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아 되면 엄마는 달래 냉이 등을 캐다가 식탁을 풍요롭게 한다. 냉이를 무치거나 국을 끓여도 계절의 향기가 피어오른다. 달래는 잘게 썰어서 간장에 살짝 담그면 독특한 맛에 끌린다. 아이들은 쓰다고 싫어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어른들이 좋아하는 씀바귀가 있다. 읍내에 살고 있는 큰 외삼촌은 특히 좋아하신다. 세 분의 외삼촌 가운데 첫째로 요즘세대에 법무사로 불리는 사법서사로 일하는 분이다. 체격도 좋으시고 외모도 호감이 가는 분이다. 부족함이 없는 여유가 있었다. 한 가지 늦게까지 아들을 기다리는 수고의 아쉬움이 있었다. 첫 외숙모와의 사이에서 딸 다섯을 낳았다. 투 번째 외숙모에게서 아들을 기대했으나 두 딸을 낳고 더 이상 아이를 갖지 않고 지내다. 외삼촌은 반드시 대를 이을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세 번째 외숙모를 맞이했다. 드디어 바라던 대로 마침내 아들을 품에 안을 수 있게 됐다.
"수야, 이 씀바귀 큰외삼촌 갖다 드려라." 어제 캐논 것을 삶아 작은 봉투에 담은 것이다.
"네, 잘 전하겠습니다." 40 분 걸어서 등교하는 읍내 고등학교 가까운 길목에 사무실과 주택이 함께 있다. 어제보다는 5분 일찍 집을 나섰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외삼촌이 벌써 의자에 앉아 신문을 펼쳐 보고 계시다 얼굴을 돌린다. "안녕하세요! 엄마 심부름으로 쓴 나물을 갖고 왔습니다." "수고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인사하고 돌아서려는 나에게 "잠깐만 기다려." 하더니 서랍에서 돈을 꺼내 용돈을 주신다. "고맙습니다." 두 손으로 받아 가방에 넣고 사무실에서 나와 학교로 향했다. 연례행사처럼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가끔 고기보다 더 좋아한다고 얘기하신다.
엄마도 유별나게 쓴 나물을 즐겨하신다. 평소에도 자주 식탁에 오르지만 생일날에는 빠질 수 없는 메뉴이다. 엄마의 생일은 음력 정월 열 이틀이다. 오늘날에는 한 겨울에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여 공급이 되지만 과거에는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누나들은 씀바귀를 구해와서 고기와 바꿀 수 없는 반찬을 만들어 엄마를 기쁘게 해 드렸다.
내가 가정을 이루고 독립하여 남매를 낳아 기르는 일도 쉽지가 않음을 깨달았다. 하물며 여러 남매를 낳아 양육하기 위해 엄마는 얼마나 고생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문뜩문뜩 하게 된다. 어느 해 엄마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남쪽 시골 지역에 머무르고 있었기에 산과 들 논과 밭이 있는 길을 따라 걸으며 살펴보게 되었다. 아직 쌀쌀한 날씨임에도 양지바른 곳에는 새싹이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얼굴을 내밀고 미소 짓는다. 누나들이 엄마 생신에 쓴 나물을 구해오는 것을 알아내는 시간이다. 초등학교 2학년과 1학년인 남매가 토요일이라 학교에서 일찍 돌아왔다. 오후 작은 칼과 호미를 준비하여 비닐봉지에 담았다. 남매를 데리고 미리 봐뒀던 곳으로 갔다. 이것은 '씀바귀'라는 식물이다.
"할머니 생신이 모레인데 굉장히 좋아하시는 반찬이야." 줄기나 잎도 있지만 뿌리가 더 중요한 부분이거든. 얘기하며 조심해서 뿌리째 캐라고 가르쳐 주었다. 서투른 솜씨지만 아이들은 진지하게 씀바귀 캐는 작업을 처음으로 실습하게 되었다. 더음 어른이 되어서도 잊히지 않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고 말할 것 같으니. 추억의 일기장에 간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