든?!


그러고 보니 아들과는 둘이 한 것이 많았는데, 요 녀석과는 어디 간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네..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늘 오빠와 함께 했으니..


둘째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어색하지만 함께 망고빙수도 먹고 가지고 온 레고도 만들면서 조금씩 친해졌다.



1년 뒤 딸과 두 번째 호캉스를 떠났다. 처음과 달리 이번엔 잔뜩 기대하는 눈치다. 녀석이 그토록 원하는 수영장에서 종일 물놀이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이틀 내내 물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물에 빠지는 것이 무섭다고 미끄럼틀도 안 타던 녀석이 이제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계속해서 올라가고 내려오길 반복한다.


평일과 이른 아침이라는 조건덕에 우리만 있는 수영장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었다. 내가 수영을 할 수 있었더라면 아예 물에서 안 나왔겠지?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함께 물속에 들어가서 놀아주지 못하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물 안에 들어가서 뻣뻣하게 서 있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밝은 성의 녀석은 전혀 개의치 않고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놀았다.

운좋게 한가했던 날


그동안 조식당에 가 늘 미역국과 가락국수만 먹어대던 녀석이었는데 이번에는 골고루 든지 잘 먹는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 본다며 시를 여러 번 가지고 왔다.


역시나 꼬치에 꽂힌 녀석의 테이블엔 나무꼬지만 한가득 쌓여있다. 식당을 나오는 길에 두유까지 야무지게 챙겨 나온 녀석은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다리를 꼬며 유유히 두유를 마시며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창밖 풍경을 구경했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들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보니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어색한 사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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