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gapore] 걷는 여행의 즐거움

Capita Spring

by JULIE K

시원한 에어컨 공기가 가득한 방 안.. 부드러운 매트리스에 몸을 맡긴 채 누워 있으니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은 나른함이 느껴진다.


꼬맹이는 새로 산 장난감이 마음에 드는지 여기저기 영상통화 하며 자랑을 해댄다. 저렇게 좋을까..


아들 녀석이 갖고 싶다던 레고를 사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레고가 있었으나 원하는 것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냥 나왔다.


지금까지 쓴 돈을 정산하고 핸드폰도 충전하고 쉬는 동안에도 해야 할 일들은 계속 있었다. 부지런히 정리하다 보니 어느덧 다시 나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하루에 딱 한 가지씩만 하자 하고 미리 예약한 일정이었다. 막상 날이 좋으니 생각보다 빡빡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만..


"우리 옷 갈아입고 다시 나가 볼까?"


여행 갈 때 짐을 잔뜩 꾸리는 것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비가 오면 기분이 가라앉을 것 같아 패션쇼라도 해주자는 심정으로 아이 옷을 잔뜩 챙겨 왔다.


기왕 가져왔으니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히고 상큼하게 출발해 본다.


경쾌한 빗소리에 기분이 상쾌해지는
Capita Spring


비 오는 날 갈 수 있는 곳을 찾아보다가 출발 5일 전에 부랴부랴 예약한 곳이 있다.


아름답게 가꾸어진 정원이 있는 루프탑에서 시내뷰를 감상할 수 있고, 빌딩 속 곳에 식물 가득한 Green Oasis가 있어 식을 취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무료개방이라니 찾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만 예약제로 진행되기에 방문 예정이라면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MRT역에서 빌딩까지 걸어가는 길이 참 재미있다.


마침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지나가는 건물마다 비를 맞지 않게 배려된 구조로 되어 있어 우산을 펼 일이 없었다.


반대로 해가 쨍쨍한 날엔 태양을 피할 수 있으리라..

어쩌다 보니 초록 드레스코드



오후 4시,


계획된 하루를 보낸 것은 아니었는데 마치 시간을 정해 놓은 것처럼 늘 하루가 맞아떨어지니 정말 좋다.


그도 그럴 것이 예약시간에 맞춰서 정확히 도착했는데, 입장하자마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기까지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예약내역을 보여주고 어가는 찰나의 순간에 직원분이 비가 와서 루프탑을 개방하지 않는다고 빠르게 설명해 주었다.


미리 사전조사를 서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20층에서 내렸다. 17층까지 나선형으로 난 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면서 빌딩 속 숲을 감상했다.


커다란 식물들에 둘러싸여 있는 길이 식물원을 연상케 했다. 창문이 없어 건물 안에 있지만 시원하게 개방된 느낌이 든다.


마침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마저 경쾌하게 들린다.

작은 식물원에 온 기분


안락한 의자가 곳곳에 있고, 작은 휴게공간에는 운동시설이 구비되어 있었다.


빌스장(빌딩+헬스장)인가..?하하~!!


그냥 지나칠 리 없는 꼬맹이는 신기한 듯 이것저것 체험해 보기 시작했다. 차라리 놀이기구가 있었다면 요 녀석이 좀 더 신나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혼자 슬며시 떠올려본다.


마침 비가 그친 듯하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루프탑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함께 올라가던 인도인 아저씨께서 비가 그쳐서 루프탑이 오픈했다는 희망적인 말을 하셨다. 설레는 마음으로 올라갔는데 문은 아직 굳게 잠겨 있었다. 바닥에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니 곧 개방할 모양이다.


하지만 슬슬 배고픔이 올라오는 꼬맹이가 시동걸기 시작했다. 흠.. 근처에 뭐가 있는지 지도를 찾아보는데 바로 옆에 보트키가 보였다.


맛집이 많기로 유명하고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다. 루프탑을 못 보고 가는 것이 아쉽지만 요 녀석이 배고프다고 할 때 뭘 먹이는 편이 훨씬 이롭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하니 꼬맹이는 바로 내려가는 버튼부터 누른다. 빌딩 밖으로 나오니 시원하게 쏟아지던 비가 그쳤다. 기막힌 타이밍에 기분이 세배로 좋아지는 순간이다.


한차례 비가 다녀간 뒤의 공기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달콤하다.


우뚝 솟은 빌딩 사이로 탁 트인 강이 보였다. 저 길을 따라 들어가면 멋진 강을 바라보며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맛집들이 줄지어 있을 것이다. 드디어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음이 빨라졌다.


"엄마, 햄버거~~!!"

"응??? 뭐라고?!!!"


그.렇.다! 맛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길목에 익숙한 M 마크가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었다.


왜 여기까지 와서 굳이? 햄버거를? 꼭 지금 먹어야 해?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고 있는데 석의 발걸음은 이미 거침없이 그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이다.

비가 그친 뒤 햇빛에 반사되는 건물 색이 아름답다.
눈물이 또르르..


여행은 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전환점을 맞는다.


다시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맞이하는 자세에 따라 그 이후의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비록 멋진 뷰를 감상하며 a fancy restaurant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지는 못했지만, 꼬맹이와 햄버거를 먹으며 소소한 즐거움을 함께 했다.


현금을 우선으로 쓰려는 나는 카드만 되는 키오스크에 당황하지 않고, 마침 현금으로 계산하는 분이 있어 순서를 기다려서 주문을 했다. 케첩을 가져오라는 미션을 받은 딸내미는 케첩대신 매콤한 살사소스를 가지고 왔다.


별일 아니지만 사소한 충돌에 연신 깔깔거리며 우리끼리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음식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 순간, 허탈했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행복이 찾아왔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시간..

배부른 우리는 느릿느릿 걸으며 모처럼 여유를 만끽했다. 따뜻한 공기에 햇살마저 포근했다.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식당들도 이젠 하나의 광고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배부른 자의 여유이다.


이국적인 건물들 사이로 노천식당들이 저녁장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나도 모르게 샛길로 새려는데 꼬맹이가 내 손을 꽉 붙잡는다.


"엄마, 그쪽이 아니고 이쪽으로 가야 해."


너란 아이.. 가끔씩 엉뚱한 매력이 있단 말이야. 그래, 약속한 대로 이제 그만 들어가자.

keyword
이전 06화[Singapore]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