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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행 갈까?!
10화
[Singapore] 쇼핑은 사치
ION / Orchard Road
by
JULIE K
Feb 9. 2024
오전 11시 55분,
호텔에서 체크아웃 시간을 꽉꽉 채워서 나가는 것은 처음이다. 보통 여행 오면 조식을 마친 뒤, 이른 체크아웃을 하고 아침부터 온종일 다니기 때문이다.
다음날 새벽 비행시간으로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오전 내내 푹 쉬어서 컨디션이 좋다. 재빠르게 체크아웃을 마치고 캐리어를 맡겼다. 내 커다란 보부상 가방에는 생수 두 병만 달랑 들어있다. 무거운 짐보따리로부터 해방되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오늘 있을 여행을 위해
편
의점에서 이지링크 카드를 충전하기로 했다.
"5달러씩 각각의 카드에 충전해 주세요."
여러 번 시도해 본 아주머니는 충전이 안된다면서 다른 곳에 가서 하라고 했다. 속으로 '휴~ 다행이다!'
하
고 한숨 돌렸다. 편의점에서 충전하면 60센트씩 수수료가 붙는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엉뚱한 돈을 더 쓸뻔한 것이다.
흥겨운 발걸음으로 개찰구 쪽으로 내려갔다. 역무원에게 충전해 달라고 했는데 이건 기계에서만 해야 한다며 반대쪽에 있는 충전기를 가리켰다. 조심스럽게 다가간 기계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 카드는 쓰고 싶지 않은데..'
기계를 천천히 살펴보던 중.. 잠깐만! 이거 현금 투입구 아니야?
위를 보니 커다랗게 Cash Accepted라고 쓰여있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반
가운 마음에 재빠르게 현금을 꺼냈다. 외국에서 교통카드 충전하는 것을 처음 본 딸아이도 신기하다며 직접 돈을 넣고 버튼을 눌러본다.
딱 한대 있는 소중한 현금 기계
어느새 카드사용에만 익숙해져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교통카드는 원래 현금으로 충전하지 않았던가! 위태위태하게 가려져 있던 나의 허술함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딸아이와 어느새 익숙해진 MRT를 타고 마지막 날의 첫 여행지로 떠난다.
쇼핑천국 Orchard Road
토요일 오후 지하철 풍경은 생경했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많고 활기찬 서울과 달리 이곳의 주말은 크게 붐비지도 않고 차분한 모습이었다. 자리도 여유가 있어 앉아서 갈 수 있으니 정말 좋았다.
처음 싱가포르에 왔을 때는 오차드 쪽에 숙소가 있었다. 2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오랜만에 반가운 곳으로 가는 것이다. 목적지에 내려서 출구를 따라 나오니 바로 쇼핑몰로 연결되었다. 분위기가 명동역과 비슷
해
서 친근했다.
분명 낯선 곳에 왔지만 익숙한 듯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걸어갔다.
지
하철을 타고 여행 다니기를 좋아했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어디로 갈지 정하고 온 것은 아니었기에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무작정 걸어 다닐 생각이었지만, 오늘도 역시 다음 목적지는 우리 딸내미가 정해준다.
"엄마아~ 너무 덥고 배고파.."
시원한 지하철을 타고 여태 쭉~ 앉아서 왔는데 덥다니! 컵라면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배고프다고?
어젯밤에 오늘의 점심을 미리 예약한 탓에 지금 뭘 먹으면 안 된다. 배가 부르면 식당에 가서 마음껏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도 이미 출발 전 오늘의 이동경로를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 따로 마음 따로인 녀석이다.
오차드로드 지도를 상기시켜 본다. 적어도 세 곳의 쇼핑몰을 구경하려고 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한 군데도 제대로 보지 못할 것이다.
그
렇다고 이미 짜증지수가 올라오기 시작한 녀석을 무작정 데리고 다닐 수도 없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주스 마시러 가자고 제안했다. 달콤한 주스는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다. 시원한 음료는 잠시나마 갈증을 해소시켜 줄 것이다. 녀석의 기분이 다시 좋아지길 기대해 본다.
인상 깊었던 쇼핑몰 외관
기왕이면 이곳에서 제일 유명한 카
페
를 검색했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식당에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가고자 하는 곳이 바로 이 건물에 있다. 넓디넓은 쇼핑몰 안을 시원하게 가로질러 가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바로 앞에 카페가 보였다.
인기가 많은 곳이라서 늘 웨이팅이 있다고 했는데 바로 앞에 여자 한 명만 줄 서 있었다. 올타쿠나! 한달음에 달려가서 줄 서 본다. 기다리는 동안 메뉴판을 살펴봤다. 아이가 마실만한 음료를 함께 골라본다.
카페인을 마시지 않지만 여행지에서 커피는 사막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안내받았다. 시그니처 메뉴를 주문하려는데 예쁜 티폿에 나오는 뜨거운 커피와
그
냥 유리잔에 나오는
아이스커피를
놓고 고민이 됐다.
지금 내 기분엔 사진으로 기록하기 위한 티폿보다 시원한 아이스커피가 어울린다. 딸아이가 선택한 주스와 함께 주문하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
했
다.
꽃으로 덮인 매장 안의 분위기가 오렌지 컬러와 잘 어우러졌다.
녀석은 애타게 기다리던 주스가 나오자 목이 말랐는지 단숨에 마셔댄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의 컨셉은 수박인 거니? 우연찮게도 수박주스를 마시고 있구나~
꼭 한번은 찾는다는 바샤커피
"근데, 오빠 선물 사러 가야 하지 않아?"
포기란 것을 모르는 녀석이다.
