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gapore] 딸과 함께 하는 첫 여행

아... 울고 싶다..ㅠㅠ

by JULIE K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

두 근 반 세 근 반 설레는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여행 메이트는

우리 집서 제일 자유로운 영혼이자 자기주장이 뚜렷한 막내딸이다.


나.. 살아서 돌아올 수 있겠지?

공항은 언제나 설렘


남편의 배웅을 받고 무사히 출국 심사를 마지만 무슨 정신으로 왔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아~! 요 녀석에게 게이트 확인하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시도했다가 포기한 기억이 난다. 저 카트 끌고 다니는 게 재미난 천진난만한 아이인데 말이다.



생각보다 탑승까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륙하기 전 승무원이 키즈 밀을 확인하러 온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신청한 메뉴가 떡갈비라는 것을 들은 꼬맹이가 외친 한 마디,


"내가 언제 떡갈비 먹고 싶다고 했어?"

"이럴 줄 알고 엄마가 기내식 신청할 때 물어봤잖아."


딸아이는 처음 듣는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그렇지! 기내식은 수개월 전에 예약했는데 요 녀석이 기억할리 없지.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난데없이 스파게티를 외치던 녀석은 급기야 기내식 거부 선언까지 했다. 하... ㅠㅠ

문제의 기내식. 하늘은 이렇게나 예쁜데..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 딸아이에게 맛있는 간식은 그저 과자의 한 종류일 뿐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통하지 않는다.


과자봉지 사이에 숨어 있던 치즈를 발견하고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요 녀석이 좋아하는 유일한 것이다.


한참을 어르고 달래서 갈비를 한 입 맛본 다행히도 입맛에 맞는지 크게 놀라며 쌍따봉을 날려줬다. 이렇게 맛있는 밥은 처음 먹어 본다면서 평소 먹지도 않던 당근과 브로콜리까지 잘 먹었다.

후.. 한숨 돌리고 긴 여행을 위해 좀 쉬려는데..


창문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리모컨을 뺐다가 넣었다가, 화면을 터치했다가, 영화를 틀었다가 껐다가, 게임을 했다가...


계속 똑같은 패턴으로 사부작 대는 꼬맹이가 슬슬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아직 한참 가야 하는데 좀 잘까?"
"아니, 설레서 잠이 안 와."


이미 밤을 꼴딱 새우고 와서 피곤할 텐데 저러고 버티는 걸 보면 두 번 설렜다가는 사람 잡겠다 싶었다.

영화 '상견니' 무슨 내용이었더라..


여행 가기 전이면 늘 목적지를 눈감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만반의 준비를 하는 파워 J형인 나였는데 유난히 이번 여행에서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아이의 컨디션에 맞춰서 움직여야 하니 계획을 세우는 것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알아서였을까? 이미 싱가포르는 3번째 방문이라 큰 감흥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다. 일정 내내 번개와 함께 있는 비구름에 모든 전투력을 상실해서였다.


대충 하루에 한 군데는 꼭 가자하고 큰 그림만 그려놓고 짐도 하루전날 싸서 정신없이 출발했는데 막상 비행기를 타니 마음 한 구석에서는 걱정이 되나 보다.


이렇듯 내 모든 신경세포들이 고슴도치 가시처럼 뾰족뾰족 한껏 치솟아 있을 때, 여전히 뭔가를 꼼지락거리는 꼬맹이와 사방에서 들려오는 기침소리, 재채기 소리, 코푸는 소리까지..


비행하는 6시간 가까이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되자 진심으로 울고 싶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창밖을 무심코 내려다본 꼬맹이가 나지막이 외친 한 마디.


"우와~ 대박! 저기 아래 불빛이 엄청 반짝거려. 싱가포르는 깨끗한 나라라더니 정말로 도로가 엄청 깨끗해."


