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그늘진 곳에서 겨울을 밀어내고 봄이 되기를 기다리던 머위가 고개를 내민다. 머위는 습기가 있는 곳이면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식물이다. 잎이 어린 아기 손바닥크기 보다 조금 더 크게 자라면 엄마는 잎을 따서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식탁 위에 올린다. 직접 만든 강된장을 찍어 입에 넣으면 씁쓸한 맛과 봄의 향기가 입 안을 가득 채운다.
농촌에서 제일 바쁜 때는 아마도 모를 내는 시기일 것이다. 양쪽에서 줄을 띄우고 한 줄로 길게 늘어 선 일꾼들이 손으로 한 포기 한 포기씩 심던 옛날 얘기다. 이앙기로 며칠 사이에 모내기를 마치는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모내기가 시작되면 거의 한 달이 걸려 마무리가 되기 때문에 허리가 아프고 손목이 무기력해져 어려움을 호소하는 날도 있다. 그래도 버티고 품앗이로 웃고 넘기는 것은 막걸리로 쉼을 갖고 점심으로 힘을 보충하는 즐거움이 있는 터이리라. 엄마는 큰 형수에게 가마솥에 불을 때 밥을 하게 한다. 다른 솥에는 머위대 들깨탕을 끓인다. 이른 아침부터 준비해야만 했다.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고 머위대가 잘 익도록 삶는다. 삶은 머위대를 찬물로 깨끗하게 씻는다. 그리고는 껍질을 벗긴다. 벗긴 것을 반으로 굵은 것은 네 등분으로 가르고 적당한 길이로 자른다. 까나리 액젓과 마늘 다진 것, 들기름을 넣어 잠깐 재워둔다. 머위대 껍질은 버리지 않고 물에 담가 둔다. 재워둔 머위대에 대파와 청양고추 썰은 것과 함께 솥에 넣어 볶는다. 다음은 들깻가루, 찹쌀가루를 넣고 멸치와 다시마로 끓여 만든 육수를 붓고 끓이면 된다. 엄마와 두 형수는 준비한 밥과 반찬 들을 커다란 바구니에 나누어 담아 머리에 이고 2km 넘는 거리의 논으로 조심스럽게 걷는다.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안전하게 일꾼들이 기다리는 곳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멀리 점심을 아고 오는 모습이 보인다. 모내기를 하던 일꾼들은 논에서 나와 논으로 물을 대는 농수로로 들어가 손과 발을 씻는다. 씻은 후 둑으로 모여 머리에 이고 온 바구니를 받아 내려놓고 둘러앉는다. 고등어조림도 있지만 오늘은 바가지에 따뜻한 밥을 퍼 놓고 머위대 들깨탕에 말아서 먹는 맛이 압도한다. 여기에 막걸리 한 잔 곁들이니 수라상도 부럽지 않은 들판 식당이다. 바가지는 옛날 초가지붕에 박을 올려 다 자라게 한 다음 톱으로 가운 데를 잘 가른다. 두 쪽이 되면 수저로 속을 모두 파낸다. 그러고 나서 큰 솥에다 물을 붓고 박을 끓는 물에 삶는다. 찬물로 식힌 후 그늘에 잘 말리면 훌륭한 다용도 그릇이 된다. 요술과도 같은 플라스틱 그릇이 등장하면서 무공해 바가지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담가 논 머위대 껍질을 어떻게 할까? 논에서 돌아온 엄마는 압력솥에 넣고 한 번 더 끓인다. 끓인 후 식을 때까지 그대로 놔둔다. 너무 쓰다 싶으면 깨끗한 물에 더 담근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꼭 짜서 물기를 제거한다. 3cm 크기로 자른 것을 고추장 단지 깊숙이 넣어두면 다른 집에서 맛볼 수 없는 우리 집만의 엄마표 머위대 껍질 장아찌가 된다. 별미처럼 먹긴 했지만 도시락 반찬으로 넣어주셨을 때는 난처한 표정이 되었던 기억이 손에 잡힐듯하다. 우선 도시락 뚜껑을 열면 독특한 짠 내음이 번진다. 얼른 가려도 냄새는 어쩔 수가 없다. 옆 친구에게 보여 줄 틈도 주지 않고 서둘러 점심을 먹는다. 장아찌를 도시락 반찬으로 갖고 온 예는 아마 유일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엄마를 이해하고도 남는다. 매일 여러 개의 도시락을 싸기에도 힘에 겨웠던 엄마의 고달픈 여정을 생각하면 무조건 감사할 뿐.
머위 잎, 머위대, 머위대 껍질까지 어느 한 가지 버릴 게 없으니.
엄마의 자식 사랑, 가족 사랑의 마음은 끝까지 변함이 없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