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소하겠지만, 냇가(민물)에서 사는 '다슬기'를 경상도 사투리로 '골부리(고디)'라고 부른다. 충청도에서는 '올갱이', 전라도에서는 '대사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물론 표준어가 '다슬기'이지만 경상도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학창 시절을 보낸 나에게 '골부리'는 적당히 촌스럽고 지방색을 띤 익숙한 언어이다.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다슬기'라고 말하면 뭔가 막 간지러운 느낌이 든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골부리'는 '골부리'여야 제 맛이다.
청정 일급수에만 산다는 이 골부리는 우리 어항에서 새우들과 정답게 살아가고 있다.
어릴 적, 식구들과 냇가나 계곡으로 가서 골부리를 잡았던 기억이 있다. 골부리는 야행성이라서 해가 쨍쨍한 낮에는 돌 밑에 숨어 있거나 모래 속에 파고 들어가 있다가 해질 무렵에 슬금슬금 기어 나온다. 허리 높이의 유속이 빠르지 않은 물에서 (우스꽝스럽고도 진지하게)얼굴만 밖으로 내밀고 손은 물속 끝까지 내려 돌을 헤집거나 돌 밑을 가만가만히 만져보면 골부리가 손에 잡힌다. 그 손맛을 아직도 기억한다.장년 여름에 엄마를 모시고 냇가에 가서 어릴 때처럼 골부리를 잡았다. 골부리를 잡아 생계를 이을 것도 아닌데, 우리 모두는 그때처럼 손가락에 온 기운을 모아 돌을 가만가만히 훑고 뒤집으며 먹이를 구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신기하게도 다 커버린 내 손이 골부리의 육체를 아직 추억하고 있었다. 한 바구니 그득 잡으면 그게 또 그렇게나 기뻤다. 일용할 양식이라도 구한 듯 말이다.
그렇게 잡은 골부리는 해감이 굉장히 중요하다. 충분히 해감을 시켜야 삶아서 요리를 했을 때 모래가 덜 씹힌다. 이왕이면 고무장갑을 끼고 골부리를 깨끗한 물에 여러 차례 빡빡 비벼서 씻는다. 흙과 물이끼를 뱉어 내도록 소금을 좀 넣어서 씻으면 좋다. 그러면 물이끼 같은 불순물들을 엄청 많이 뱉어낼 것이다. 그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한 다음에 충분히 물에 담갔다가 다시 물을 갈아 주는 것을 여러 차례 하면 할수록 더 정갈한 골부리를 먹을 수 있다. 어둡게 해 주면 해감이 더 잘 된다. 부끄러워서 그런 건 아니다. 이때 골부리가 그릇 밖으로 튀어나갈 수도 있으므로 뚜껑을 덮어 두는 게 좋겠다.
해감 한 골부리를 삶는 과정 역시 신중해야 한다. 여러 차례 해감시켜 놓은 골부리를 채에 받쳐놓으면 껍질 밖으로 몸통이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살점이 나와 있을 때 가차 없이 뜨거운 물에 확 부어서 삶아 내는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골부리를 깔 때 골부리 알맹이가 쏙쏙 잘 빠지고 골부리 눈도 쉽게 잘 떨어진다. 살점을 내어 놓는 순간이야말로 몸과 헤어지는 순간이다.
골부리를 재료로 골부리 냉채, 골부리 국, 골부리 무침, 골부리 조림, 부침개 등 생각보다 여러 가지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지만 우리 식구들은 그중 골부리 국을 제일 좋아한다. 골부리를 삶으면 영롱한 초록색 물이 나온다. 그 물은 절대 그냥 버리면 안 된다. 그 물로 골부리 국을 끓여야만 국물 맛이 제대로 나기 때문이다. 배추, 부추, 고사리, 얼갈이 같은 나물을 삶아서 먹기 좋게 약지 손가락만큼 잘라놓고 대파, 표고버섯 같은 야채들도 곁들이고 특히 마늘을 다져 넣으면 골부리 특유의 비릿한 맛을 잡을 수 있다. 이렇게 준비해 둔 나물에 밀가루와 고춧가루를 넣어 섞고 국간장으로 밑간을 해둔다. 골부리를 삶아 놓은 물이 바글바글 끓어오르면 미리 까 놓은 골부리와 양념된 나물을 넣어 한소끔 끓여내면 된다. 얼큰한 것을 원하면 청양고추를 넣으면 좋다.
골부리국을 끓이는 과정. 국을 끓이면 내일 치 양식이 생긴다.
