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3회 차를 앞두고
먹고살아야겠으니 일은 해야겠고 일하기는 싫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전 직장에서 하던 일을 다시 할 듯하다. 너무 싫다. 내 인생은 대학을 그만두는 그 순간부터 꼬인 걸까. 아니다. 물이 수증기가 되어 증발하듯 나도 증발하고만 싶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던 그때, 나의 미래가 궁금하지 않고 남의 일 보듯 손을 놓아버렸던 그 순간부터다. 대학이 문제가 아니다.
스무 살 나에게 내 앞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나는 증발하고만 싶었고,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증발할 수 있을까 고뇌했다. 생각에 과부하가 걸려 물속에 잠기듯 목 끝이 턱턱 막혀올 때는 술을 마셨다. 멸균 막걸리 1.5리터짜리가 1400원 할 때다. 책장 구석에 숨겨두고 목 끝이 막힐 때마다 마셨다. 책장 바닥 쪽 맨 끝 모서리에 숨기고 그 앞은 옥편이나 영한사전으로 막은 뒤 잡동사니들을 사전 위로 덮으면 아무도 모르는 막걸리 은신처가 완성이다. 낮 열두 시까지 흐드러지게 잤어도 또 잠이 왔다. 부모님 퇴근시간에 겨우 맞춰 도망 나온다. 아무렇게나 입고 아무렇게나 뒤집어쓰고 빌라 옥상으로 올라간다. 아무도 없다. 쪼그려 앉아 두 시간 정도를 버틴다. 부모님의 저녁식사가 끝날 무렵 입꼬리를 올리는 연습을 하고 집에 들어간다. 학교에 다녀온 척, 괜찮은 척을 대충 하고 설거지를 한 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잔다. 자꾸만 잠이 고팠다.
남들은 왜 멀쩡한 대학도 다니질 못하고 그러고 사는지 궁금할 것이다. 이유를 말로 풀자면 3박 4일은 걸릴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그냥 나는 증발하고 싶어서 내 앞날에 관심도 없고 중요성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냥 나는 내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의미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좀 불쌍했다.
다른 일도 좀 알아볼 겸 나라는 인간 어떻게 취직 좀 시켜주쇼 하는 마음에 신청한 취업지원제도는 벌써 3회 차를 앞두고 있다. 1회 차에는 제도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2회 차에는 어떤 직종이 현실적으로 취업을 하기에 좋을지 상담하는 시간이었다. 다음 주 3회 차 상담을 갈 때는 어떤 직종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떻게 취업해야 할지 계획을 완성해 가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 인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인가. 머리가 아프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취업이 안되면 안 된다. 돈은 벌어야 한다. 이럴 때마다 앞전의 증발하고 싶었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하는지 자꾸 생각한다. 바로잡을 수 없고 흘러간 시간은 잊어야 한다. 나는 살기로 결심했고 내 노후에 먹고사는 걱정은 안 하고 싶다. 그냥 그뿐이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은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평범하지 않아도 되니 그저 앞으로 30년 40년 꾸준히 일을 해서 벌어먹고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