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는 겨울 놀이

by 이상수

수은주가 내려갔다. 눈이 많이 내린다는 대설도 지났으니 겨울로 치닫는 계절이다. 추위는 당연한 게 아닌가? 모든 여건이 지금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지만 한 바구니 가득한 시골스런 정은 가슴 한 구석에 굵고 깊게 새겨져 있다. 주로 긴 겨울 방학에 게임은 활기를 띤다.


약식 야구(필자의 해석)의 즐거움이다. 준비물은 너무 간단하다. 고무로 만든 공과 사람만 있으면 된다. 공은 오늘에 와서 생각하니 테니스 공 크기와 닮은 고무공이다. 비슷한 사람끼리 짝이 되어 가위 바위 보로 청 백 두 팀으로 나눈다. 투수는 공을 던지고 타자는 맨 주먹으로 공을 때린다. 포수도 타자 뒤쪽 자리에 앉아 타자가 때리지 못한 공을 잡아야 한다. 스트라이크와 볼은 자연스럽게 구별이 된다. 볏짚을 엮어 지붕을 덮은 초가집 모퉁이를 벗어나 삶의 터전이 있는 들로 나가는 길목에 낮은 산이 있고 산자락에 이어지는 밭이 있다. 야구하기에 적당한 운동장이었다. 야구장 소년들을 응원하던 소나무와 도토리나무들은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아궁이에 불을 때 굴뚝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훤히 보이는 담너머로 삶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웃음꽃에 저녁밥을 짓던 엄마들의 이마 주름을 헤아리고 있으려나.


서울특별시는 12월 19일부터 제19회 서울 광장 스케이트장 개장식을 갖고 2월 8일까지 입장료 1,000원으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광장뿐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운영할 계획이다. 지금 청소년들은 행복한 세대들이다. 2024년 1인당 국민소득이 36,624달러였다. 쉽게 스케이트를 사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러나 1955년도는 65달러에 불과했던 가난한 시대를 돌아보는 얘기다. 1960년대는 약 79달러, 1970년대는 254달러에 불과했으니 스케이트가 얼마나 귀했는지? 300세대가 모여사는 마을에 유일하게 고등학교에 다니는 형 하나가 스케이트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즐기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어린 우리들은 지름이 10cm 되는 두께의 나무를 반으로 자른 다음 밑부분을 다듬어 길게 홈을 판다. 그리고 굵은 철사를 구해 약간 파인 홈에 붙인다. 양 옆에는 작은 못을 박아 고무줄이나 끈으로 묶을 수 있게 했다. 봄이 돌아오면 농업용수로 쓸 물을 가두어 놓은 작은 저수지 물이 꽁꽁 얼게 되면 장난감 같은 스케이트를 갖고 저수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운동화 신은 발 위에 만든 스케이트 한쪽을 올려놓고 끈이나 고무줄로 단단히 묶는다. 스케이트가 묶인 발을 도움닫기 발판으로 이용 힘차게 몇 차례 도움닫기를 하다 스케이트를 붙잡아 맨 발을 밀며 반대쪽 발을 들고 서 있으면 수 십 미터를 외 발로 미끄러져 나가면서 바람을 가른다. 서로 경쟁을 하는 경우 스피드 싸움이 아니라 한 차례의 도움닫기로 누가 더 멀리 가느냐를 기준으로 판가름하기 때문에 시비의 문제가 발생할 이유가 없다. 때로는 저수지를 벗어나기도 한다. 금강의 지류인 샛강이 흐르고 샛강을 퍼 올려 농수로로 다시 밀어 올려 논으로 물을 공급하는 방법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지만 겨울철 쉬는 기간에 샛강을 통해 공급된 물이 쉬는 동안 추운 겨울을 맞이하면 어쩔 수 없이 얼어버리게 된다. 여기는 집에서 좀 더 먼 거리다. 신나게 얼음판 위를 달리다가 짚이나 나뭇가지 등을 모아 불을 피워 잠시 몸을 따뜻하게 달래기도 한다. 그러다가 옷에 불똥이 튀어 새 옷을 사다 주신 엄마의 애를 태우기도 했던 나무로 만든 스케이트 아마도 지금은 옛날 물건들 모아놓은 고전 박물관에서 혹시 찾을 수 있으려나? 샛강은 여름철엔 에덴의 후예 원시 모습이 돼 발가벗은 대로 둑과 물속을 오가며 피부를 태우가도 했던 그곳이 그립기만 하다.


유리구슬이 요즘엔 보이지 않는다. 커다란 나무 아래 마당에 작은 원을 그린다. 그 안에 유리구슬을 모아 놓는다. 6 -7m 거리에서 더 큰 구슬을 굴려 원 안에 있는 작은 구슬을 밖으로 밀어내면 내 것이 된다. 집중력을 요하는 게임이다. 추위에 손끝이 갈라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구슬을 많이 얻기 위해 노력한다. 날씨가 너무 추우면 집으로 간다. 어른이 외출한 가정이면 더 편하다. 유리구슬을 손으로 움켜 쥔 다음 다른 사람들은 홀수냐 아니면 짝수인가를 맞추는 게임이다. 그리니까 확률은 50:50이다.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의 유리구슬이 짝수라고 가정하자. 한 사람이 홀 수라고 답을 했다면 패하게 되어 구슬을 빼앗기게 된다. 다른 사람이 홀수라고 맞추게 되면 손에 구슬을 쥐고 있던 이는 답을 맞힌 사람에게 구슬을 건 만큼의 숫자를 줘야 하는 방식이다. 유리구슬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방석을 준비하면 좋다. 한 걸음 나아가 1,2,3 게임이 있다. 홀 짝의 변형이라고나 할까? 한 사람이 한 움큼의 유리구슬을 손안에 감춘다. 3개씩 짝을 맞추어 모은다. 그런 다음 마지막 하나, 둘 혹 셋이 남으면 분해를 멈추고 기다린다. 다른 이들은 손바닥 안에 구슬이 하나, 둘, 아니면 샛인지를 맞히면 된다. 손에 남은 숫자가 1이라면 2 혹은 3을 지적한 사람들은 패하게 되는 것이며 1이라고 답을 했다면 이긴 쪽이다. 어리지만 나는 도박의 맘을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또래 중 나이가 세 살쯤 위인 형이 함께 게임을 하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온다. 배팅을 많이 한 경우는 어김없이 형이 이기고 배팅을 적게 한 쪽은 형이 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형의 행동을 자세히 살피게 됐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구슬을 쥔 한쪽 손이 자꾸만 귀 가까이 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귀에다 손을 대고 구슬 소리를 듣는 시늉을 한다. 그런 그의 모습이 어색하기만 하다. 왜 손이 귀 가까이로 갈까. 답을 찾았다. 구슬을 귓불에 넣고 빼기를 원하는 대로 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질 수밖에 없도록 이미 정해진 것이려니. '어디까지나 나의 상상력이다.' 무슨 큰 일이라고 다른 형들에게 떠벌려 오락을 깨뜨릴 게 뭐야. 어쩌면 그 형은 아무도 모를 거라고 지금까지도 생각하겠지. 그 시절 양말 속에 모아뒀다가 잃어버린 구슬은 어디에 숨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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