잊
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 여행하려면 무엇이 됐든, 온전히 모든 걸 내려놔야 한다는 것을..
나도 쇼핑이란 걸 하고 싶단 말이야. 사든 안 사든 구경만이라도 하고 싶다고! 그리고, 여기 오빠가 찾는 레고스토어가 어디 있어? 아무리 찾아봐도 없잖아. 어제 장난감 가게 찾는다고
그렇게
돌아다녔으면 됐지. 오늘 또 가자고?
속사포같이 쏟아져 나올 거 같은, 뱉지 못할 말들을 열심히 삼켜 본다.
씩씩 대며 녀석이 알지 못하는 분노를 속으로 콸콸 쏟아내고 있을 때! 꼬맹이가 외친 한마디!
"엄마! 저기 봐! 레고 쇼핑백이 있어!"
"응? 뭐라고? 어디 어디?"
눈썰미 좋은 우리 딸이 오늘도 한건 크게 하고 말았다.
마침 옆테이블에 가족단위의 손님이 들어왔는데 그 옆에는
LEGO
라고 쓰여있는 커다랗고 노란 쇼핑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던 것이다.
너는 정말.. 어떤
아이일까? 위기의
순간에 불쑥 나오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아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을 녀석이 뒤에서 섬세하게 챙겨준 적이 많았다. 어쩔 땐 요 작은 녀석이 나보다 더 엄마 같을 때도 있었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는 값비싼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뜨거운 커피를 시키지 않은 것이 다행인 건가.. 스쳐 지나가는 나의 위시리스트를 뒤로하고 어쩔 수 없이 구글맵을 켰다. 레고를 검색하니 진짜로 위치가 잡혔다. 그것도 우리가 있는 곳에서
단
5분 거리에서!!!
점심 예약시간까지 이동시간을 제외하고 약 1시간의 여유가 주어졌다. 계획대로라면 이 거리를 활보하며 이곳저곳 열심히 구경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또 찾아야만 한다. 레고스토어를...
파란 하늘, 하얗게 피어나는 뭉게구름, 저마다 개성 있는 건물들, 그 사이사이 녹색의 향연.. 오늘은 어제보다 더 아름답구나~!
하지만 유유자적, 한가로이 거리를 걸어 볼 수가 없네.. 두 발은 모터를 달아 놓은 것처럼 매우 빠른 속도로 빌딩 서너 개를 휙휙 지나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또 어디인가...
하늘이 눈물 나게 아름답구나
여기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던가? 시간에 쫓기는 와중에도 부지런히 사진에
담
았었구나.. 현장에서 즐기지 못했던 풍경을 사진으로나마 뒤늦게 구경해 본다.
분명 처음 걷는 길이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쇼핑몰로 들어갔다.
정확한 목표지점은 5층이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낮은 층까지만 운행했고
,
에스컬레이터도 끝까지 연결되어 있지 않아 당황했다. 돌고 돌아서 겨우 올라간 곳은 아무리 찾아봐도 아이들 장난감 가게가 있을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길 끝에 있는
모퉁이를 돌아가니 그렇게 찾아 헤매던 레고스토어가 보였다.
너의 행복지수 최고
입구에는 다양한 신제품들이 진열장에 고이 전시되어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구경하느라 정신없었겠지만 이번엔 다르다. 충분히 가치 있고 아들이 원하는 레고를 찾아야 했다.
빠르게
살
펴보던 중 구석진 곳에서 드디어 발견했다.
한국에서 판매하는 금액보다 저렴
하
니 마음에 든다. 아들 녀석의 확인을 받은 후 계산대 앞에 섰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쭈뼛쭈뼛 다가오는 꼬맹이
가
수줍게 작은 레고박스를 내밀었다.
순간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자연스레 레고를 받아 들고는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꼬마가 가지고 온 레고는 한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고 심지어 여기서 사는 것이 더 비싼데 굳이 꼭 사야만 하는가! 하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잔소리를 해대며 아이를 설득할 힘이 없었다.
틈새를 노리며 작은 기회마저 놓치지 않는 녀석이다.
그
렇게
포
인트 적립도 못 하는 레고를 두 개나 결제
하
고 말았다.
어색한 너의 뒷모습
내 어깨엔 또다시 커다란 짐덩이가 걸려있다. 쇼핑을 했는데 발걸음이 무거운 나와 달리 신이 난 녀석의 마음은 깃털처럼 가볍다.
에
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층 내려가니 작은 서점이 나왔다.
책을 좋아하는 아들은 여행 갈 때마다 놓치지 않고 꼭 서점에 들른다. 그 모습이 기특하고 예뻐서 매번 책을 사주었었다.
책이라고는 근처에도 가지 않는 요 녀석이 서점에 가자고 하니 세상 어색하고 뭔가 또 뜯길 것만 같아 불안하다.
역시나 잿밥에나 관심 있는 꼬맹이.. 미안하지만 이번엔 통하지 않는단다. 시간이 다 되어 서둘러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
다
. 녀석도 눈치껏 빠르게 걸어준다.
버스를 타고 싶었으나 도로 한가운데 섬처럼 있는 정류장으로 건너가는 횡단보도가 보이지 않는다. 어
느
방향이든 더 걸어간다면 찾을 수 있겠지만, 시간
에
쫓기는 상황인지라
바
로 눈앞에 보이는 MRT역까지 단숨에 이동해 본다.
그래, 이제 뭐라도 좀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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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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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Singapore] 입 짧은 아이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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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apore] 쇼핑은 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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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apore] 번개뷰와 함께 하는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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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apore] 나른한 토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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