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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닝닝하고 밍밍한 Mar 31. 2020

죠리퐁을 먹다가 든 생각

- 죠리퐁은 뒷면이 맛의 정점이다.

 

  언젠가 SK 와이번스 경기에서 실종아동 찾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실종아동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경기를 보는 내내 잃어버린 이름, 현기증 나는 그 추운 이름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그 후로도 선수들은 자신의 유니폼을 통해 실종아동의 이름을 알리는 활동이 계속되었는데 코칭스태프를 포함한 SK 와이번스 야구단 전원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선정한 실종아동의 이름을 유니폼에 새기고 경기에 출전하며 실종아동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신선한 시도였고 몸값 높은 선수들이 제대로 몸값을 하는 경기였다.


< '죠리퐁' 봉지로 52년 만에 잃어버린 동생 찾은 남성 >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5&aid=0001023127&sid1=001)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정말 이런 일이 이루어질까, 했던 것. 내 이름과 닮은 당신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일. 알 수 없는 생의 속도는 그렇게 극적으로 멈췄다. 이런 기사와 사진을 보면 나도 같이 마음이 찡해진다. 누군가가 없는 그 긴 여백을 그들은 어찌 견뎌냈을까 하고 말이다. 지금은 좀 다른 양상이지만 예전에는 실종 아동이 되는 시작은 대부분 "엄마 잠깐 다녀올게. 다른 데 가지 말고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보통 이렇게 시작되더라. 그리고 돌아왔을 때는 '사라지고 없었다',였다. 그 흔한 CCTV도 없던 시절. 사전지문 등록제, DNA 검사 이런 것들도 당연히 없었기에 어딘지도 모를 잃어버린 가족을 찾기 위해 슬프게도 그저 발품을 팔 수밖에 없었다. 달리 방법이 없다. 보육원을 이 잡듯이 뒤진다든가 전단지를 거머쥐고 이리저리 미친 듯이 뛰어다닌다거나 비슷한 이를 봤다더라는 드문드문 들려오는 목격담에 의지해 찾으러 갔다가 실망하고 돌아오기 일쑤였을 것이다.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도 미아방지 아이템들을 많이 사용했다. 아이들의 이름과 부모인 우리 부부의 전화번호가 기록된 팔찌와 목걸이를 외출 때마다 꼭 채웠고, 놀이 공원이나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 갈 때에는 밝은 계열의 옷을 입히고, 특히 손을 꼭 붙잡고 가거나 안고 가거나 전화번호가 적힌 이름표 등을 아이 가방에 달아주기도 했다. 말을 제법 하기 시작할 때부터는 아이 이름, 부모 이름, 사는 곳, 전화번호를 꼭 외우게 해서 데리고 다니거나 엄마, 아빠를 잃어버렸을 때의 대처 방법들에 대해 무수하게 일러 주었던 기억이 난다. 또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때나 저학년 때는 이런 노래도 배워서 불렀었다. 제목이 <미아 예방송>인데 한동안 내 아이 또래의 아이들은 이 노래를 얼마나 불러재꼈는지 모른다.


  (멈추기) (생각하기) 도와주세요/ 내 이름 전화번호 부모님 이름/ (꼭꼭) 기억해요
  엄마손 놓치면 그대로 멈추기/내 이름 전화번호 10번 생각하기
  빨간 버튼 (112) 경찰 아저씨 도와주세요/ (멈추기) (생각하기) 도와주세요
  내 이름 전화번호 부모님 이름/ (꼭꼭) 기억해요 (꼭꼭) 기억해요


  얼마 전에 죠리퐁을 먹으면서 문득 죠리퐁의 뒷면을 보았다. 오랜만에 먹는 죠리퐁에서 가슴 찡한 사진을 보았다. 내 기억에는 실종 당시 사진만 실려져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과자 봉지 뒷면을 보니 실종아동의 현재 추정 사진이 함께 실려 있었다.


  


  실종 당시 만 6세였던 신규진은 30여 년을 뛰어넘어 저렇게 생겼을 거라고 추정되었다. 아마 신규진 본인조차 모를 것이다. 죠리퐁을 먹으면서도 모를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낯선 몸을 보며 평생을 읊조렸을지도 모른다. 여섯 살의 어린 신규진은 얼마나 먼 곳까지 흘러갔을까. 아무도 찾지 못하는 자궁 같은 어둠 속에서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엄마를 미워하다가 사랑하다가가 가끔 웃었겠지. 얼마나 타인의 눈 속에서 울고 있었을까. 누군가가 더듬어 찾는 이가 자신은 아닐까 해서 말이다. 현재, 신규진은 저렇게 반듯하게 서른 후반의 어른이 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왠지 눈이 슬퍼 보인다. 아무도 모르게 깊어지는 그 마음은 아마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과 똑같을 것이다.

  

  죠리퐁을 먹으면서 생각한다.

  이제 와서 보니 죠리퐁은 뒷면이 맛의 정점이었구나 싶다. 죠리퐁을 먹을 때에는 드시 뒷면을 꼭 확인하길 바란다.


생각이 많을 때는 무수한 알갱이들을 한꺼번에 털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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