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세상 어느 곳에 내놔도 밥을 굶지 않을 타입이다. 반면 나는 해외에 나가면 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아서 호텔에서 먹는 음식 외에는 잘 먹지를 못한다. 향신료에 특히 취약하고 씹었을 때 단번에 느껴지는 식감에 예민하기에 내가 먹던 음식이 아니면 잘 먹질 않는다. 그렇지만 남편은 마트를 들릴 때마다 동남아 쪽 면 음식들도 빠트리지 않고 사 오고 해외에 가도 처음 보는 음식들도 그릇 가득, 우리로 치면 고봉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남편은 한식, 중식, 일식뿐 아니라 서구의 어떤 음식들과 다양한 음식들도 별로 가리지 않고 먹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나와는 상당히 음식 취향이 다르고 풍부하게 음식을 섭취할 수 있다. 나는 음식의 외양만 보고도 이 음식을 내가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향이 나와 맞지 않는 음식은 잘 먹어내질 못한다. 나는 내가 쭈욱 먹고 자랐던 음식,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주로 계속 끊임없이 많이 먹는 타입이다. 해외에 나가도 늘 먹던 음식, 한국 음식을 먹는다고 욕먹는 사람 중에 하나가 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음식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까탈스럽기도 그렇지 않기도 한다. 좋아하는 음식만 주면 그것만 주구장창 먹기도 하므로 나를 다루는 방법은 그리 어렵진 않다. 다만 싫어하는 음식만 억지로 입에 넣어주질 않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한식을 꽤 많이 좋아하고 집밥을 많이 해 먹는 편이다. 남편은 이것저것 다 잘 먹지만 한식도 워낙 여러 종류의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결혼 전 정말 단 한 끼도 내 손으로 밥을 해 본 적이 없는 나였지만 지금은 안 하는 거, 못하는 거 없이 다 하게 되었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재료까지 반찬으로 만들어서 남편의 밥상에 올리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 남편이 가지볶음이 먹고 싶다고 하여 어제저녁 반찬으로 내놓았다. 나는 사실 예전부터 가지를 잘 못 먹었다. 그 물컹한 느낌이 영 내 입맛에 잘 맞질 않는다(그런데 내가 만든 가지볶음은 먹을 수 있겠다. 이 무슨 말인지 --). 가지뿐이었으랴. 버섯의 물컹함도 싫어했다. 다행히 지금은 몇 가지 종류의 버섯만 제외하고는 모든 종류의 버섯을 잘 먹는 편이다. 우엉은 좋아하는데 연근은 싫다. 뻥뻥 뚫린 구멍이 싫다.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어이없어한다(`-`). 회를 먹은 지 오래되지 않았다. 두껍게 썬 회는 잘 못 먹는다. 얇게 썰어 초고추장에 듬뿍 찍어야 제맛이다. 전형적으로 회를 잘 못 먹는 사람의 행동이 되겠다. 그래도 회는 먹는데 회초밥은 또 못 먹는다. 두껍기 때문이다. 입에 물컹거리며 씹히는 게 힘들다. 연어나 참치회, 육회도 못 먹는다. 호박볶음은 괜찮은데 호박전은 영 별로다(이렇게 쓰니 되게 변덕스러워 보인다. 다들 그러지 않나요오...?).
우리 가족은 해산물을 좋아하는 편이다. 나의 주 전공은 해물탕이다. 게, 새우, 미더덕, 여러 종류의 조개, 우렁, 오징어는 우리 냉동실의 기본 재료이다. 해산물을 워낙 좋아해서 해물탕뿐 아니라 게 찌개, 해물 된장찌개, 동태찌개, 해물 순두부, 홍합탕, 조개탕, 문어숙회, 해물 부침개, 오징어국, 다슬기국, 오징어, 낙지, 주꾸미 볶음, 우렁쌈밥 등등을 자주 해 먹는다. 해산물을 좋아하지만 멍게, 해삼 같은 건 또 못 먹는다. 남편이 해산물을 좋아해서 자주 밥상에 올리니 우리 아이들도 어렸을 때부터 맵고 얼큰한 해산물 요리들을 좋아한다.
물론 어디에서든 모든 음식을 잘 먹고, 외식도 좋아하고 분식을 사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집에서 해주는 특유의 그 집밥을 좋아한다. 특히 국이나 찌개가 꼭 있어야 밥상이 완성된다고 믿는다. 덕분에 우리 아들들도 국이나 찌개가 없는 밥상은 생각할 수 없어한다. 딸 가진 엄마들이 항상 나에게 하는 말이 있다. "야, 너 그렇게 키우지마. 누구 고생시키려고." 자기 딸에게 시킬 것도 아닌데 나는 항상 그런 말을 들어왔다. 걱정마. 제 먹이는 자기가 구하게 할게.
우리의 흔한 저녁 밥상이다.
콩가루 냉잇국, 훈제 오리고기, 가지볶음, 땅콩 조림, 숙주나물 무침, 감자볶음, 물미역, 브로콜리 너마저. 반찬이 많지 않더라도 밥 잘 먹는 예쁜 남편이다.
어제 먹은 국은 남편이 좋아하는 콩가루 냉잇국이었다. 내 또래의 다른 엄마들은 이 국을 잘 모르기도 하고 잘 먹지도 않는다고 한다. 시골에서 가지고 온 콩가루가 늘 비치되어 있으므로 생각나면 자주 해 먹는 편이다. 채 썬 무의 슴슴한 맛과 콩가루를 입힌 냉이가 입안에서 달게 무너지는 맛은 속을 뜨겁게 데운다. 콩가루 냉잇국은 화려하게 입맛을 당기는 맛은 아니지만 소박하고 아련한 맛을 낸다. 그래서 겨울이면 늘 생각나는 맛이다.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하고 허하지 않는 맛. 그래서 남편은 이 국을 좋아하나 보다. 아마 시골에 계신 엄마를 닮은 국이 아닐까, 하는.
내 밥상도 콩가루 냉잇국 같다.
특별히 어여쁠 것 없는 말이다. 밤이 이슥해져야 들어오는 사내에게 바깥세상의 연장선 같은 그런 것 말고, 엉큼하고 화려한 그런 것도 말고, 슴슴하고 자잘한 풀때기 같은 밥, 섣불리 마음의 빗장을 풀고 먹어도 되는 그런 밥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