이 높은 하늘 위에서 보이는 건 작은 불빛뿐, 도로인지 구분도 할 수 없는 길이 깨끗한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이번 여행에서 재발견될 너란 아이가 궁금하다.


착륙준비에 한창데 하늘에서는 오렌지빛이 크게 번쩍이고 있었다.

일기예보에서 본 비구름에 꽂혀있는 번개그림을 실제 두 눈으로 직관하고 있는 중이다.


싱가포르 날씨에 이번 여행의 운을 맡겨야 하는 순간이다.



무사히 착륙 후 이미그레이션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갔다. 성질 급한 나는 뭐든 빨리빨리 해야 직성이 풀린다. 아, 맞다. 내 옆에는 꼬맹이가 함께 있지. 영문도 모른 채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왔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열심히 걷고 걸어서 눈앞에 이미그레이션이 나오자 잠시 멈칫했다.


아.. 자동입국심사! 어떻게 하는 거지? 4년 만에 해외여행인데 자동시스템이 발목을 붙잡는다.


앞에 있는 직원 우리를 대면심사 쪽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와 동반 입국 시 자동입국심사는 안된다고 했던 글을 본 거 같다. 다행히 이쪽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아싸~! 1등이다. 철없는 엄마는 사소한 것에 기뻐하고 있는 중이다.


재빠르게 짐을 찾은 나는 딸과 함께 곧장 호텔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GTC(지상 운송 컨시어지)로 달려갔다. 늦은 시간에 도착한 탓에 택시를 타고 싶지 않아서 출발 전 부리나케 셔틀버스를 알아봤었다.


바로 지금, 버스 출발시간인 오후 10시까지 5분이 채 남지 않은 긴박한 상황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안내데스크에 있는 직원에게 셔틀버스 티켓을 구매하고 싶다고 했다.


"미안하지만 이미 마지막 시간까지 예약이 꽉 찼어요."


뭐라고요?

예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인가..?!


착륙해서 셔틀버스 출발시간까지 여유가 없었기에 늦으면 못 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전 좌석이 마감되었을 줄이야.. 오직 버스를 타겠다는 생각만으로 진력질주를 해서 아이와 함께 달려왔는데 허무한 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짐을 질질 끌고 택시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천만 다행히도 비가 내리지 않는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찜통더위와 숨 막힐 듯 갑갑한 습기도 없다.


초여름날의 부드러운 밤 맞이해 준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택시를 수 있었다.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고 목적지를 얘기하는데 아저씨가 호텔 이름을 헷갈려하셨다.


엉뚱한 곳으로 갈까 봐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급히 핸드폰에 저장된 호텔 바우처를 보여줬다. 그제야 아저씨는 마리나 근처의 호텔임을 재차 확인하신 후 출발 했다.


딸아이는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낯선 도시의 풍경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 역시 창문 너머로 보이는 집들을 구경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바로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2005년도 필리핀에 있을 당시 즐겨 듣던 M.Y.M.P의 Especially For You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른 가수의 리메이크 버전이었지만 우리를 반겨주는 환영의 인사로 들렸다.


오래전 추억의 향수에 젖어있는 것도 잠시 구글맵을 보며 곧 도착할 것임을 확인하고 있는데, 아저씨께서 우리가 가는 호텔이 굉장히 좋은 곳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호텔 근처에 구경할 곳이 많은데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는 꼭 가보라며 추천해 주셨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호텔에 도착했다. 모든 긴장이 한 번에 풀리는 순간이다. 이제 씻고 자면 오늘의 일과는 끝이다.

오랜만에 온 호텔은 여전히 좋다.


"엄마, 욕조에 물 받고 씻으면 안 돼?"


꼬맹이의 예상치 못 한 질문은 늘 나를 당황시킨다.


시간도 늦었는데 그냥 빨리 씻고 자면 좋으련만.. 호텔에 오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기어이 물을 받아서 욕조로 들어갔다.


내일 일어날 수는 있을까.. 피곤함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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