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대학생

엄마는 나를 먹고대학생이라고 불렀다.

by 문어

부모님은 항상 바빴다. 벌이가 좋지 않아 두 분 모두 노동으로 일과를 소진했다. 아버지는 퇴근 후 매일 누워계셨고, 어머니는 매일 화를 내셨다. 어머니가 화를 내는 이유는 저녁을 차리지 않아서, 방을 손걸레로 닦아놓지 않아서, 남동생의 교복셔츠를 빨아놓지 않아서 등등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반찬을 하고 밥을 차렸고, 내 교복과 남동생의 교복을 빨았다. 당시 친구들의 교복은 칼주름이 잡혀있었다. 교복은 엄마가 빨아서 다려준다고 했었다. 부러웠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야간자율학습을 할 때는 그나마 집안일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밥도 반찬도 남동생의 교복셔츠도 주중에는 내 일이 아니었다. 주중에는 이틀에 한번 내 교복셔츠만 빨아놓으면 되었다. 학교에서 백일장 상장과 성적우수 상장 등을 받을 때는 나도 칭찬을 받고 싶었다. 밤 10시에 집에 오면 모두들 불을 끄고 누워있었기 때문에 나는 상장을 식탁 위에 올려두곤 했다. 아침밥을 차리는 엄마가 상장을 보고 잘했다고 말해주길 원했다. 매번 상장을 보는 둥 마는 둥, 밥을 먹어야 하니 이것 좀 치우라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가끔 학교에서 간식으로 햄버거가 나왔다. 어느 학부모가 반 전체에 돌린 간식이다. 나는 그 햄버거를 먹지 않고 집에 싸왔다. 내 남동생은 햄버거를 좋아했고, 우리 집은 롯데리아 햄버거 하나 마음 편히 사 먹을 형편이 못되었다. 그리고 그날은 햄버거를 맛있게 먹는 남동생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상장 따위를 가지고 온 날보다, 학교에서 나눠준 공짜 햄버거를 집에 싸 온날 엄마의 눈빛이 훨씬 더 온화했다. 나는 칭찬이 듣고 싶었다. 비록 친구들이 햄버거를 먹을 때 나는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애써 책을 보는 척했을지라도 말이다.


대학 원서를 쓰는 것도 오롯이 내 몫이었다. 엄마는 나도 언니처럼 전문대를 가서 보건계열의 면허를 따길 권했다. 담임선생님은 내게 서울 중위권 대학까지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나는 서울에 갈 수 있는데 왜 내가 집 근처 전문대를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원서비가 비쌌지만 지역농협에서 장학생을 선정해 장학금을 줬다. 30만 원이었나. 원서를 4개 정도 쓸 수 있는 돈이었다. 하고 싶은 건 없지만 4년제가 아닌 전문대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직업이 없으니 그저 성적으로 대학을 정하고, 난 문과니까 어문계열로 과를 결정했다. 어찌어찌 대학에 합격했다. 담임선생님은 내 합격소식을 듣고 축하한다고, 잘했다고 함박웃음을 지었지만 어쩐지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부모님도 마찬가지로 별로 기뻐하지 않으셨다. 다들 어느 대학 어느 과에 갔느니 어쨌느니 소란스러운 겨울방학이었지만 나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요되지도 않고 기쁘지도 슬프지도 아쉽지도 않았다.


대학생이 된 후 나는 보통의 중산층에서 자라온 동기들을 만났다. 나는 밥값이 없고 차비가 없는데 그들은 어학연수를 갔고 브랜드 옷을 입었다. 가끔 술집에서 술도 먹고 축제도 즐기는 듯했다. 나는 오후 7시면 언제 집에 들어오냐는 전화를 받았고, 이 때문에 그룹과제에서는 민폐만 끼쳤다.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하자는 동기들에게 집에 들어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에게 농촌활동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가 놀러를 왜 가냐는 말을 들었다. 비용이 많이 드는 어학연수 대신 비행기값만 내가 벌어 워홀을 간다고 말했다가 엄마가 죽는 꼴을 보고 싶으면 가라는 말을 들었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알바를 시작해 학기 중에는 주말알바, 방학에는 두 탕 세탕씩 알바를 했지만 나는 여전히 돈이 부족했고 동기들이 하는 어떤 활동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수업을 듣고 집에 오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먹고대학생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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