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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행 갈까?!
09화
[Singapore] 입 짧은 아이와 여행
값비싼 젤리와 수박
by
JULIE K
Feb 2. 2024
파란만장한 여행 첫날을 보내고 오늘은 늦잠 자며 느긋한 아침을 맞이하려 했다. 하지만 마음먹은 것과 달리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어쩔 수 없는 아침형 인간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화창한 날씨를 자랑한다. 괜스레 기분 좋은 아침이다.
아침풍경
피곤함에 얼굴이 퉁퉁 부은 딸아이와 함께 부지런히 조식을 먹으러 갔다.
어제 서빙해 준 직원이 반갑다고 인사를 건넸다. 커피나 차를 전혀 마시지 않는 손님은 극히 드물 테니 기억이 날 수도 있겠다. 카페인을 마시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오늘은 시원한 물을 가져다주었다.
"고맙습니다."
기분 좋게 인사하고 가벼운 담소를 나누었다.
배고픈 꼬맹이는 처음 식당에 왔을 때의 어색함은 온데간데없고 혼자 가서 먹을 것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 덕분에 나 역시 조금 편하게 아침메뉴를 골라본다. 음식의 종류가 다양했지만 소박한 나의 위장을 생각해서 최대한 간소하게 먹고 싶은 것 위주로 담았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때 아이가 가지고 온 음식을 본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접시 위에는 수박 몇 조각과 요구르트 2개, 젤리가 한 줌 가득 담겨 있었
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잘 넘겨 왔는데 이번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이러려고 혼자 다녀온다고 했구나!
미리 결제하고 온 조식금액이 번뜩 떠오른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지로 꾹꾹 누르고 말했다.
"빵 종류도 많고 계란이랑 소시지도 있는데 설마 이것만 먹을 건 아니지?"
녀석은 눈치를 보며 말없이 미소를 지을 뿐이다.
먹을 것이 이렇게 많은데..
이틀간 먹은 조식
어제는 오랜 시간 비행하고 밤늦게 도착한 다음날이니까 입맛이 없을 수도 있겠다 싶어 이해하고 넘어갔다.
비록 아침으로 수박만 먹더라도 말이다. 가지고 온 사과주스와 포도는 입맛에 맞지 않는지 남기고 수박만 계속 가져다 먹었다.
수박 맛집이라면서...
아이를 데리고 식당 구석구석 누비며 음식을 설명해 주어도 소용없었다. 갖고 온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유인해도 철통이었다.
식당을 나오는 길에 뒤늦게 발견한 요구르트와 젤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한 영특한 꼬맹이는 씩씩하게 혼자 가서 양껏 담아 온 것이다.
먹을 것이 이렇게 많은데 아침부터 젤리라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
른
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이가 먹고 싶은 것이라는데..
하고 평온하게 그러려니 하면 될 일이지만 마음 수련이 부족한 나는
화
가 머리끝까지 났다.
쳐
다보고 있으면 더 열받을 거 같아서 접시에 코박은채 열심히 아침식사를 마쳤다.
세상 모든 엄마들은 공감할 것이다. 아이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은 마음은 똑같을 테니까..
화도 식히고 소화도 시킬 겸 호텔 앞을 잠시 걷기로 했다.
당충전 가득한 너는 지금 행복
몸속 가득 달달함이 차 있는 꼬맹이는 오늘 아침 컨디션이 최고로 좋다. 이미 여러 번 왔다 갔다 해서 아는 길이라고 힘차게 걸어간다. 횡단보도 신호를 바꾸는 버튼이 신기한지 연신 눌러댄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혼자 투덜 댈 뿐이다.
딸아이가 어릴 때부터 이상하게 화를 끝까지 내지 못했다. 막내니까, 아직 어리니까, 결국엔
그냥 웃어넘기게 된다.
크게 혼내야 할 상황도 많지 않았고 따지고 보면 딱히 잘 못한 게 없었다. 어쩔 땐 요 녀석이 맞을 때도 있었으니..
지금도 뭐라고 해야 할 상황이지만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입맛에 당기는 것을 먹었을 뿐이고, 억지로 먹으라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니 말이다.
그래, 오늘 하루도 긴데 털어버리자. 날이 이렇게나 예쁘잖아?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엄마, 저기 작은 사람이 있어!"
무언가를 발견한 녀석이 달려갔다.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독특한 아이다.
전에 본 적 없는 꽃들 사이에 작은 조각상들
엄마의 온도가 내려간 것이 느껴졌는지 또다시 쫑알쫑알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만히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온다.
몸이 가벼운 꼬마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배운 적도 없는 태권도 발차기를 한다던지 발레에서 요즘 배우고 있는 동작을 선보인다.
아이의 부산스러움을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나름대로 주말 아침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정말 최선을 다 해서..
바로 그때 조깅하는 사람들이 윗옷을 입지 않고 뛰어가고 있었다. 티셔츠를 입지 않고 다닌다는 것에 크게 놀란 녀석은 그 모습을 한참 동안 신기하게 바라보더니,
"나도 저 아저씨들처럼 달리기 할래!"
하고는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세상 자유로운 영혼
아침부터 분주하게 아이와 또 다른 추억을 만들고 호텔로 돌아갔다. 이제부터 12시까지는 서로 방해하지 않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나는 미리 정하지 못한 오늘의 일정을 정리하고 짐을 다시 꾸려야 했다. 생기발랄 꼬마는 마지막 날까지 욕조에서 물놀이를 할 모양이다.
사실 오기 전부터 하루종일 수영장에서 물놀이하기를 희망했던 녀석이었는데 물을 유난히 무서워하는 엄마와 아직은 깊은 물에서 자유롭지 못한 꼬마와의 여행이라 수영은 제외시키기로 했었다.
이 호텔 수영장은 깊은 풀 밖에 없었고 체크인할 때 직원이 주의사항을 따로 얘기해 주기도 했었다. 그 한을 저 작은 욕조에서 풀 줄이야..
어찌 됐든 지금부터는 자유시간이다.
우선 나는 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쓰고 남은 돈을 정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잔돈은 계산이 정확히 맞아떨어질 때의 희열이 있다.
뒷
자리까지 완벽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애정하는 여행기를 가득 담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핸드폰
으
로 오늘의 동선을 확인하고 있었다.
잠이 스르르 들려고 할 때쯤 무언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컵라면 두 개다.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아침에 먹은 거라곤 젤리와 수박밖에 없는 녀석이 배고픔을 알리는 신호였다. 비상으로 챙겨 온 컵라면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엉뚱하게도 요 녀석이 캐리어 깊숙한 곳에서 꺼내 온 것이다.
"커피포트가 있어야 하는데.."
무심코 뱉은 말에 녀석은 서랍 맨 밑에 칸에서 바로 찾아왔다.
그러고 보니 어제 산 인형을 박스에서 꺼낼 때도 이건 가위가 있어야 자를 수 있으니 그대로 집에 가져가자 하니,
"가위 여기 있는데?"
하며 서랍에서 잘도 찾아왔었다.
이렇게 갑자기 튀어나오는 능력
은
상당히 당황스럽게 만든다. 너란 아이.. 참으로 신기하
단
말이야..
야무지게 컵라면을 완성한 꼬맹이는 멋진 경치를 바라보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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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아침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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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행 갈까?!
07
[Singapore] 걷는 여행의 즐거움
08
[Singapore] 아바타 세상
09
[Singapore] 입 짧은 아이와 여행
10
[Singapore] 쇼핑은 사치
11
[Singapore] 번개뷰와 함께 하는 식사
우리 여행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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