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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닝닝하고 밍밍한 Jul 30. 2019

고백하자면 2

- 부디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기를, 부디 나를 불쌍히 여겨 주기를

  고백하자면 예전에 나는, 타인과 내 얘기를 별로 진지하게 나눠본 적이 없었다. 한때 나는 생각보다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것은 나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부분이라 쉽지 않았고, 남들로부터 이해받는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일찍 알아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누군가가 보기에는 B형이냐 혹은 O형이냐는 얘기를 꼭 집어 자주 들을 만큼(아직까지 혈액형은 이런 의미로도 질문되어진다는 것!) 진지와 발랄을 오고 가는 일에 이제는 제법 능숙해졌다. 나는 남의 얘기를 많이 들어주고 그들의 이야기에 호응하며 적절한 때에 원하는 질문을 던져주고 그들을 웃겨주고 까르르 웃는 사이에 그들로 하여금 내 얘기를 마치 들은 것 같은 인상을 남길 때가 많다. 그들 이야기 속에 내 이야기를 자주, 감추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따지고 보면 남의 얘기에 관심이 없고, 자기 얘기만을 물 붓듯이 쏟아 낸다. 그런 형태의 수다들을 많이 겪어 본 터라, 굳이 내 얘기를 끼어 넣지 않아도 그들은 나와 많은 대화를 했다고 생각해버린다. 단지 나는 그들의 쏟아지는 이야기를 우산도 없이 맞았는데 말이다. 슬픈 사람들은 때론 이기적이고 자신의 슬픔을 누군가에게 전염시키는 일을 자신도 모르게 해내고 만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상식에 따라 움직인다. 상식은 결코 상식적이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나는 이런 마음을 조금 바꾸었고, 이해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삶이 조금 유연했으면 좋겠다는 바람 하나로 내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게 되었다.


  평소에 내 얘기를 잘하지 않으니 내 속내를 잘 모르겠다고 말하던 그들이, 나를 얼마만큼 이해하게 되었는지는 솔직히 확신할 수 없다. 물론 딱히 이해받고 싶어서도 아니고. 어찌 보면 나와 같이 십수 년을 함께한 사람에 대한 예의였다. 말을 하다가도 자주 멈칫멈칫했던 나를 더 이상 설명할 길이 없어서 비로소 내 패를 다 보여줬다고 하면 될까. 기억과 사실, 사실과 기억 사이에 있는 나를. 부디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기를, 부디 나를 불쌍히 여겨주기를. 아마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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