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기력이 없다.
다시 가라앉아 이 강의 끝은 어디인가, 어떻게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이 없는가 할 때쯤엔 다니던 학원에서 취업알선 전화가 왔다. 내가 취업알선 전화를 받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어 피하고 또 피했다. [내가 배웠던 것들을 기술이랍시고 내놓을 수 있을까 두려워요. 피부미용을 배워보니 제 적성에는 안 맞는 것 같아요. 이 기술로 취업을 하고 먹고살 자신이 없어요.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어요. 이러다간 이전 직장에서처럼 참기만 하다 마흔이 되기 전에 또 때려치우고 지금과 같은 고민을 할 것만 같아요. 무엇보다 난 직장에서 사람을 만나는 게 너무 부담스러워요.] 어떤 것도 말할 수 없었다. 저런 생각을 가진 내가,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은 내가 그냥 창피했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런 노력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백수니까. 돈벌이 없이 시간을 보내는 건 아무리 내가 거창하게 '나를 돌보고 있어요'라고 둘러대도 그냥 창피하고 한심하게 느껴졌으니까. 다시 뭔가를 배운답시고 학원에 등록해 볼 생각도 잠깐 해봤지만, 지금 나는 나를 정신없게 만드는 곳에 다시 던져놓고 직장인의 생활패턴을 다시 몸에 장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껏 기술 배워놓고 취업을 안하겠다는 배부른 소리를 하는 꼴이라니. 혼꾸녕을 낼 테다.
직장동료와 스몰토크를 하고 사내정치에 끼이는 것만은 절대 피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직장인의 생활패턴을 그대로 가져가고, 경력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콜센터. 무지개겁쟁이답게 짧은 기간 모집하는 공고에 지원했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러시아워 시간대에 싸움구경도 두어 번 했으니 도파민이 터져 재미있었다. 콜센터는 자유로운 근무환경답게 매우 신기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경험이었다. 좋게 말해 개성이 강했고, 나쁘게 말해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들. 물론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아니, 반반이었던 것 같다. 이 부분은 따로 기록하고 싶다.
콜센터에 다니는 동안은 정말로 정신없이 지나갔다. 오랜만에 돈벌이를 하는 게 좋았고 쉬는 날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다만 일하는 시간이 너무 지겨웠다. 욕도 한두 번 먹어야 무섭다. 하루종일 불만과 윽박지름을 듣고 있자면 그것도 지겨워진다. 짧지만 길었던 계약기간이 끝나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받은 월급과 내 기분전환을 핑계로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여권도 발급받고 캐리어도 샀다. 그저 휴양을 목적으로 베트남에 다녀왔다. 그래, 여행도 다녀오는 거야. 나를 호강시켜 주자 하면서.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뽀글뽀글뽀글. 다시 나는 가라앉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