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문화센터 가을학기를 등록했다. 도예수업이나 요가를 배우고 싶었으나, 그런 인기강좌는 나 같은 게으름쟁이에게까지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다. 소소하게 지갑이나 파우치를 만드는 가죽공예를 배우러 간다.
일주일이 넘도록 집 안에만 있다 보니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것 자체가 새롭다. 문화센터로 가는 길은 내가 6년간 걸어 다니던 출근길이다. 새벽에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시계와 앞을 번갈아보며 걷던 길이다. 해가 중천에 떠 있고 사람들은 편안한 복장으로 느긋하게 걷는다. 하늘은 어쩜 이렇게 청량한 소다색일까. 뜨거운 햇살이 팔뚝에 내려앉는다. 인중에 땀이 삐질삐질 난다. 저 앞에 전 직장 건물이 보인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직장인일 때는 쳐다만 봐도 기분이 나빴던 건물인데 지금은 아니다. 넌 아직도 거기에 있구나. 나는 지금 사랑스러운 햇살과 초록빛 나뭇잎의 여유와 함께인데. 역시 나의 퇴사는 틀리지 않았다.
백화점 문화센터는 아주 있어 보였다. 진주목걸이를 두른 우아한 사모님들이 서예를 배우거나 쿠킹클래스를 듣고 있었다. 젊은 엄마들이 끌고 있는 유모차에서는 부내가 풍겼다. 흥, 나는 이런 분위기에 꿀리지 않는 사람이야. 최대한 짧은 동선으로 강의실을 찾으려고 했으나 이미 서른 번은 두리번거리고 말았다. 이런 세상이 있었다니. 이미 나는 요모조모 구경하며 감탄해 버렸다.
강의는 재미있었고 선생님은 친절했다. 간단한 숙제도 내주셨다. 왠지 문화생활을 즐기는 교양인이 된 것만 같았다. 이미 결제한 강의료와 사전공지된 재료비 외에 다시 또 도구비용으로 만오천 원을 지불해야 했지만 따져 묻지는 않았다. 수업에 만족할 수 있다면, 내 기분을 좋게 하는 일이라면 돈 몇 푼 따지지 말자. 나는 어제보다 조금 커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