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료한 아픔을 갖는 것
내가 다니던 회사를 말할 수 없는 기막힌 이유로 그만두고 갑자기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너는 경험을 얻었잖아, 라고.
원하지 않았던 터무니없는 경험을, 마치 두고 두고 우려먹을 누룽지라도 되는 양 그녀는 그렇게 말했었다. 가끔은 위로라는 게 그렇게 어이가 없고 두서가 없다.
사실 그녀는 자신만의 서사를 갖고 싶어 했다.
좀 더 모진 경험이 자신을 휘몰아 쳤더라면 지금 자신의 우울을 남들에게 온전히 이해시킬 수 있었을 테니까.
늘 자신의 아픔의 근원을 설명할 수 없어 끙끙대는 그녀의 서사는 아마 그런 거겠지?
명료한 아픔을 갖는 것.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누구나 복잡하고 미묘한 자신만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주는 울림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한 사람을 온전히 까다로운 존재로 만들기엔 충분하다.
한 번도 절박해 본 적이 없는 사람,
나는 이런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가끔은 부당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로지 ‘당신’이기만 한 사람.
부모도 자식도 친구도 아닌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는 ‘당신’이기만 한 사람들 말이다.
대개 사람들이 갖는 유동적인 이미지,
즉 한 사람의 부모이기도 하고, 한 사람의 자식이기도 한,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시간의 세례를 받아 사회인이 되어야 하는 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명백한 사실을 거부하거나 모른 척 하는 사람들에 대해 가끔은 반발이 생긴다.
그렇게 가벼워도,
그렇게 훌훌 벗어 던지고도 살아지는 건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