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gapore] 싱가포르는 공사 중

Merlion Park

by JULIE K

아이가 즐겁게 늦은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마음의 여유가 생긴 나는 다음으로 이동할 장소를 찾아봤다.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사자상이 공사 중임을 이미 알고 있기에 머라이언 파크는 가고 싶지 않았으나, 가장 거리가 가깝고 호텔과도 가까우니 아기사자상이라도 보여주자 하고 딸에게 우리가 갈 곳을 설명해 주었다.

배도 어느 정도 차고 원하는 주스를 마셔서 기운이 샘솟는 꼬맹이도 흔쾌히 찬성했다.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가지 않아 금세 도착했다.


마침 하늘엔 구름이 엷게 펼쳐져 있어 해도 어느 정도 가려주니 걷기에 최적의 날씨가 되었다. 미적지근한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주니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모처럼 딸과 수다도 떨고 기념사진도 찍고 잠시 찾아온 평온한 시간이었다.


"저기 좀 봐! 검은색 커다란 상자 보이지? 그 안에 머라이언상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검은 천 뒤로 사자상의 실루엣이 영롱하게 비치고 있었다.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꼬맹이의 눈엔 그저 검은색일 뿐이다. 예전에 와서 봤던 사자상의 모습이 겹쳐서 내 마음속 눈에만 보일 뿐..


반가운 마음에 폴짝폴짝 뛰어갔다.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어서 딸에게 부탁을 했다. 시크한 표정으로 요리조리 잘도 담아준다. 머리는 최대한 크게, 몸통은 옆으로 늘어나고 팔다리 하나씩은 잘려있지만 내 표정은 최고로 밝다.


새로운 추억을 기록하고 바로 뒤에 있는 미니머라이언상이 있는 곳으로 갔다.


어미 사자상을 보고 아기 사자상을 봤을 땐 참 못생겨 보였는데, 요 녀석밖에 못 본다고 생각하니 앙증맞고 귀여워 보다. 간사한 것이 사람 마음이지 않나!


아기사자상을 빙 둘러싸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틈에 껴서 우리도 발자취를 잠시 남겨본다.



"엄마, 이제 우리 오빠 기념품 사러 갈까? 내 인형도 사주면 안 돼? 사람처럼 엄청 큰 인형을 살 거야!"


꼬맹이가 두 번째로 날린 쨉이다.


내가 이래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던 것인가.. 녀석은 몇 달 전부터 오빠 기념품을 꼭 사 와야 한다고 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큰아이가 처음 엄마와 싱가포르 여행 왔을 때 동생을 생각해서 선물한 토끼인형이 있었는데, 작은 아이의 애착인형이 되었기 때문이다.


뭔가 보답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오빠선물은 핑계일 뿐 사람처럼 큰 인형이 목적이란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아이의 귀여운 속마음이 아직까지는 잘 읽히고 있다.


반대편에 훤히 보이는 마리나 베이 샌즈몰에 가서 점심을 먹고 인형을 사러 가기로 했다. 보통 기분이 좋아지면 효과가 30분은 가는데 이미 더위에 지친 꼬마에게는 별개의 일이었다.


제일 큰 문제는 커다란 강의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천천히 걸어가면 되지만 정오가 다가오면서 기온이 쑥 올라간 것이 걸림돌이 되었다.


지도를 찾아보니 버스정류장까지 걷는 거리가 꽤 멀었다. 버스를 타느니 차라리 걸어가는 것이 낫다. 제는 어떻게 아이의 관심을 더위로부터 멀어지게 하느냐 인데.. 머릿속이 복잡한 채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쇼핑몰로 향하고 있었다.

"그냥 택시 타고 가면 안 돼?"


꾸역꾸역 걸어가던 중 더는 참지 못했던 꼬맹이가 무심코 말을 내뱉자, 거짓말처럼 바로 앞에 택시정류장이 보였고 때마침 택시가 들어오고 있었다.


'요 녀석, 저 택시를 보고 한 말인가?!'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나타나면 그 주위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택시에 탑승한 우리. 목적지를 말하자 기사아저씨께서 거기는 너무 가까워서 걸어가는 것이 낫다고 얘기했다. 택시비가 비싸다는 말과 함께..


저도 잘 알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요. 본의 아니게 딸아이를 데리고 여행하는 엄마의 고충을 토로하는 사이 눈 깜짝할 새 택시는 우리를 쇼핑몰 앞으로 데려다주었다.


미터기를 체크하고 뭔가를 잘 못 본 듯하여 비용을 다시 물었다.


S$21.7


공항에서 호텔까지 타고 오는데(파란색 택시) 30달러가 조금 넘었었는데 겨우 3분 탑승하고 20달러가 넘다니!


그렇다. 출발 전 아저씨는 분명히 얘기했다. 여기 택시비가 엄~청 비싸다고..


황당함에 말을 잃다. 그 와중에도 잔돈은 됐다며 쿨한 척 22달러를 달달 떨리는 손으로 지불하고는, 멋지게 퇴장하는 검정색 택시를 속절없이 바라볼 뿐이다.


싱가포르는 택시 색깔별로 금액이 차이가 난다.

노랑, 빨강, 파랑 < 흰색, 실버 < 검은색
싱가포르는 공사중, 내 마음도 공사중


허무하게 점심값을 이렇게 지불해 버리다니..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오는 택시를 무작정 탄 나 자신을 자책하는 순간이다.


이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꼬맹이는 나풀나풀 날아서 쇼핑몰로 들어갔다.

keyword
이전 04화[Singapore] 이른 아침의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