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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닝닝하고 밍밍한 Mar 10. 2020

너는 이쪽이야 저쪽이야?

- 가장 큰 문제는 강요에 있다.



  서른을 넘긴 이후로는 사람들과 의식적으로 싸움을 피하게 되었다. 싸워도 불편하고 안 싸워도 불편하지만, 따박따박 말로 따지고 감정이 서로 얽히는 것을 들키는 일이 더 싫었다. 내가 유연하지 못하고 유치해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이 줄어들고 가끔은 내가 무척이나 단조롭고 단아한 사람, 혹은 심심한 사람, 때론 말을 감추는 사람,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기도 했다. 누군가는 나를 알고 싶은 사람으로 오해하고 다가오기도 하고, 다가왔다가 아 차가워, 하고 달아난 사람도 있고 얼마나 저렇게 고고한 척 하나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뭐, 어찌 됐든 상관이 없다. 오해는 내 몫이 아니니까.



  

  예전엔 나도 쌈닭 같은 부분이 있었다. 스스로를 이성적이고 정의롭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아닌 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내 생각이 늘 상식의 언저리에 있다고 자부하며 살았다. 분명하고 시의적절한 말을 잘하며,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며, 내 말의 영향력을 믿고 까불던 시절도 있었다. 냉정하고 차갑고 혹은 뜨겁고 넘치게 내 말과 행동을 과감하게 드러내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젠 괜히 민망해질 때도 많다. 나는 그저 나이지 나 이상도 나 이하도 아니며 나는 때론 선의 근처도 못 가기도 하고 내가 말하는 선이 절대 선이 아니며 모든 일에는 그 이면에 내가 알 수 없는 많은 부분이 있음을 점점 깨닫는다. 그래서 섣불리 판단하는 일을 조금씩 내치고 있다.


  내 친한 친구 S는 "내가 너 때문에 휴학했잖아", 이 말을 한 십 년은 우려먹은 것 같다. 웃어넘겼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내 속은 늘 편치 않았다. 외로움을 많이 탔던 S는 늘 같이 있고 싶어 했고 기대고 싶어 했고 누군가가 그런 자신을 챙겨주길 원했던 아이다. 그때는 그 아이의 우울함이 나도 버거웠다. 당차고 당당한 사람이기 위해서 나는 고난의 냄새를 피우지 않으려 늘 노력했다. 나의 이력을 보여주는 게 부끄럽기도 했고. 그래서 더 애써서 담담하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 이를 악 물고 나를 버텨냈다. 그런 나에게 S는 언제나 불편했다. 과제를 할 때도 S는 다른 이에게 묻어가려는 경향이 많았다. 쓸쓸하고 불행하며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S와 한 팀이었던 후배들이 나에게 어려움을 몇 번이나 토로했다. 나도 안다. S가 얼마나 자조적으로 말했을지. 나에게도 소소하게 그런 도움을 요구했었는데 결정적으로 팀별 과제가 문제였다. 그 과제를 위해 우리 팀은 직접 다른 지역으로 가서 사진을 찍고 자료조사를 해서 왔다. S는 나에게 그 자료를 공유하자고 말했다. 나에게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친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어느덧 나는 이성을 장착하고 S에게 말했다. 내가 이걸 어떻게 했는지 아냐고. 직접 하라고. 그냥 가져가는 건 아닌 거 같다고. 이 말이 S에게 그렇게까지 상처가 될지는 몰랐다. 물론 그 누구도 S에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겠지. 그래서 놀랐겠지. 아팠겠지. 물론 이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S는 얼마 뒤 휴학을 했다. S는 지금도 가끔 그 얘길 했다. 너 때문에 휴학을 했노라고, 웃으면서. 그런데 그 진짜 이유를 S는 알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아마 한 번이었으면 그런 얘기를 안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었다면 마음의 여유가 더 있었을 터, 내가 직접 그리 말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쨌든 상처 받기 쉬운 애니까. 상황이 어찌 됐든 내가 나서서 굳이 상처 입히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같으면 말이다. 그저 모든 입장에는 말할 수 없는 양면이 있겠지 싶다. 지금은 이렇게 순하게 말할 수 있다. 그게 개인적이든 이기적인 이유든, 병적인 부분을 내가 건든 것이든 그것들은 자신만의 서사의 한 부분이겠지 싶다. 그래서 그 말이 나는 아직 떨떠름하다. 차라리 말하지 말걸, 내가 그 얘기를 이리 오래 듣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연민을 강요받았다는 생각을 오래 했다. 지금은 그 생각에서 자유롭다. 외로운 사람은 뜻밖에도 남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그 당시에 나는 그런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나도 외로웠으니까. 나는 다른 쪽으로 누군가를 어렵게 했던 사람이었겠지. 자존심이라든가 경계라든가 차갑기 그지없는 마음이었다든가.


  사회적인 이슈에 관한 이야기들도 그 현상을 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갖가지 시선들이 서로 얽혀 있다. 정치적인 성향이든 자신만의 정의이든 실질적인 경제에 관한 관점이든 간에 자신만의 논리로 무장된 여러 가지 시선과 말들이 무지막지하게 얽혀있다. 사실 얽혀있는 것까지는 상관이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강요에 있다. 너는 이 문제에 대해 할 말이 없니, 라는 시선.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하는 무언의 압박. 넌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무시의 발언.

  코로나 19에 대한 이슈들이 각 톡방에서도 난리 법석이다. 신랄하게 정부 쪽을 물고 늘어지는 부류, 그 물고 늘어지는 부류를 무참하게 밟는 부류, 가짜 뉴스를 확신을 갖고 혹은 진짜 몰라서 퍼 나르는 부류, 그냥 별 말없이 지켜보는 부류, 말이다. 가끔은 너무 가열되고 자신의 말 외에는 아무것도 듣지 않으려는 원색적인 비난을 터무니없이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는 요즘 말을 잃는다. 전에도 브런치에 썼지만 요즘은 말을 많이 줄이려고 노력한다.

   내가 속해 있는 글 쓰는 이들을 묶은 톡방에도 얼마 전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 끊임없이 정치색을 드러내며 말을 양산하던 쪽에게 누군가가 이곳에서만은 정치 이야기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이건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 애국심이다. 그러는 당신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냐"라고 따져 묻던 사람, 실제로 싸움이 일어나고 서로 욕을 하며 모임에서 나가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처음부터 내 생각은 정해져 있으니 너의 말은 듣지 않겠다, 네가 하는 말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그런 말투, 네가 뭘 아니 내 말이 맞아 하는, 원색적인 말들을 질펀하게 쏟아놓으며 시시덕거리는. 사실 서로 처음부터 그 이야기는 꺼내는 게 아니었다 싶기도 했다. 서로 상대편의 말을 들어줄 마음이 아예 없으니까 말이다. 뉴스에서 보는 정치판 싸움을 보는 것 같았다. 글 쓴다는 이들이 모이는 톡 방에서 말이다. 씁쓸했다.

  아무 말하지 않음으로 내 말이 전해졌을까, 가끔 궁금하다. 아무 말하지 않으면 무관심이나 무지로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서 말이다. 아니면 어디 켕기는 곳이 있나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내 몫의 오해를 받으면서도 아무 말하지 않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너는 이쪽이야 저쪽이야, 라는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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