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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닝닝하고 밍밍한 Jul 06. 2019

기록의 의지

<오늘의 고백3> 내가 먼저 내 어둠을 당신에게 들키겠다고

  내가 언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더라.


  중학교 때 우연히 글쓰기 상을 받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이후로 교지 편집부에 들어갔고 나는 내가 비유를 구사할 줄 아는 느낌 있는 사람이라는 걸 조금 알았더랬다.


  고등학교 때는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고(역시 좋아하는 감정만큼 글을 쭉쭉 뽑아내는 소재는 없는 듯하다), 모호한 시들을 썼고, 감상의 극치를 떨던 편지들을 주고받았고, 그 이후로도 뭔가를 끊임없이 쓰고 있었다. 아마 지금까지. 매일 혹은 주기적으로, 또는 간헐적이든 간에 나는 끊임없이 쓰는 인생을 살고 있다.


  평생 자판이나 두드리겠구나 생각했던 것은 망할 국문과를 가게 되었기 때문이겠지. 그저 그쪽으로 발을 들여야겠다고 당연히 으레 그래야겠다고, 어쩌자고 그렇게 생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그것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국문과를 들어가고 나서는 어쩐지 글 쓰는 일과 더 멀어졌다. 대신 그곳에서 나는 글 밖의 것들을 주워 모았다. 연애라든가, 풍문이라든가, 부위를 알 수 없는 슬픔이라든가, 꿈을 뒤집어쓰고 도서관의 유령처럼 전전하는 일이라든가, 모든 가능성의 반대말들을 악착같이 끌어모으던 일이라든가, 아무튼 여전히 먹이를 구하는 일을 제외하고 말이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대학을 졸업한 후였다. 근본 없는 돈벌이를 하고 있는 내가, 반듯한 사회인이 아닌 내가 오래 부끄러웠다. 어디에 내놔도 어색했던, 인생이 참 내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아서 뜻밖에 한탄과 자조와 우울함과 연대를 할 수밖에 없었더랬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이것이야말로 내 인생의 트라이앵글이지. 그렇지만 오래 묵은 그것들이 시간이 되고, 마음이 되고, 문장이 되고, 애써 글이 되어 나에게로 와 주었다. 그 시절 나의 습한 이력을 울어준 것은 내가 쓴 모음과 자음들 뿐이었다.




  글을 쓰다 보면 많은 책을 만나게 된다.

  또래들보다 많은 양의 책을 읽었고 돈이 생기는 족족 사재기를 했으며 특히나 시집은 출판사별 시인선을 번호별로 줄을 세워 소장하고 있었더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시집이었고, 그다음은 시인이 쓴 에세이였다.

  내가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역시나 현실에는 없는 아름답고도 무모한 시어들 때문이다. 때론 내 감정을 앞질러 무책임하게 내지르는 단어들이 좋았고, 휘몰아치는 모음과 자음의 배열들도 좋았다. 그 가운데 감정의 균열은 속도를 얻어 어떤 문장들은 끝내 앓기 시작하는 거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꿈이 뭐냐는 질문에 교사라고 줄곧 대답해왔다. 가르치는 일을 오래 해 왔고 그게 내 인생의 방향에서 그리 틀린 답은 아니었지만, 나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답은 아니었다. 그 대답을 하고 있는 나는 평생을 거짓말을 하고 사는 기분이 들었었다. 

  그래서일까. 나를 대변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 늘 방황했더랬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어쩌면 내 삶의 무게를 조금 가볍게 가져가고 싶은 욕망 때문에 나는 무난한 꿈에 나 자신을 헐값으로 내놓았다는 것을.  결국 나를 아프게 하는 건 욕망하는 나와 욕망하지 않는 나, 둘 다 였다. 그들은 서로 한 통속이 되어 그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는 나를 불편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여전히 나는 쓰는 일에 가장 마음이 흔들리는 그런 사람이다.

  한 편의 시는, 갓 태어난 은밀한 문장들은 식어 버린 나의 몸에 일종의 온기를 가져다준다. 그렇지만 지금도 나는 나의 욕망에 대해 쉬이 말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결국 내 차례가 돌아오기를 애매하게 기다리는 그 기다림의 자세 때문에 나는 더 지쳐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시인이 되기는 했다.

  "엄마가 시인이 되었어."

  "뭐?"

  "엄마가 시를 쓴다고."

  "그럼 친구들에게 말해도 돼?"

  "아니. 너랑 나랑만 알자."

  라고 아들에게 속삭였다. 우리 네 식구를 빼고 나는 아무에게도 등단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작은 문예지의 등단을, 굳이 말하기가 멋쩍었다.


  사실 그것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이 벌이가 괜찮은가에 대해 묻는 물음들이 조금 버거워졌기 때문이다. 돈벌이가 안 되면 그저 생산적이지 않는 일을 한다고 가볍게 결론 내리는 그 무의미한 질의응답들이 나를 또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내가 한 단어를 붙잡기 위해 얼마나 간절했는지, 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버텨왔는지, 그리고 늦은 밤까지 커서 앞에서 잠들지 못하고 깜빡이던 날들에 대해 그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아니 차라리 관심이 없다면 그게 다행이다. 사실은 내가 그들이 내놓는 경제적인 지표 앞에 지레 꺼꾸러지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들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잉여가 아닐 리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

  괜찮다면, 누군가에게 나의 말을 건네고 싶다.


  내가 먼저 내 어둠을 당신에게 들키겠다고,

  그러니 당신은 무사하다고, 그렇게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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