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gapore] 아바타 세상

Super tree / Gardens by the bay

by JULIE K

아침부터 지금까지 생각해 보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술탄모스크에 갔고,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차임스성당과 머라이언 파크도 둘러보았다.


딸아이가 갖고 싶다던 커다란 사람인형도 손에 넣었고, 미리 예약하고 온 캐피타스프링에도 제시간에 다녀왔다. 보트키에서의 시간은 덤이다.


여행만 오면 아빠 등짝에 껌딱지처럼 매달려서 땅을 전혀 밟지 않던 아이였다. 그런 녀석이 투정은 부렸지만 제법 잘 걸어 주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덕분에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녀석은 더 이상 덥지 않은 시원한 호텔방에서 새로 산 인형과 조잘대며 잘 놀고 있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에는 불빛이 밝게 나고 있었다.


아름다운 야경을 보고 있자니 문득 지금 이렇게 보내고 있는 시간이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저녁식사도 할 겸 아이를 살살 꼬드겨본다.


쌩쌩해진 꼬맹이는 엄마의 꼬임에 넘어가 다시 나설 채비를 한다.

놓치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야경


세상의 중심에 있는 기분
Super Tree


딸에게 말한 대로 천천히 걸으면서 야경만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난번 여행에서 아쉽게 놓친 슈퍼트리쇼가 계속 눈에 밟혔다.


큰아이와 슈퍼트리쇼를 보기 위해 걷고 또 걸어서 코앞까지 갔는데,

"엄마, 나 여기를 넘어가면 못 돌아올 거 같아요."

라고 말하는 녀석의 간절함에 목전에서 돌아와야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눈치가 보이는 장소였고, 갈지 말지 혼자만의 끊임없는 갈등만 되풀이되고 있었다.

기념사진만 남긴 지난 여행


하필 갈아입은 옷의 기장이 길다는 이유로 꼬맹이의 컨디션은 또다시 날카롭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것이 아이의 마음인가 보다. 변덕스러운 날씨와도 같 슬슬 지쳐간다.


하늘에는 초승달이 빛나는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다. 화려한 불빛으로 감싼 도시의 야경이 림처럼 펼쳐졌다.


쓸데없는 감정소모로 소중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화가 나있을 때 함께 목소리를 높이면 이번 여행은 끝이 난다. 그렇기에 눈높이를 맞춰보려 노력했던 하루였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손모양을 한 아트 사이언스뮤지엄으로 아이의 관심을 돌리며 천천히 발걸음을 맞췄다.

몇 번을 봐도 멋진 분수쇼


마침 싱가포르에서 유명한 마리나 베이 샌즈 레이저쇼가 시작할 시간이다.


뼛속까지 J형 인간인 엄마는 하나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 미리 시간을 계산해서 나왔다.


조급해하지 않고 원래 그런 것처럼 자연스럽게!


딸에게 분수쇼를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다행히 아래층에서 봐야 더 가깝고 잘 보인다며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다.


'하.. 2층에서 봐야 끝나면 바로 슈퍼트리쇼 보러 이동할 수 있는데..'


실패다!


조급해하는 나와 달리 녀석은 현란한 조명과 분수가 음악에 맞춰 수시로 변하는 레이저쇼를 신기해하며 바라보다.


네가 좋으면 되었지!


짧은 영상이 끝나고 우르르 몰려가는 인파들 틈에 섞여 정신없는 꼬맹이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기왕 온 거 슈퍼트리쇼도 보자는 짧은 말과 함께!

두 번째 도전~!



녀석은 이미 어느 정도 눈치챘을 것이다. 오기 전부터 이건 꼭 봐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사실 온종일 아이 챙기랴, 지도 보며 길 찾으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이것저것 신경 썼던 나 역시 조금 지쳐 있는 상태였다.


그냥 호텔로 돌아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지금 지나간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서로 의지한 채 걷고 또 걸었다. 한번 갔던 길은 시간이 흘러도 무의식 중에 기억에 남는 모양이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호텔 건물을 통과했다.


부지런히 걷고 또 걸으니 어느새 예전에 마지막으로 사진 찍고 허탈하게 되돌아왔던 곳이 나왔다.


큰아이와 넘지 못했던 산을 넘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저 멀리 보이는 강가에는 요정의 모습을 한 조형물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아바타 세상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모기향 냄새에 안심하며, 팔에 차고 있던 모기밴드를 다시금 동여 메고 힘차게 걸어갔다.

아바타 세상


조금 멀리에는 TV 속 영상으로만 보던 나무들이 황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신비로운 풍경에 빠질 새도 없이, 현실은 사람들과 보폭을 맞춰서 걷느라 정신이 없다.


주위가 어둡고 이정표도 잘 보이지 않아 다 같이 한마음으로 열 맞춰 걷고 있는 중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좁고 구불구불하게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넓게 트인 광장이 나왔다. 곳에 있는 슈퍼트리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함께 걸어오던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정중앙으로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미리 준비해 온 우비를 주섬주섬 꺼내서 바닥에 펼쳤다. 계획형 인간의 철저한 준비성 빛을 발하고 있다.


"여기 누워서 봐야 잘 보인대."


혹여 건물 안 에어컨 바람이 셀까 봐 종일 들고 다녔던 카디건이 들어 있는 폭신한 가방을 살며시 건넸다.


어두운 밤길을 엄마손만 꼭 잡고 의지한 채 영문도 모르고 따라왔을 딸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끝까지 군말 없이 따라와 준 녀석이 대견했다.


가방을 머리에 베고 편한 자세로 누운 꼬맹이가 무심코 뱉은 말,


"휴.. 이제 좀 살 것 같네."

눈으로 담아보는 풍경


딸아이와 함께 누워서 하늘을 보니 환상의 세계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꿈이 이루어진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쇼는 시작됐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반짝거리는 불빛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나무에 장식된 수많은 전구들이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많이 덥지도 습하지도 않은 날씨에 밤공기가 시원하다. 하루가 끝나가는 순간까지 싱가포르 날씨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귀에 익숙한 팝송은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분명 누군가는 흥에 겨워서 춤을 추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심하게 발장단을 맞추며 텐션을 끌어올려본다.


문득 아들 생각이 났다. 사진을 보내주며,


'안 온 걸 후회하지?' 하고 물으니,

'조금요.'라고 무심한 답이 왔다.


억지로라도 데리고 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상으로 보는 슈퍼트리쇼


여행을 마치고,

"언제가 가장 기억에 남아?"라는 질문에

"엄마랑 누워서 슈퍼트리쇼 봤을 때!"라고 대답하는 꼬맹이.


나의 선택에 후회 없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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