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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닝닝하고 밍밍한 Feb 22. 2020

숨기고 싶은 혹은 들키고 싶은

ㅡ 또 하나의 생생한 고민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나 대중매체에서 떠드는 것 이상을 알기 어렵다. 제도 교육이나 미디어를 통해 축적된 정보는 세계관과 가치관을 만드는 토대가 된다. 슬프게도 한 인간의 우주가 미디어를 통해 완성된다. 그래서 우리가 도덕, 상식, 통념이라 부르는 가치 체계는 워낙 당대의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글을 쓸 때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신 어떻게 어느 만큼까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지 알려고 해야 한다. 언론매체에서 떠드는 상식에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는 자, TV에서 커트된 무수한 삶을 '감히 알려고 하'는 자가 작가다. 

-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p. 116



   작가가 되고 나서 글을 쓰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 발표할 공간이 늘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수입이 늘 따라붙는 것도 아니다. 나오려고 했던 책은 얼토당토않은 이상한 이유로 엎어지기도 하고. 작가이면서 독자로서 쓰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독자이면서도 끊임없이 작가라는 마인드로 쓰는 글도 늘어났다. 어쨌든 작가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날이 길어지고 글을 쓰면서도 꽤 오래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던 중 기사를 통해 드라마 작가 임상춘의 행보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최근에 끝난 <동백꽃 필 무렵>의 임상춘 작가의 행보는 꽤 이례적이다. <쌈, 마이웨이>와 <동백꽃 필 무렵>, 이 두 드라마를 쓰고 작가는 제법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오른 모양이다. 다들 임상춘 작가가 도대체 누구야,라고 했더니 필명이란다. 애써 그리 지었는지 필명만으로는 성별 구분이 모호해 보이는데, 30대 초반의 여성 작가라는 정도의 정보만이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다. 같이 작품을 찍었던 배우들조차도 "작가님 알려고 하지 마세요. 도망갈 것 같고 숨어버릴 것 같아요"라며 그녀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비밀을 유지해주는 모양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게 될 경우 다시 필명을 바꿔 다른 이름으로 활동할 생각이 있음을 언급하며 철저하게 자신의 정체를 감췄다고 한다. 자기 신념 때문에 숨어서 글을 쓰려고 하는 것보다 본인 성향이 나서는 것을 극도로 힘들어하는 사람 같다,  배우 공효진은 말한다.


   이렇게까지 꽁꽁 숨어서 자신의 글을 내어 놓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차피 유명하게 이름을 날리는 작가도 아니고 작가라고 불러지기도 민망한 시기를 내고 있는지라 임상춘 작가의 행보에 대해 꽤 깊은 울림을 받았다고 하기도 뭣하지만... 무튼 유명세를 떨치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자신과 자신의 결과물에 대해 떠들썩해지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사람, 것도 이쯤이면 인터뷰도, 기사로도, 배우들 입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특출남을 공공연하게 떠들어대도 괜찮을 성싶은데도 꽁꽁 감추는 사람. 그 마음은 어떤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모두들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자신을 전략적으로 PR 하는 시대에 오히려 아무도 모르게 감추는 이가 있다는 것이 꽤 새롭게 느껴진다. 다시 말해, 이 작가는 상식에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는 자이며, 다르게 생각하는 자, TV에서 커트된 무수한 삶을 그저 묵묵히 평범하게 살아가는 자인 것이다.




  글 쓰는 작자인 작가에 대해 요즘 많은 생각을 한다. 내가 나의 글에 대해 어떤 감정과 어떤 대가를 담보로 쓰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내가 글 쓰는 작자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는데도 나를 찾아내는 이가 있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같은 모임을 하고 있어서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을 때 살짝 흘리는 말로 언급했는데도 문예지를 구해서 읽는 이가 있는 걸 보면 고맙다고 해야 할지, 나는 여태 그거밖에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 부끄럽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숨기고 싶은 마음과 들키고 싶은 마음,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삶에 대해 파헤치고 묘사하고 감싸 안거나 내치는 작업들을 나는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얼마나 치열하게 하고 사는지 잘 모르겠다. 사실은 나의 글과 삶에 자신이 없어서, 게다가 나는 숨기고 싶은 만큼 혹은 들키고 싶은 만큼 커다랗고 깊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내가 글을 쓰는 작자라고 함부로 말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나에게는 또 하나의 생생한 고민이다.


  코로나가 삶이 되었다. 마스크는 얼굴과 같고 민낯을 보이는 일이 더욱 생경해졌다. 손은 감추며 나에게만은 그 누구의 물과 침이라도 튀지 않기를 기대하는 나날이 길어진다. 모든 것들이 처음으로 속히 회복되기를, 바란다. 가면 같은 마스크를 뜯어내는 날이, 누군가를 손으로 감각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것들이 흔한 일상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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