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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닝닝하고 밍밍한 Sep 03. 2019

유년의 한 때를 충만하게 채우고도 남을 맛, 감자

- 감자를 먹으면 속이 조근조근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감자.

  고구마와 함께 대표적인 구황작물이다.

  뭉퉁하게 생겨 그저 생긴 것처럼 까다롭지 않고 온순하여 어떠한 기상 조건에서도 무럭무럭 자라 생계를 유지해 주던 것이다.


  엄마는 어릴 적 이 감자를 무진장 쪄내셨다.
  달지도 않은 것이 그저 텁텁했던.

  

  게다가 깎은 감자가 옹기종기 찜솥에 들어앉아 있는 모습도 어찌나 지루했던지. 특별한 간식거리도 없었으니 엄마 입장에서는 감자만큼 만만했던 간식거리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정말 이십 대 후반까지 그 찐 감자를 입에도 대지 않았다. 찐 감자의 담담한 맛을 몰랐으니 나는 어른이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서른이 넘으니 찐 감자의 맛을 조금 알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도 어렸을 적 나처럼 찐 감자를 잘 먹질 않는다. 하여 나는 밥을 할 때 전기밥솥에 감자 두 세알을 넣어서 밥과 함께 찐다. 밥풀이 얼추 몇 개 붙어 있는 찐 감자를 남편의 저녁 밥상에 내어 주면 그게 또 별스럽게 맛있진 않아도 기특하게도 남편의 밥상을 소복하게 채워주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는 감자볶음처럼 간단하면서도 입맛을 채워주는 반찬은 또 없을 것이다. 어제 저녁에는 감자로 볶음 요리와 조림 요리를 해보았다. 볶음은 아이들 것, 조림은 남편과 나의 것이다(볶음에는 속이 노란 자색 감자를 사용했다. 볶았을 때 색감이 이쁘고 더 달고 양파와도 잘 어울린다).

  



  볶음이든 조림이든 둘 다 물을 자작하게 넣고 익을 때까지 팔팔 끓인 다음에 볶음은 기름에 살살 볶아 소금 간을 해 주면 되고, 조림은 기름에 볶다가 고추장과 요리당을 넣고 은근하게 조려주면 된다. 

  감자 요리는 크게 어렵지 않게 조리할 수 있어서 밑반찬으로 자주 내게 된다. 자주 먹어도 별로 물리지도 않고 언제 먹어도 입 안에 넣었을 때 그 맛 그대로 담백하고 따뜻하다.


  집에 감자가 떨어지면 불안하다.

  볶음과 조림 외에도 온갖 볶음밥에도, 된장찌개에도, 달걀국에도, 수제비에도 감자는 어김없이 소환되기 때문이다. 아 맞다. 귀찮지만 감자전에도 말이다.

  

  마음이 헛헛할 때 감자를 먹으면 속이 조근조근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물론 살이 찌는 느낌과도 얼추 비슷하다;;). 아마 엄마가 그래서 이 감자를 그렇게 찌셨나 보다.

  유년의 한 때를 충만하게 채우고도 남을 맛,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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