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아내가 되어서야 허락된 일들
작년 가을, 태어나 처음으로 차례상에 절을 했다. 얼굴도 모르는 분이지만 감회가 새로웠다. 나도 차례상에 절을 해보다니. 가족으로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다. 추석이 가까워지니 작년 추석이 다시금 생각이 난다. 결혼하고 처음 맞는 명절이었다. 돌아가신 할머니께 묻고 싶었다. 할머니의 손녀인 제가, 명절에 할머니가 아닌 남편의 조상에게 절을 하고 남편의 조상의 묘에 성묘를 가는 이것이 할머니가 바라던 거였나요?
아들은 밥, 딸은 죽이라 칭하던 친할머니. 우리 엄마는 죽만 쑤다 겨우 밥을 짓는 데 성공했다. 우리 집의 영원한 실세로 자리 잡은 밥은 나름대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죽들은 생일을 모아 한번에 미역국을 먹었지만 밥은 생일케이크에 바나나 포도 등 과일까지 갖춘, 없는 살림에 화려한 상차림을 받았다. 명절에도 친가의 밥들은 차례상에 절을 하고, 성묘를 했다. 어린 죽부터 나이 든 죽까지 기름냄새를 맡으며 허리 굽혀 구운 전을 밥들은 뜨끈한 아랫목에서 받아먹었다. 남아선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중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찬밥 더운밥 가리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만 있을 때는 우리 집 밥만 이뻐하더니 글쎄 큰아버지네가 도착하면 큰아버지네 밥들을 이뻐하느라 우리 집 밥이 찬밥이 되는 것이 아닌가. 큰아버지네 더운밥이 도착하는 순간, 우리 집 실세는 한순간에 찬밥이 되었다. 나는 내가 여전히 영원히 당연히 찬밥인 것보다, 우리 집 밥이 찬밥이 되는 그 순간들이 더 화가 났다.
할머니는 죽과 밥들이 외가에 가는 것도 싫어하셨다. 할머니댁에 도착하면 혹시 외가에 다녀오진 않았는지 죽들과 밥에게 추궁했다. 명절연휴 마지막날 차가 막혀 도착전화가 조금 늦으면 여지없이 외가에 다녀오느라 집에 늦게 도착한 것인지 물었다. 할머니가 말하는 출가외인의 삶은 낳아준 부모와 일 년에 두 번 얼굴 보기도 힘든 그런 삶이었을까.
차례상에 절을 하는 것도 성묘를 가는 것도 처음이라고 시부모님께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차례를 지내는 시아버지와 남편의 몸놀림은 흡사 잘 짜인 안무 같았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성묘를 체험한 후 비석에 적힌 글씨들을 읽어보았다.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의 이름까지 새겨져 있었다. 나는 금세 헛웃음이 나왔다. 형제 중 막내인 시아버지의 이름이 가장 먼저 새겨져 있었고 그 밑에는 남매 중 막내인 남편까지 가장 큰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아, 내 남편도 이 집안의 밥이구나!
죽으로 태어나 죽으로 살았지만 여전히 죽의 삶이 낯설다. 나는 내가 죽이 아닌 저 밥들과 똑같은 밥이라고 투쟁할 용기도 열정도 없었다. 그저 그러려니 수긍하며 살았고 명절에는 밥들만 절하고 밥들만 성묘하는 것이 익숙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편을 만나 결혼이라는 제도에 입성했지만 이렇게 할머니의 죽과 밥 이론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혼란스러웠다. 혼자일 땐 그저 내가 죽이라는 것만 억울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내가 죽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남편이라는 밥에 귀속된 이 집안의 죽이 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