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의 시원한 결단
대형 마트는 혼자 가는 게 옳다.
1. 사야할 것들을 정리 메모한 쪽지를 들고 왠만하면 필요한 것들만 구매할 것
2. 1+1에 쓸데없이 현혹되지 않을 것
3. 불필요한 간식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것
4. 아이들의 취향에 맞는 한, 두개 정도의 간식만을 고를 것
5. 평소에 많이 먹는 식재료를 사되, 오늘 할인이 된다면 2개 정도는 쟁여놔도 괜찮다는 것
6. 시식 코너에서 영혼을 빼앗겨 카트에 물건을 호로록 집어 넣지 않을 것
7. 생필품들은 그 자리에서 인터넷 쇼핑몰과 비교해 보고 저렴한 쪽을 택할 것
8. 딱 내 두 손에 한 개씩의 쇼핑백에 담아올 정도의 물건만 살 것
사실 그런 것들이 고마운 일이다.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어머니 앞에 툭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한마디,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
가장으로서의 자랑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고 애정이나 연민 따위 더더구나 아니고 다만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 같아서 좋았던, 그말
- 안도현, 「간절하게 참 철없이」 중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p.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