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gapore] 파란 하늘의 기적

Sultan Mosque

by JULIE K

고요한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누가 깨운 것도 아닌데 적막을 가르고 두 눈이 번쩍 떠졌다.


맞다! 오늘 날씨!!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늘 종일 비와 번개가 내리친다.


정면에 보이는 블라인드 뒤로 언뜻 비치는 실루엣이 영 불안하다. 비가 오면 오늘 뭘 해야 하지? 아무런 계획 없이 왔기에 막막했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해. 그런데 뭐부터 해야 까..


파워 J인 계획형 인간이 아무런 생각 없이 무작정 떠나 온 여행 첫날! 맞이한 아침 풍경이다.


살짝 긴장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블라인드를 올려본다.

'드르르륵~~~~~'

아주 천천히 올라가는 블라인드 뒤로 건물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비는 내리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가까이 다가가 봤다.


"우와~~~~~~~~!!"


창문에 맺힌 물방울들 사이로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햇빛이 반짝였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아직은 조금 어둑하지만 건물 뒤로 하얀 구름이 올라오는 것을 본 순간 모든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세상모르고 새근새근 곤히 잠들어 있는 딸에게,

"밖에 날이 엄청 좋아~ 우리 밥 먹으러 갈까?"


대답을 바라고 말한 건 아닌데 꼬맹이가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인다.

창밖으로 보이는 아침 풍경



청명한 파란색이 점점 선명해지는 지금의 하늘에 어울리는 첫 여행지,
Sultan Mosque!


우연히 인터넷에서 파란 하늘아래 황금색으로 빛나는 돔과 이국적인 거리의 야자수를 본 뒤 여기는 꼭 날이 좋은 날 가보리라 마음먹었었다.


로 지금!

비가 오기 전에 빨리 다녀와야 한다.


에너지 가득 충전해서 기분 좋은 딸과 후다닥 아침을 먹고 가벼운 발걸음이지만 어깨엔 혹시 모를 만약을 대비해 한 짐 가득 가방을 메고 발했다.


우리의 첫 관문은 바로 싱가포르 지하철인 MRT역까지 찾아가서 교통카드를 발급받는 것.


아니 그런데 어디로 나가야 한단 말인가?


예전에 아들과 함께 왔을 때는 분명 지하로 연결된 쇼핑센터를 지나면 MRT역까지 갈 수 있었는데 어디로 나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별 수 없이 로비에 있던 직원분께 길을 물어봤다. 친절하게 레스토랑 뒤로 연결된 길로 안내해 주었다.


"밖으로 나가서 오른쪽에 보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시면 쇼핑몰이 나올 거예요. 그곳을 통과하면 MRT역을 찾을 수 있어요."


감사의 인사와 함께 알려 준 길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하늘이 예쁘니 기분도 상쾌다. 직원분께 들었던 설명을 곱씹으며 곳곳에 보이는 이정표로 더블체크하면서 가니 어느새 눈앞에 MRT역이 보였다.


역으로 내려가서 역무원께 싱가포르 교통카드인 이지링크 카드를 구입했다.


좋았어! 아직까진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참새 방앗간 그리고 이지링크 카드



목적지인 Bugis역에 도착해서 밖으로 나오자 눈앞에 펼쳐진 경치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빼곡히 들어선 건물들과 길가에 늘어선 야자수들, 낯설고 이국적인 풍경에 비로소 여행 온 것을 실감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꼬맹이가 크게 놀라며,


"엄마, 여기 바닥 좀 봐. 담배꽁초가 엄청 많이 버려져 있어. 이거 버린 사람들 벌금 엄청 많이 냈겠지?"

"응? 담배꽁초?"


하고 바닥을 내려다보는데 맞은편에서 어떤 사람이 빨간불에 무단횡단을 했다. 그 모습을 본 녀석은 두 번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딸아이가 선생님께 싱가포르 여행 간다고 얘기했더니, 이곳은 거리에 쓰레기가 하나도 없고 사람들이 법을 잘 지키고 사는 깨끗한 도시라고 설명해 주셨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싱가포르는 얼마나 깨끗할까? 기 사람들은 모두 법을 잘 지키겠지? 하며 유난히 기대에 부풀어 있던 녀석이기에 처음 마주한 생생 도시풍경 놀랐을 것이다.


그나저나 무단횡단이 이렇게 자유로웠던 곳이었나?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갈 새도 없이 화려한 건물들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빌딩 숲의 오아시스, 야자수 나무


아랍스트리트답게 건물양식이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색감과 고층 빌딩들의 특이한 외관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간 알지 못던 또 다른 나라로 들어온 신비한 느낌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갓 서울로 상경한 시골쥐마냥 여기저기 구경하며 정신을 뺏긴 채 걸어가고 있을 무렵, 형형색색의 건물들 뒤로 술탄모스크가 나타났다.


찾았다! 예전 같았으면 분명 목적지 부근까지 와서 한 두 번씩은 헤맸겠지만 구글맵을 켜고 걸어가는 지금은 길을 잘 못 들 일이 없어서 좋다.


이른 아침이라 사원은 아직 오픈전이었고 앞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만 한 두 명 있을 뿐이다.



파란 하늘에 유난히 반짝이는 황금과 눈부신 하얀색 건물.. 양옆에는 높이 솟은 탑이 균형을 이루고 있고 아치형 창문들이 특색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찬찬히 외관을 감상해 본다.


모든 무슬림이 함께 건축했다는 사원.. 건축에 관해서는 아는바 없지만 여러 국가의 영향을 받은 다채로운 건축양식의 겉모습이 인상적이다. 내부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문득 리틀인디아에 방문했을 때가 기억이 난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책에서 본 사원을 발견하고 운 좋게 들어가 본 적이 있다. 맨발로 입장해서 느껴지는 바닥의 차가움과 열성적으로 기도하는 신도들의 뜨거움이 꽤나 신선했다.

상상한 모습 그대로


하늘색이 훨씬 푸르고 청명해졌다. 유명한 하지레인도 걸어보고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서 새우국수도 맛보며 조금 더 이곳을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더위에 조금씩 지쳐가던 꼬맹이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이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근처에 있던 기념품가게로 자연스레 안내했다. 익숙하지 않은 물건들에 눈길을 주는 것도 잠시, 피곤함에 기력을 잃어가는 에게서 짜증지수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지치는 건가..'


위기의 순간임을 직감한 나는 딸아이가 그토록 타고 싶어 했던 2층버스를 타러 가자고 제안했다. 단순한 꼬마는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는 '2층버스'란 말에 금세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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