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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수 Oct 27. 2023

낙엽들의 속삭임

늦은 가을 토요일 오후. 정해진 약속이 없어 서재에 머무르는 시간이다. 가을에는... 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김현승 시인의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이후 생략) 끝 부분을 매듭짓기 전에 전화벨이 울린다. 사과 농사를 짓는 친구의 반가운 목소리다.

 "뭐 그리도 바쁜 거야. 사과도 벌써 다 수확했는데." 

"미안, 미안. 시간에 쫓긴다는 핑계만 대다가 너무 늦었네 지금 갈게." 

서둘러 승용차의 시동을 걸었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한 친구의 농원은 조상으로부터 대를 이어온 삶의 터전이다. 자동차로 30분 거리이다.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임에도 일찍 떠난 곳이라서  가끔  모이는 초등학교 동창회 때 잊지 않고 찾는 사이이다. 그럼에도 사과를 거둬들이면 한 상자 선물한다고 친절하게 연락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더운 여름 날씨와 씨름하면서 땀 흘린 수고를 그냥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트에 들러 소고기를 샀다. 만나서 주고받는 정을 나누며 즐거운 미소를 그려야 제 맛이다. 


농원에 도착하니 출입문이 활짝 열려있다. 마치 어서 오십시오 하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주차장에는 일곱 대의 승용차가 가지런히 서 있다. 아마 사과를 직접 구입하려고 방문한 이들인가 보다. 친구와 그의 부인은 찾아온 이들에게 부지런히 사과를 홍보하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나는 눈인사만 하고 나무 숲 사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인으로 보이는 한쌍의 젊은 이들이 먼저 앞서서 걸으며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맛있는 사과 열매를 아낌없이 내어 준 나무들은 벌써 겨울 찬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 견뎌야 하는 남은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찬 바람을 잘 견디라고 발밑에 뒹구는 낙엽들은 박수를 치며 응원가를 부른다.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던 낙엽들은 낮은 곳으로 수북이 모여 쌓인다. 함께 모인 낙엽들은 긴 여정을 마치고 스러지기 전 넋두리를 쏟아낸다. 사람들은 꽃이 필 때 향기에 취하며 꽃을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지. 꽃이 너무 많이 피었을 때는 세밀하게 보살피며 선별하여 따낼 것은 땅에 아낌없이 버리는 것을 나뭇잎 된 우리들은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런 우리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음은 물론이다. 사과가 살이 찌어 탐스럽게 되었을 때 보는 사람들은 모두 사과 열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는 농원 주인을 배려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자 갑자기 낙엽들은 시무룩해졌다. 이때 "잠깐." 한 낙엽이 일어나서 입을 열고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나뭇잎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모르시오. 나뭇잎은 광합성과 증산작용 및 호흡작용을 하는 식물의 기관 가운데 하나로서 꽃이 피게 하고 사과 열매를 맺게 하는 결정적인 일을 하는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낙엽들은 요란하게 박수를 치며 자신들의 역할에 만족하며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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