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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하면 안돼.

느슨한 상태가 위험한 법이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금요일이라는 무게감은 왠지 모르게 방심하는 마음을 불러온다.

나에게는 오토매틱 시스템이다.

바쁜 일정이었던 이번 주(아직 끝나지 않았다만)

어제 저녁은 꽁치김치찌개를 먹으면서 눈이 감겨져 왔고(맛은 있었다만)

졸면서 생각해보니 차를 가지고 출근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셔틀버스 예약을 취소하고는

그래서인지 6시가 되어서야 눈을 떴고

아침 일찍 브런치를 쓰지 못한 채

(글을 기다리거나 이상하다 싶으셨다면 나의 브런치에 몰입 중이신 고마우신 분이다.)

고구마와 계란 삶고 버섯 구운 것을 남편 아침으로 놓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운전중에 자꾸 자꾸 딴 생각이 난다.

이제 조금 그 길을 여러 번 다녀서 익숙해졌다는 뜻일까?

아니면 금요일이 주는 방심함의 전조일까?

그리고는 갑자기 어제 넣으려다 안 넣고 게으름을 핀 휘발유양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어제 귀가할때만해도 오늘 차로 출근할 생각이 없었으니 그냥 들어갔는데

출발하면서 보니 주유량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기름이 딸꼭딸꼭해서 길가에 섰던 경험이 딱 한번 있다.

물론 내가 내차 운전하는 경우는 절대 아니었고

학교 동료들과 함께 놀라간 날이었는데

리무진형 렌트카의 주유양을 잘못 파악하고는 경주인가 포항 어느 언덕길에서 급기야 차가 섰고

뒤로 밀리는 현상이 나타날까봐 우리 모두 차를 정점까지 밀어올렸던 말도 안되는 일이 한번 있었다.

그때 이후로 더더욱 <주유량은 항상 여유있게>가

내 신조이다만 오늘은 그다지 넉넉하지는 않아 보인다.

방심의 결과이다.

그리고는 운전이 스무스하게 잘 된다 싶은데

그리고 무슨 깡인지 신호대기에 걸린 사이에

오늘의 대문 사진인 태양도 찍었다만

졸고 있는 것인지 딴 세계에 다녀오는 것인지 아슬아슬한 느낌이 살짝 살짝 든다.

이러다가는 지난번 셔틀버스 기사님처럼

출구를 놓쳐서 안성까지 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음과 정신을 다잡는다.

아주 가끔 이럴 때가 있다.

몽롱한 4차원에 있는 듯한 시간.

그 시간은 사실 걱정과 두려움이 없기는 하다.

이런 상태를 좋아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만

나는 항상 움츠리고 준비하고 걱정하는 시간이 일상적이다.

태어나기를 많은 겁과 걱정을 기반으로 태어났다.

그러므로 여유 있고 천천이 서두르지 않는 스타일인 남편이 한때는 멋지고 성숙해보였을지 모르겠다만

막상 살아보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의 스타일이 힘들기만 하다.

운전을 하는데 방심은 커다란 사고를 만나게 되는 핵심이다.

넓적다리를 몇 번 꼬집어준다.

오랜만에 천 원짜리 학식으로 조식을 먹고

프린트할 것들을 프린트하고

제출해야할 서류들을 제출하고

챙겨야 할 준비물들을 챙기고

깔끔하게 양치질까지 마치고

행정직원과 외국인 학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담소도 나누고

사무실에 내가 가지고 있던 그림 몇 점을 놓아두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 자리에도 이 공간에도 많이 익숙해진 듯 하다.

그렇지만 아직 방심하기는 이르다.

학기말의 분위기는 또 다른 법이다.

마음과 몸을 느슨하게 하면 무언가 사단이 나더라.

다시 나사를 조여본다.


요즈음은 목요일 회식이 더 많고 자동차도 목요일 오후가 더 막힌다고 한다만

나는 금요일이 방심이 가장 쉽게 찾아오는 날이다.

그런만큼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불금이 주는 약속이나 해방구는 나에게는 없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이 최고의 날이다.>

이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100프로 맞는 말이다.

오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어제처럼 바쁘고 허덕대지 않기를

나의 멘탈이 잔잔한 호숫가이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기쁜 일이나 반가운 연락은 언제나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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