지금도 우리 시댁에서는 저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 골부리 국을 많이 끓여 드신다. 내가 골부리 국을 끓이는 방법에 대해 저리 자세히 아는 것도, 골부리를 재료로 여러 가지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었던 것도, 골부리를 다시 추억 속에서 재소환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것 때문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가끔먹었던 골부리를 다 커서 결혼을 하고 난 후 참으로 많이 먹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먹어 왔던 골부리 맛을 잊지 못하던 남편은 결혼 후에 나에게 골부리로 요리를 해주길 원했고, 그즈음(신혼 즈음) 나는 남편이 좋아하는 것은 뭐든 해줄 용의가 있었던지라 그게 습관이 되어 지금까지 시댁에서 어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뜨거운 불 앞에서 오랫동안 골부리를 삶고 까고 국을 끓이고 있다. 당신의 유년을 채워주는 맛, 처음으로 되돌리는 추억을 확장시켜 주는 맛, 시어머니가 해주셨던 유일한 그 맛을 나는 여전히 흉내 내고 있고 그 순간들의 맛을 여전히 복원시키고 있는 중이다.
어찌 됐든 남편이 골부리를좋아하고, 골부리를 삶고 까고 무치고 쏙쏙 빼서 먹는 모습을 보고 어린 우리 아들들도 자연스레그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골부리의 아릿하고 살짝 쓴맛은 우리 가족의 마음을 흔드는 맛이 되었다. 골부리 국은 정말이지 아는 사람만 아는 독특한 맛이다. 그저 흔히 먹고 쉽게 할 수 있는 즉흥적이고 상투적인 맛이 아니다.
그런 우리 가족의 섭생을 잘 아시는 시어머니께서 지금도 우리가 시댁에 다녀 갈 때면 늘 골부리를 준비해 놓으셨다가 골부리 국을 내어 오시고, 삶아 놓은 것들을 간식으로 까먹을 수 있게 해 주셨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더운 여름에 골부리를 잡아 놓거나 시장에서 잡아 놓은 골부리를 사서 미리 삶아 놓아야 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나는 시댁에서 먹는 밥이 참 좋다.
시댁에 갈 때면 휴게소도 들르지 않고 어머니가 해 주시는 밥을 먹으러 시댁으로 곧바로 갈 때가 많다. 언제나 차린 게 없다고 하시지만 무엇보다 아들, 며느리, 손주들이 좋아할 것들을 매끼 다른 찬으로, 국으로 채워주시는 그 식탁은 희생이 주는 고되고 억척같은 밥상이 아니라 처음처럼 한결같은 밥, 무엇보다 먹이를 구하느라 흘린 고된 흔적이 없는 그런 밥상이었다. 시어머니가 차려 주시는 밥을 먹으면(물론 아들과 두 손자들을 먹이는 밥이기도 하지만)아들과 사는 며느리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며느리에게 지어 먹이는 밥이라도 홀대하시는 법이 없으시다.
아무리 노동을 해도 늘 기진맥진한 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 어떤 이의 밥상은 그 밥을 먹을 때마다 부채감이 들 때가 있다. 이 밥을 먹고 나면 내가 뭔가 그를 위해 갚아야 할 것이 생겨나는 것처럼, 사람 노릇을 해야 할 것처럼, 그런 무거운 생각이 들게 하는 밥이다.
그렇지만 시어머니가 해 주시는 밥은 많이 먹어도 갚지 않아도 되는, 스산한 기억이 없는, 그냥 좀 누려도 되는 그런 것이었다.시어머니의 희생은 나에게 조금 특별하다. 내가 누려보지 못한 자식에 대한 그 충만한 마음에는 무엇보다 삶의 여유가 있다.그것은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김훈, <라면을 끓이며>, p.15) 같은 것이 없다. 경계와 조바심도 옹색함도 없다. 그저 훌훌 마시고 맘껏 맛있다고 말해도 되는 그런 것이다. 밥알 하나하나에도, 반찬 그릇 마다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무엇이다. 휴가 때 시댁에 갔을 때도 어머니는 시원한 골부리 국을 정성스레 끓여 놓으셨다. 나는 시어머니 밥 앞에서 경계를 풀고 늘 느슨해진다. 그날도 어김없이.
어제 나는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골부리를 발견하고서는 군말 없이 카트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집에서 밤늦게 골부리 국을 끓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자식들이 먼 도시에서 온다는 얘길 듣고 며칠 전부터 음식을 하고 먹을 것을 쟁여 놓고 냉장고 문만 열면 우리 식구들의 취향에 맞게 음식들이 채워져 있는 것을 보면 먹지 않아도 마음이 들끓을 때가 있다. 그 마음으로 나는 골부리 국을 끓인다. 아침에 남편과 아이들이 일어나서 먹을 한 끼 식사, 뜨겁게 달래주는 그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