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브런치북
우리 여행 갈까?!
04화
[Singapore] 이른 아침의 산책
Chijmes
by
JULIE K
Dec 29. 2023
아침해가 점점 높이 떠오르니 내리쬐는 자외선이 강렬해지고 있다.
내 어깨에 걸린 커다란 가방에는 혹시 모를 냉방에 대비한 겉옷 두벌과 우산 두 개가 생뚱맞게 들어있었다.
'아... 양산...'
집을 나서기 전 현관에 있는 양산을 두고 우산을 집어 온 것을 후회하는 순간이다. 온통 회색 비구름이 떠있던 일기예보가 생각나서 혼자 씩씩댄다.
"엄마, 도대체 2층버스는 언제 와?"
더위에 얼굴이 점점 빨갛게 익어가는 딸아이가 물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가 궁금한 모양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곧 버스가 올 거야."
기다리는 게 힘든
아
이를 달래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다. 별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시간 끌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2층 맨 앞자리에 앉고 싶다는 녀석을 위해 주의사항을 다시 한번 일러 주었다.
"버스가 도착하면 앞에 보이는 기계에 카드를 찍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가야 해. 계단이 좁고 가파르니까 조심..."
"알았어, 엄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딸아이는 양손에 버스카드를 꼭 움켜쥐고 버스에 올라탔다. 다행히 2층 맨 앞자리에 자리가 비어있었다. 얼마 만에 타보는 버스인가.
오랜만에 옛 추억에 잠긴 나도 한껏 들떠있었다.
바
로 앞이 훤히 잘 보이니 딸아이도 세상 신기해하며 요리조리 잘도 구경한다.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다음 목적지에 도착했다.
2층버스와 함께
햇살이 부서지며 눈부신 첨탑이 반짝이는 Chijmes
버스에서 내려서 걷는 길이 참 예뻤다.
정갈하게 뻗은 도로 끝에 늘어선 빌딩들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주황색 지붕에 하얀색 벽.. 낮은 건물들이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분위기
를
자아낸다.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이 배경과 어우러져서 한 폭의 그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 준다.
주
위를 둘러보며 낯선 거리를 맘껏 즐기는 나와 달리 우리 꼬마아이는 익숙하지 않은 더위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눈치를 살피던 내가 성당에 도착하면 바로 시원한 주스를 마시러 가자고 하니 신이 나서 다시금 뽈뽈 거리며 앞장선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복합문화공간
눈앞에 보이는 건물의 웅장함에 압도되는 것도 잠시
.
. 지금, 나는! 반드시 카페를 찾아야 한다. 열심히 눈동자를 굴려가며 곳곳을 스캔하던 중
.
.
아뿔싸! 모든 레스토랑과 카페가 아직 오픈전이었다. 대체 몇 시에 호텔에서 나온 거야?
해가 뜨는 순간부터 참.. 부지런히 움직였다.
내가 갔을 때 이곳의 분위기는 조용하고 차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카페와 레스토랑이 문 닫은 상황은 아니지 않나.. 하하!
마침 딱 한 곳의 카페가 영업 중이었는데 야외에 있는 테이블을 보며,
이
더위에 뙤약볕 아래서 주스를 마시고 싶지 않다는 딸내미..
지금 당장 시원한 카페를 찾지 못하면 녀석은 분명 이 자리에서 폭발할 것이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이를 달래 줄 만한 달콤한 젤리조차 가방에 없었다. 그동안 부쩍 커서 어디든 잘 다녔으니 이젠 상관없을 거라 간과해서 챙겨 오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다른 나라에 엄마랑 단둘이 떨어져서 모든 것이 낯설었을 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탓이다.
대충 빠르게 한 바퀴 둘러본 뒤 버스정류장에서부터 걸어오면서 봤던 건물들을 상기시켜 본다. 카페 비슷한 곳을 본 것이 생각났다.
그래! 일단 가보자.
처음 걷는 길은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으니 긴장감과 설렘에 따라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미 지나온 길은 마음먹기에 따라 KTX급의 속도로 지나칠 수 있다.
나는 그 빠름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눈 깜짝할 새 길건너편에 카페가 보였다. 이제 겨우 여행 첫날
인
데
사막의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쁨을 느꼈다.
본격적
으
로 시작한 것은 없지만
내
감정은 이미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었다.
남
은 하루가 길기에 아이의 텐션이 떨어지지 않게 조절해 줘야 했기 때문이다.
신호가 바뀌고 쏜살같이 카페로 들어갔다.
응?! 분명 밖에 카페라고 쓰여 있었는데 문 앞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건 이쁘게 잘 익어서 윤기가 좔좔 흐르는 치킨들이었다. 무엇을 팔든 나는 지금 이 아이에게 시원한 음료 한 잔을 사줘야 한다. 메뉴를 찬찬히 스켄하고 있는데,
"엄마, 나 치킨 먹고 싶어!"
아, 너 옆에 있었구나!
아침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하며 잔소리가 쏟아져 나오려던 찰나 불현듯 녀석의 접시에 올려져 있던 음식들이 생각났다. 아이는 애피타이저 정도만 먹은 상태다.
아무튼 뭐라도 먹겠다고 하는 것에 감사하며 치킨이 들어간 메뉴를 천천히 읊어줬다.
"치킨라이스하고 콜라 주세요. 얼음잔과 함께요."
꼬맹이의 진짜 조식
주문을 마친 우린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았다. 실내는
더위를 잠시 식혀 줄 만큼
의
적정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음식이 나오고 배가 고팠던 꼬맹이는 진심을 다 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라이스 빼고 치킨만 야무지게 먹는구나.
이렇게 우리의 1차전은 무사히 끝났다.
keyword
싱가포르
해외여행
여행에세이
Brunch Book
우리 여행 갈까?!
02
[Singapore] 딸과 함께 하는 첫 여행
03
[Singapore] 파란 하늘의 기적
04
[Singapore] 이른 아침의 산책
05
[Singapore] 싱가포르는 공사 중
06
[Singapore]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우리 여행 갈까?!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15화)
29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JULIE K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주부
여행을 하고, 시간을 담고, 순간을 기록합니다.
팔로워
147
제안하기
팔로우
이전 03화
[Singapore] 파란 하늘의 기적
[Singapore] 싱가포르는 공사 중
다음 0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