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악의 없는 평범한 그 한 마디에 문득 그래 어디서 참 많이 듣던 소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도 나이에 비해 야무지고 참 성실히도 성실한 그 아이. 없는 형편에 성실하지 않으면 곧장 비난의 소리가 들려올 줄 그 아이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끝끝내 성실히도 성실한 그 아이를 보면서 그 시절 나의 결핍을 채우던 그 한 마디, '성실'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을 참 아프게 했다. 가난을 잘근잘근 씹어 먹고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성실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고백하자면,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열심히 살아보지 않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교만이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그렇진 않다고 말하고 싶다.
그냥 내가 타고난 성정이냐고 묻는다면,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순간,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 어떤 이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인생에서 너무 빨리 깨달은 것이다.
내 두려움의 근거는 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가 누구를 책임질 수 없을 만큼 가난하고 서로 아팠으니까.
차라리 동정을 택하지 그랬냐고 묻는다면, 참 모르는 소리라고 말하고 싶다.
남에게서 동정을 받는 일이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타고난 연약함과 수치심을 긍정하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받을 수도 받아들이기도 힘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일찍부터 동정받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고난의 냄새를 피우고 싶지 않아서 나는 애써 슬픔을 모르는 사람처럼 무덤덤하게 행동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나의 후회는 그거였다.
단 한 번도 소란스레 나의 고난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거.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집어 올리듯 '침착하게' 반응한다는 것.
누가 누가 더 아픈지 내기라도 했었더라면 어쩌면 나는 제법 가볍게 살았을 텐데 말이다.
가난하고 관계적으로도 결핍된 사람은 누구나 다 불편해한다.
어릴 적부터 가장 많이 받아온 눈빛이 "그래, 너 같은 애들은 열심히라도 살아야지" 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은 안 했지만 "열심히 하는구나, 열심히 해서 좋구나"라는 말은 안 그래도 타이트한 나의 인생을 더 졸라매는 것이었다.
그냥 좀 느슨해도 되는데, 그냥 아무 경계심 없이 놀아도 되는데, 대충 해도 되는데, 아무나 만나도 되는데, 다 괜찮은데 왜 나에게 열심을 강요했는지 나는 그 이유를 너무 빨리 알았던 거지.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먹이를 구하기 위해 평생을 열심을 바쳐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야만이 비난을 면할 수 있고 평균적인 삶의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부모 중 한쪽이 없는 우리 가족에게는 거기에 높은 도덕적인 잣대까지 추가되어 늘 경계와 부끄러움을 아우르는 시선을 통증처럼 오래 앓았어야 했다.
언제나 더 높은 고고한 잣대와 기준으로 우리는 헤프기도, 불쌍하기도 했다.
그래서 감정적이고 느리고 산만하고 자주 우는 사람이 힘들었다.
늘 안 괜찮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나를 다그친 시간이 너무나 길고 추웠기 때문에 감정을 함부로 터트리는 사람들이 익숙지 않았다.
특히 우는 사람 옆에 있으면 불편했다. 내 울음소리를 들은 사람은 정말이지 몇 안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징징대는 소리는 봉인된 말을 터트려야 할 것처럼 마음을 잔인하게 긁었다.
그래서 였겠지.
마치 훈련된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나는 결정과 일처리가 빠르고 목표도 뚜렷하고 사교성이 좋고 남들의 반응에 척척척 맞출 줄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늘 후유증이 따라다녔다.
대체로(꾸미지 않아도) 당당하고 위트 있고 자신만만하게 행동했지만 늘 다른 사람의 마음이, 표정이, 말투가 신경 쓰였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지금의 나는 일종의 훈련의 결과이기도 했겠지만 그것보다 가정을 이루고 나를 보호해 줄 가족이 생긴 이후로는 그러한 마음들을 오롯이 내려놓았다.
진심으로 웃었고(곧 울 일이 닥치더라도 지금 웃을 수 있고) 다가 올 어떤 순간을 위해 나를 잃을 만큼 애써 성실하지 않는다.
내 안의 슬픔의 동선들을 더 이상 하염없이 헤매고 다니지 않고, 더 이상 고아처럼 겁먹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