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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닝닝하고 밍밍한 Mar 16. 2020

라면 7봉!

-시대를 역행하는 대식, 폭식의 길

  아이들이 크니 라면을 꽤 자주 먹게 된다. 밥은 밥이고 라면은 라면인 것이다. 아직 맛을 보지 않은 라면이 없을 정도로 모든 라면 맛을 섭렵하고 있는 남편과 남편이 라면을 먹을 때 옆에서 깨작깨작 한 입만, 한 입만 더 하던 어린것들이 이제는 커서 제법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는 뜨거운 국물과 누구의 입맛이라고도 할 것 없이 잘 설계된 조미료의 맛에 홀라당 빠져 있다. 예전에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돈을 벌어 라면 따위를 먹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알겠다. 라면만큼은 빈부의 격차가 없는 맛을 선사하고 수많은 밤 이성을 무너트리는 본능적인 맛으로 무장하였으므로 라면은 나름 꽤 많은 이들에게 필사적인 맛이 분명하다.


  우리 네 가족은 대체로 슬림하다. 초등 고학년이 된 아이들은 평생 몸무게가 하위 1% 대를 거의 넘겨 보지 못했을 정도로 날씬하다 못해 뼈다귀냐는 소릴 금치 못할 만큼 짠해 보인다. 4학년, 6학년 두 아이 다 30킬로도 되질 않는다. 아무리 먹어대도 살이 찌질 않는다. 나도 나름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에서는 내가 제일 살이 쪘다. 아이들의 표현에 따르면 말이다. 아무튼 우리 가족은 이렇게 다들 아주 마른 체질들임에도 불구하고 먹성만큼은 남들에게 뒤지질 않는다. 예전부터 음식점에 네 식구가 가면 음식을 3-4인분을 시키는 게 아니라 적어도 6인분 정도는 시켜야 한다(하긴 연애 때도 우리 부부는 둘이 2인분을 먹지 않았다. 꼭 한 개씩은 더 시켰다). 음식 주문을 할 때면 이거 다 먹을 수 있겠냐고 꼭 물어보신다. 그리고 먹고 나갈 때도 그거 다 먹었냐고 꼭 물어보신다. 나는 네,라고 짧고 단호하게 말한다. 내겐 꽤 익숙한 질문이다. 이렇게나 많이 먹어요?라는 말, 말이다.


  남편의 식성에 따라 아이들도 밀가루 음식과 면 음식을 상당히 좋아한다. 요즘은 거의 갇혀 지내느라 주말에도 매끼를 집에서 만들어 먹거나 간단한 면 음식, 밀가루 음식을 자주 먹게 된다. 얼마 전 주말 점심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우리의 시작은 5봉에서 출발되었다. 어차피 3-4봉으로는 택도 없으니까. 그런데 우리 두 부부는 몇 젓가락 먹지도 않았는데 벌써 냄비 바닥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아, 우리에게 라면 5봉은 부족한 양인가 보다 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라면 6봉을 끓였다. 한 팩에 보통 4-5개씩 들어있으니 다른 라면과 앙상블을 이루어 끓여댔던 라면이다. 그런데도 뭔가 부족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각자 부족한 양은 밥을 말아먹고 나서야 배 좀 두드릴 수 있는 정도랄까.


  그래서 다음엔 7봉을 끓여야겠다고 남편과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물론 체격이 좋은 사람들 중에 1인이 몇 봉을 먹는 사람들도 봤지만 체중이 작은 어린것들이 둘씩이나 있는 4인 가정에 라면 7봉이면 적은 양은 아닌듯하다. 주위에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다른 이들에게도 물어보니 니들이 너무 먹는다고 한다. 본인들은 4인 가정에 라면 3봉 끓여 밥 조금 말아먹으면 너나없이 배부르다고 한다. 다른 집들은 대부분 소식小食을 하나보다. 우리만 小食에 역행하여 대식, 폭식의 길을 걷고 있나 싶었다. 뭐 어쩌겠나. 저리들 먹으니 먹는 대로 주기로 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정말 살이 찌지 않고 너무 마른 몸매를 가지고 있어서 주위 사람들이 내게 늘 이런 말들을 종종 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유기농, 친환경 식품 그리고 찌거나 살짝 데쳐서 먹이거나 달고 짠 음식, 기름에 튀긴 음식을 많이 주지 않는 내게 무조건 기름에 볶고, 튀기고, 부쳐서 먹이라고 말이다. 영양식, 웰빙 이따위 다 소용없다고 말이다.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생각했던 음식과 영양에 대한 가치와 철학이 다 무너지긴 했다. 너무 마르고 왜소한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쨌든 우리는 라면 7봉에 도전했다.




  누군가는 말했다. 저런 냄비라면 사골이나 갈비탕을 끓여야 한다고 말이다. 미역을 좋아하기 때문에 미역국을 한 냄비는 끓일 수 있을 정도의 양의 미역을 충분히 넣었고, 다시마와 건새우, 파, 달걀 3개를 추가해서 먹었다. 라면의 본연의 맛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보면 까무러칠 정도의 갖가지 재료들을 라면 국물과 함께 우려내어 먹는다(그 외에도 오징어, 조개, 게, 새우, 버섯, 호박, 양파 등도 우리 집 라면에 자주 등장하는 재료다). 우리는 젓가락이 아니라 집게를 들어 라면 가락을 바닥부터 긁어 올리며 각자의 접시에 덜어 먹었다. 아이들 말로는 꽤 만족했던 식탁이었나 보다. 라면 7봉에 우리는 흐뭇했다. 시대를 역행하는 대식, 폭식의 길이었으니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배를 팡팡 두들기며 진짜 배부르다, 를 연발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정말 소처럼 드러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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