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모든 사랑은 재고품처럼 남아돌아
- 애매하게 말하고 싶을 때
커피를 마시러 가다가 우연히 듣게 된 이 노래, 아니 이 詩.
추억은 문득, 이렇게나 가까이 있다.
<소금인형>
- 류시화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언니의 사랑을 훔쳐본 적이 있다.
내가 열여섯, 열일곱이었을 무렵이었다.
언니의 편지들, 암호 같은 남자의 글씨 속에 이 시가 적혀 있었다.
그 남자는 언니의 편지에 답장 대신 몇 편의 시를 적어 보냈었다.
언니는 그 남자를 좋아했다.
암호를 해독하듯 그 시를 보고 또 봤으니까.
남자는 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시를 보고 울고 웃었던 사람은 언니였다.
암호 같은 사랑에 취해 살던 언니는 어느 날 넋이 빠져 돌아왔다.
말도 안 되는 날라리 같은 후배와 그 남자가 사귀기 시작했다는 거다.
적어도 언니에게 시를 보내는 이 남자는 어딘가 다를 줄 알았다는, 범생이 언니의 순진한 생각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거다.
그 남자가 언니가 아닌 새로운 과녁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그때 언니는 몰랐던 것 같다.
그 뒤에 언니는 정말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
순진한 사람들은 때론 극단적이다.
자신이 믿는 일에 대해 어리석을 만큼 극단적이다.
언쟁도, 비난도, 불행의 암시도 언니의 사랑을 막을 수 없었다.
언니는 가끔 그때 그 남자가 적어준 시들을 다시 떠올릴까.
말도 안 된다고 울던 그때를 다시 떠올릴까.
한때 모든 사랑은 재고품처럼 남아돌아, 여전히 처치곤란이다.
언젠가 나도 그랬을까.
애매하게 말하고 싶을 때 시를 써서 보냈다는 사실.
내가 당신을 가질 수도, 가지지 않을 수도 없다고 말하고 싶을 때, 나는 애매하게 시를 읊조렸던 거 같다.
비겁해지고 싶을 때 다른 이에게 시를 써서 보냈다.
그의 생각을, 그녀의 생각을 평생 오독하도록 만드는 일,
그래서 평생을 뒤척이게 만드는 일,
연애란 어쩌면 그런 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