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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닝닝하고 밍밍한 Jun 08. 2019

예열

정체된 것들은 대체로 돌이킬 수 없음에 시선을 둔다.

  일찍 자야지, 하고서는 또 커피물이 끓어오르는 소리. 

  뜨거운 커피잔을 왼손에 들고 오른 손으로 노트북을 켜고, 그 옆에 책을 쌓아 놓고 읽는다.

  몇 년을 걸쳐 문득 다시 읽고 있는 책들, 가령 바르트의 <애도 일기>, 류근과 황혜경의 묵은 시집들, 박진성의 눈물 어린 산문집 같은 것들이다. 

  

  예열하는 일에 온 인생을 바치는 것처럼 요즘 나의 에너지는 겉도는 일에 모조리 쏟아붓고 있다.

  이상하다. 글을 쓰기 위해 글쓰는 일과 자꾸 멀어지고 있다.

  막막하고 막연하고 혹은 추상적인 것들을 언급하는 일은 희망을 붙들고 있는 이들이 저지르는 환상 같은 것일테지.

  혼자만의 소란에 갇히는 것일테지. 


                                                                             

                                                                             완전히 망가져버린 느낌 또는 불편한 느낌

                                                                그러다가 때때로 발작처럼 갑작스럽게 습격하는 활기

                                                                                        -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 p.61


  식탁 위에는 핸드폰, 수첩, 거울, 식은 커피, 여러 권의 시집들, 지갑, 안경, 마우스

  그리고 당신의 흔적. 

  이것들은 모두 제각각이고 또 모두 나의 변주이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를 모두 소진할 때까지, 나는 나를 사력을 다해 쓴다.

  들고 있던 책을 멈춘다.

  지금에 책갈피를 끼운다.


     

  정체된 것들은 대체로 돌이킬 수 없음에 시선을 둔다. 

  나는 오늘에 애도한다.

  나는 오늘도 지나치리만큼 예열되는 시간이 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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