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향나무
한 번도 원한 적 없는 이 세계에서
백년은 살아야겠지
미치지 않고서 그럴 자신이 있겠니
용기 라는 말을 자주 쓰는 자는 모두 비겁한 사람이 되었다
내 생각을 나보다 더 잘 읽는 자는 모두 적이 되어 있었다
아침마다 나는 고쳐 말하고만 싶었고
작년의 감이 매달려 있는 사월의 감나무를
빨랫줄을 꽉 물고 있는 빨래집게들을
등에 난 흉터를
아까 본 그 사람을
거북이처럼 걷던 그 사람을
거북이는 등이 있어서 다행이고
같은 맥락에서
거북이 등 뒤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다행이고
배낭을 메고 내가 나를 거듭 떠났다
나를 배웅하기 위하여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났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곳으로 가서
얼굴을 버리고 돌아와 얌전하게
생활을 거머쥐는 나에게로 벚꽃잎들이 달라붙을 때
얇이 라는 말을 깊이 생각했다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가장 거대한 흉터라는 걸 알아챈다면
진짜로 미칠 수 있겠니
_김소연, 『i에게』, 아침달 시집, 2018, p.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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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 자신이 가장 가혹한 형벌이다. 이것을 감추기 위해서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혹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곳으로 가서 살아본 적도 있다. 그렇지만 매번 나 자신에게 들킨다. 자기 자신이라는 거대한 세계, 거대한 흉터는 결국 남들과 나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 사실 자체가 슬프거나 아프지는 않다. 각자가 해결해야 하는 자기 자신이 분명히 존재한다. 배낭에 무엇을 넣을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결국 누구나 버릴 수 없는 자기 자신 같은 배낭을 메고 거듭 떠났다가 돌아온다. 모두 비겁한 자가 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