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자 없는 결혼식

by 이상수

스물여섯 나이에 예정에 없던 결혼식 주례를 한 일이 있었다. 전통예식이 아니었으나 시골집 마당에서 갖는 예식이었다. 주례하기로 약속된 목사님이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주례를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지역 교회의 전도사로 부암 한 3개월쯤 되는 봄이다. 교과서로 읽었을 뿐 실습은 아직 없었기에 만들어진 예문을 펼쳐놓고 순서대로 진행을 반복하여 읽고 연습을 했다.


문제는 주례사였다. 처음 하는 주례사인지라 쓰고 지우며 정리를 했다. 결혼의 의미에 대한 얘기로 어색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행복한 가정을 엮어가는 과정이다. 서로 신뢰하고 가는 길에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꿈을 갖고 인내하기 바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서로 사랑했으므로 오늘에 이르렀다. 사랑은 다함이 없다. 끝까지 행복한 길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된다는 내용의 주례사로 기억된다.


시골 읍 단위 동네까지 걸혼예식장이 있던 시절은 어느 사이에 옛이야기가 됐다. 그때는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주례를 전문으로 하는 주례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미 약속된 주례자를 모시고 갖는 예식은 그대로 진행하면 된다. 그러나 주례자를 모시지 못한 경우 주례자를 섭외하여 모시고 예식을 진행한다. 최근 지인의 딸 결혼식에 참석하고 축하하는 자리에 있었다. 화려하게 꾸며진 예식장 안에는 신랑 신부의 가족과 하객들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마이크가 열리고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 결혼식의 사회자 인사드립니다"

양가 부모 입장. 어머니 화촉점화. 신랑 입장. 신부 입장 - 사회자의 멘트에 따라 물이 흐르듯 진행이 된다. 신랑 신부가 함께 읽는 혼인 서약을 한다. 이어서 우정의 축가가 있은 다음 양가 부모 내빈께 인사 후 행진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2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니 하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인다.

연회장으로 가면서 뭔가 모르게 빠진 듯 허전함이 가슴 한 구석에서 속삭이듯 다가온다. 주례사가 없었지. 사회자가 예식을 진행할 경우 대체적으로 신랑의 아버지가 주례사를 안방에서 다정하게 이야기식으로 하여 푸근한 감정을 공감하게 했다. 더러는 신랑 어머니의 주례사를 듣는 낭만도 있었다. 이제 주례자들의 설 곳은 잃은 지 오래다. 주례사를 쓰고 다듬어야 할 숙제의 부담도 없다. 2010년 9월 초 법륜 스님은 주례사 쓰기를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스님의 주례사>라는 책을 펴냈다. 많은 독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여러 차례 거듭 출판하기도 했다. 만남의 인연, 행복을 만들어가는 지혜를 배우는 유익한 내용이 담겨있다.


내가 주례를 하고 싶었으나 주례자 없는 예식으로 계획되었기에 참석하여 축하만 했던 기억이 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인사하러 온 부부에게 서로 사랑하여 행복한 가정을 창조하기를 주례사 하듯 A4 용지에 적어서 줬다. 유대인 출신으로 독일계 미국인으로 사회심리학자이면서 정신분석학자요 인문주의 철학자인 에리히 젤리히만 프롬(Erich Seligmann Fromm1900.3.23-1980.3.18)의 사랑의 요소를 인용하여 설명한다. 요약하면 사랑은 관심이다. 책임이요. 지식이며, 존중하는 마음이다. 입으로만 사랑의 구호를 외치는 게 아니라 사랑의 내용을 실행에 옮겨 모범적인 가정을 만들기를 바란다. 주례자와 주례사가 있고 없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남남이 만나 서로 존중하고 책임을 다하며 변함없이 존중하는 자세를 갖고 상대방을 이해한다면 행복은 샘솟듯 하리라. 가정마다 웃음꽃이 피어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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